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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ㅣ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책속한줄]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문득, 엄마도 엄마의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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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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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웠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 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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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대,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의 삶을 참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든다.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고, 또 많은 이들을 할퀴기도 했다. 페퍼민트 속의 아이들은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로 할퀴어진 우리의 초상이 아닐까.
우리는 늘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시작해 보살핌 속에 끝이 난다. 탄생한 이후엔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또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니까. 그리고 작가는 준비되지 않은 보살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염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아빠. 그리고 그 사이 열아홉의 시안.
열아홉, 누군가에겐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시기. 새로운 시작일 것만 같은 스무살을 앞둔 열아홉의 나날은 어쩌면 푸른 설렘에 가깝다. 하지만 시안은 그 설렘의 무게를 의식적으로 외면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큰 책임인 엄마가 있으니까. 내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운 엄마를 위해서. 하지만 문득 시안은 내 안에 푸름을 눌러내기가 어렵고, 그 울분을 어디에라도 표현하고 싶어진다.
이 아이러니한 모순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시안의 저 억눌린 울분은 대체 누구를 탓해야할까. 시안의 눈에 보인 해원(지원)의 모습은 평범한 19살의 모습인 것만 같아 억울하고, 해원(지원)과 해일 남매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를 입는다. 상처입은 19살을 지나온 아이들은 또 어떤 어른이 될까.
오랜 병간호로 시안의 가족은 서서히 붕괴되고 침식당한다. 스스로를 애써 부인해보지만, 더이상 그려지지 않는 미래가 두렵다. 시안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빠에게 투영하며 탓하지만, 결국 그게 내 안의 짐이라는 것을 끝내 인정하고 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시안은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될 것이리라. 엄마가 다시 눈을 뜨고 사랑을 말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시안은 스스로를 위한 페퍼민트 차를 우릴 줄도 알고, 이제는 아빠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이 안에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일까. 피해자만이 남은 이 공간에, 이 묵직한 울분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