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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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하지만 그러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보이지도 않고 있다고 믿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죽인단 말입니까."

사실이었다. 죽이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어찌 죽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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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특히나 금기의 공간인 궁에서는 그 맛이 배가 된다. 한참 궁금한 것이 많은 나이에 궁에서 평생의 눈과 입과 귀를 막을 것을 맹세한 궁녀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맛깔스럽게 괴기스럽다.


특히나 서묘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먹히는 자와 먹는 쥐의 이야기는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광기에 몰린 존재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잊고 본능적인 욕구만이 남게 된다니. 


기담은 보통 금기에서 시작됐다. 특히나 왕의 위엄을 담는 공간인 궁궐에서 입을 타고 흐르는 소문은 그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고, 호기심 많은 어린 생각시들을 다루는 가장 큰 방법은 고통의 맛일 것이다. 우물의 전설이나 서묘이야기가 특히 그랬고, 우리의 전통적인 괴물인 도깨비나 괴물의 이야기는 색다른 재미였다.


궁 속의 삶, 그들 사이의 암투와 괴로움이 어쩌면 그런 기담에라도 기대야만 살 수 있던 외로움을 달래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괴담이 더 오랫동안 전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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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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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고바야시서점에갑니다 #가와카미데쓰야 #현익출판
[책속한줄]
그 말 그대로였다. 울든 웃든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낸다. 괴롭게 일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괴롭게 흘려보내는 셈이 된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회사나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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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저를 지키고 싶은 것 같아요."
"지키고 싶다?"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기를 낮게 말해서 방어벽을 치는 거예요...... 참 약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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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졸업'이라는 단편영화 한편을 보았다. 사회가 만든 규제와 틀 안에서 맹목적으로 달려온 아이는 일정 숫자에 도달하자 사회에 튕기듯 던져진다. 회색빛 가득한 두려운 공간에 이질적인 다른 이들의 모습에 위축되어 머뭇머뭇 도망치지만, 그 알을 깨게 만든 그의 아프락사스는 웃기게도 지나가던 회색분자였다.

맹목적인 취업으로 출판사 영업직이 된 후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그 작고 어린 로봇같았다. 그리고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적당히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공부하고 졸업을 앞두고는 당연히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는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일생은 예측대로 흐르진 않고 나는 아주 다른 길을 걷고있다.

회사 생활은 보람도 있고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거리감이 생겼다. 그맘쯤 참 많이 고민했던것 같다. 내 삶에서 그래도 무엇 하나 의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찾자. 인생의 저울을 균형있게 조절하기까지 사실 쉽지 않은 시간과 고통이 있었다. 그 흔들리는 시간에 묵묵히 우산을 건네주는 어른이, 고바야시 서점이 있었다면 조금 덜 힘들고 아팠을까.

여전히 나도 흔들린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은 나를 낮추는 가장 쉽지만 스스로에게는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유혹한다. 흔들리는 꽃이 오히려 꺽이지 않고 오랫동안 피어나듯 이런 아픔을 겪는 또다른 이들에게 작지만 품을 내어주고, 작은 우산 하나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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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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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문득, 엄마도 엄마의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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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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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웠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 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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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대,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의 삶을 참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든다.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고, 또 많은 이들을 할퀴기도 했다. 페퍼민트 속의 아이들은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로 할퀴어진 우리의 초상이 아닐까.


우리는 늘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시작해 보살핌 속에 끝이 난다. 탄생한 이후엔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또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니까. 그리고 작가는 준비되지 않은 보살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염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아빠. 그리고 그 사이 열아홉의 시안. 


열아홉, 누군가에겐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시기. 새로운 시작일 것만 같은 스무살을 앞둔 열아홉의 나날은 어쩌면 푸른 설렘에 가깝다. 하지만 시안은 그 설렘의 무게를 의식적으로 외면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큰 책임인 엄마가 있으니까. 내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운 엄마를 위해서. 하지만 문득 시안은 내 안에 푸름을 눌러내기가 어렵고, 그 울분을 어디에라도 표현하고 싶어진다.

이 아이러니한 모순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시안의 저 억눌린 울분은 대체 누구를 탓해야할까. 시안의 눈에 보인 해원(지원)의 모습은 평범한 19살의 모습인 것만 같아 억울하고, 해원(지원)과 해일 남매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를 입는다. 상처입은 19살을 지나온 아이들은 또 어떤 어른이 될까.


오랜 병간호로 시안의 가족은 서서히 붕괴되고 침식당한다. 스스로를 애써 부인해보지만, 더이상 그려지지 않는 미래가 두렵다. 시안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빠에게 투영하며 탓하지만, 결국 그게 내 안의 짐이라는 것을 끝내 인정하고 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시안은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될 것이리라. 엄마가 다시 눈을 뜨고 사랑을 말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시안은 스스로를 위한 페퍼민트 차를 우릴 줄도 알고, 이제는 아빠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이 안에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일까. 피해자만이 남은 이 공간에, 이 묵직한 울분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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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조 -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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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화에 병적으로 서툰 탓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에 서툴다. 적잘한 대꾸를 찾아내고, 말하지 않아야 할 내용을 점검해 잘라낸 뒤, 다시 유려하게 이어 붙여 꺼내는 일이 내겐 정말로 힘들다. 그나마 괜찮은 대답을 했다 싶을 땐 타이밍이 문제가 된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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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버지 납골당에 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 시간은 어쩌면 정말로 흐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과정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언제나 시간이 가만히 흘러서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주기를 간절히 바랏지만, 결국 이동하는 것은 나였어. 그리고 이동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아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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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의 작품 속 가장 큰 키워드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역시 죽음이다. 그는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사이의 인물들의 관조적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골목의 조는 박지리의 '번외'가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박지리문학상 제 2회 수상작인 '골목의 조'는 끊임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과 죽음을 상징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죽음을 조금 먼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버지의 죽음, 고양이의 죽음, 그리고 조의 죽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 속에서 그 작은 반지하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퇴근 길 마시는 맥주 한잔이 삶의 낙이듯, 그녀의 삶에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흔히 우리는 산사람은 살아야한다고 말하지만, 죽음을 목도한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을 것 같다. 문득 내 방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아저씨가 그러했고, 이제 앞으로 그 뒤에 숨겨진 골목이 그렇겠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삶은 늘 외롭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식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상처받을 이유조차 만들지 않아야 하니까. 만약, 정말로 조가 오랫동안 사라졌을 때, 그 골목을 한번쯤 들여다보았다면, 우리는 조와의 새로운 삶을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언제고 떨어질 수도 없는 관계다. 아마 나는 삶을 조는 죽음을 나타낸 양면의 동전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은 두려운 것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삶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천운이었으나, 죽음만은 나의 선택이어야한다는 약간의 고집이 묻어났달까. 박지리의 소설이 다시금 그리워지는, 골목의 조였다.

 

#골목의조 #송섬 #사계절 #박지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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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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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행복대신불행을택하기도한다 #김진명 #이타북스

[책속한줄]

인간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원초적 본능만 갖춘 바이러스와는 갈래를 달리하는 인간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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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인간은 비극적 존재이다. 품었던 이상은 흐릿해지기 마련이고 꿈은 깨지며 일이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 세상의 본질이니 삶은 고통과 비탄과 슬픔에 언제나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헤쳐 나간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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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미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역사 속 인물들로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김진명 작가가 이번엔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늘 그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강단있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그가 왜 그런 인물들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알 것만 같다. 역시 글에는 자신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담기는 것이니까.

김진명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통해서다. 그 이후 그의 세계관에 매료돼 대부분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소설이므로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지만 남성적인 캐릭터들과 한중일의 복잡한 역사관계, 한미일의 미묘한 경쟁구도가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소설 속에서나마 국력이 약한 우리가 통쾌해지는 지점이 있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1막을 마무리한 그가 이번엔 에세이로 돌아왔다. 제목과 표지부터 남다르다. 마치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가는 작가의 모습이면서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한. 귀여운 표지가 반긴다. 하지만 첫 이야기부터 묵직한 울림을 준다. 돈이 없는 아버지의 속을 미쳐 몰랐던 어린 진명은 자라 아버지의 마음을 한번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됐고, 또 다른 아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를 대하고 글을 쓰는지도. 우리는 행복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는 책의 제목처럼 그가 어떤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았고, 그 목소리가 작품 속에 그의 삶 속에 그의 말 속에 녹아났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초반에는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살아온 이야기를 위주로 담았다면, 후반부에는 자신의 신념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왜 자신이 역사소설을 쓰는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어 좋았는데, 무엇보다 그가 지금까지 역사소설의 대표자로 있는 것은 집요함과 끈기 때문이 아닐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섭렵했던 젊은이는 우리 역사의 명확한 뿌리를 찾기 위해 먼 땅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속의 우리 역사를 찾아 끊임없이 탐색한다. 사료가 비교적 많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많은 공간에 그는 깊숙하게 연구하고 탐색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일생의 여정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지 조금은 명확해진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하는지, 나로서 올곧기 위해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하는지. 그것이 때로는 불행에 가까워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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