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들로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김진명 작가가 이번엔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늘 그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강단있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그가 왜 그런 인물들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알 것만 같다. 역시 글에는 자신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담기는 것이니까.
김진명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통해서다. 그 이후 그의 세계관에 매료돼 대부분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소설이므로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지만 남성적인 캐릭터들과 한중일의 복잡한 역사관계, 한미일의 미묘한 경쟁구도가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소설 속에서나마 국력이 약한 우리가 통쾌해지는 지점이 있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1막을 마무리한 그가 이번엔 에세이로 돌아왔다. 제목과 표지부터 남다르다. 마치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가는 작가의 모습이면서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한. 귀여운 표지가 반긴다. 하지만 첫 이야기부터 묵직한 울림을 준다. 돈이 없는 아버지의 속을 미쳐 몰랐던 어린 진명은 자라 아버지의 마음을 한번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됐고, 또 다른 아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를 대하고 글을 쓰는지도. 우리는 행복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는 책의 제목처럼 그가 어떤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았고, 그 목소리가 작품 속에 그의 삶 속에 그의 말 속에 녹아났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초반에는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살아온 이야기를 위주로 담았다면, 후반부에는 자신의 신념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왜 자신이 역사소설을 쓰는가,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어 좋았는데, 무엇보다 그가 지금까지 역사소설의 대표자로 있는 것은 집요함과 끈기 때문이 아닐까. 도서관의 모든 책을 섭렵했던 젊은이는 우리 역사의 명확한 뿌리를 찾기 위해 먼 땅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속의 우리 역사를 찾아 끊임없이 탐색한다. 사료가 비교적 많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많은 공간에 그는 깊숙하게 연구하고 탐색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일생의 여정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지 조금은 명확해진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하는지, 나로서 올곧기 위해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하는지. 그것이 때로는 불행에 가까워보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