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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떠돌이 을불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1년 6월
평점 :

#고구려 #미천왕 #떠돌이을불 #김진명 #이타북스
[책속한줄]
“이것은 운명입니다.”
선언하듯 내뱉는 창조리의 말에 고구는 깊은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대장군께서는 죽음으로써 후사(後嗣)를 살리는 것입니다. 의로운 후사가 이어진다는 건 바로 상부의 날이 줄어드는 이치입니다.”
“으하하하하!”
갑자기 안국군이 대소했다.
(중략)
“형님께 이렇게 떳떳할 수가 있나!”
“고구려의 밀알이 되시는 겁니다.”
“내 기꺼이 웃으며 죽음을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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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는 늘 영웅의 탄생을 부른다 했던가. 을불의 각성은 아마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후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후에 미천왕이 될 을불의 어린 시절 고난과 역경이 담긴 고구려 1권을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이야기는 생소했다. 그나마 익숙한 이야기는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알려지는 주몽과 널리 토벌해 국가의 국권을 견고히 했던 광개토대왕, 그리고 태평성대의 국가를 이룩한 장수왕에 대한 것이 전부랄까. 기원전의 역사여서 남은 사료도 기록도 많지 않아 그런지 낯선 시대의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지금과는 생소하고 생활환경이 낯설었다.
고구려를 읽은 이유는 작가의 힘이 가장 컷다. 해냄에서 처음 출판됐던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가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돌아왔다. 기존의 1~6권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7권을 들고. 김진명 작가의 작품은 일전에도 언급했듯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 시작됐다. 역사적 사실과 야사 속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껏 이어져오는 국가 간의 패권 다툼까지 담아낸 이야기들은 늘 색다르면서도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 각성하게 했다.
팩션사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내는 김진명 작가가 설풋 낯선 고구려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그간의 작품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가까운 시간들에 대해 써왔다면, 고구려는 예상치 못한 시대로의 여행이다. 무엇보다 오래 전부터 긴 시간 집필했다는 이 책은 곳곳에 그가 얼마나 고심해 연구했는지 그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려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여실히 보여진다.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정치, 경제적인 배경 등 다양한 내용을 풍부히 담으면서도 고구려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 '미천왕' 을불을 살리고자 했던 이들의 보이지 않는 투쟁, 을불의 성장과 각성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시작부터 재미있는 무협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포악하고 능력없는 왕 앞에서 비겁하게 고개를 아버지의 모습에 혈기왕성한 을불은 등을 돌리고야 말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되겠지. 되려 그들의 충절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고구려의 1대왕 주몽이 아니라 15대 왕 미천왕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고구려는 그가 왜 왕궁에서 쫓겨나 머슴살이를 하고 더 나아가 소금을 파는 소금장수가 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그를 어떻게 왕으로 다져냈는지를 그려낸다.
한 발짝 도약을 위한 반걸음의 후퇴가 필요한 때가 있다. 안국군과 창조리, 고구의 뜻은 을불의 커다란 도약을 위한 작은 뒷걸음질이었고, 그들이 방패막을 쳐주었기에 어쩌면 더더욱 을불이 올곧은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오래된 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욕심 많은 수장이 어떻게 한 나라를 망가뜨리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썩은 웅덩이는 다시 새로운 물을 찾아 헤매인다는 것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담아낼 수 있다니 감탄하며 간다.
어서 그가 왕위에 올라 고구려의 새시대가 열리기를 간절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