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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송원석.정명효 지음 / 책들의정원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추억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안에는 행복한 순간 뿐만이 아니라 회한도 고통도 포함되어 있다.
때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오랜 세월에 부대끼며 때가 끼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그 순간이나마 열정적이었고 조금은 순수했던 그때의 내가 된 것처럼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지난 세월의 모두를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 지난하지 않은 시간들이 없었지만 그 쌓인 시간이 주는 의미에 이제는 조금 초연해졌다고 할까? 수 없이 비틀거리며 살았던 순간들과 그때를 같이 했던 수 많은 회상꺼리에 이제는 커피 한잔을 놓고 생각 할 여유가 생겼으니 참 세월이 제법 흘렀다.
물론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의 내 모습에 고함 치고 야단 쳐서라도 바꾸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때와 함께 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그 또한 뒤 늦게 철이 들었나 보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나 술 한잔 받아 놓고 이런 저런 옛이야기를 한 기분이다.
공유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은 어린시절 고향친구를 만나 오랜시간 날 새는 줄 모르고 떠들던 그 기억과도 같았다.
송원석 저자의 '지금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와 만난 기분으로 그 시절로 훌쩍 회기하게 만들었고, 정명효 저자의 '멀어져 가는 것은 모두'에서는 같은 동네 친구와 함께 놀았던 그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저자가 불러 일으킨 추억의 공감은 잡지책 뒤에 있던 펜팔 주소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생각,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의 운동장과 국기계양, 가요책을 찾아가며 라디오 디제이의 선곡에 따라 가사를 찾아 읽던 그때,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산동네 판자촌집 친구와 급식빵 하나들고 온통 뒷산을 뛰어다닌 생각,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고 OB베어스 회원이 된 동생을 부러워 했던 생각, 집 담벼락 화단 마다 피었던 사루비아 꽃을 따서 빨던 생각, 다락방에 숨겨진 꿀을 몰래 먹고 아버지가 숨겨둔 술 한 모금에 온 집안을 뒤집어 놨던 생각, AFKN의 세서미스트리트 등등 으로 나만의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고,
내 막내 동생뻘 되는 정명효 작가의 '멀어져 가는 것은 모두'에서는 마치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뛰놀던 그때가 그대로 떠올라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고단하게 마감했던 그 많은 일들을 잠시나마 모두 잊고 또 읽고 또 읽어보며 국민학생이 되었다가, 중학생이 되었다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며 그때의 추억과 사건까지 추억 할 수 있었다.
시흥동, 독산동,가리봉동,구로동 지금은 광명시가 된 철산동, 그 너머 개봉동 까지, 남들이 구로공단이라 부르며 수출의 역군들이 산다고 대한뉴스에 홍보하던 그 시절 철없이 닭장집이라 남들이 부르던 촘촘한 방들의 그말을 그대로 입에 올렸던 철없던 시절의 친구들과 온 동네를 쏘다니던 생각, 조금 커서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그들의 고통을 공유한다고 착각하던 얼치기 시절을 지나 함께했던 민주화 운동의 시기 등등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 시간의 여백사이에 아직은 살아 계셨던 어머니와 시장을 쫓아다니며 십원이라도 깍는다고 아웅다웅거리는 어머니 곁에서 발휘한 인내심의 댓가로 먹게된 짜장면과 비빔냉면의 어린추억, 오거리 빵집의 설레이는 만남, 후에 방송사에 들어간 고등학교 친구의 LP수집에 턴테이블도 없이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소위 빽판(?)이라는 B급LP를 사모으며 겉멋에 만족 했던 오글거리던 생각, 학교수업만 끝나면 달려갔던 동네 탁구장, 영화를 너무 좋아 했던 시네마키드 시절의 암표의 추억, 지금은 사라진 연흥극장, 명화극장, 시흥극장 등 주변동네 극장의 추억 등
거기에 군복무하던 철친의 어이없던 죽음까지...
그 친구들중 이제는 목사도 사장도 그냥 회사원도 되어 다들 살고는 있지만 그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치기어린 그때를 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힘은 그 고단 했던 많은 시간들을 잠시나마 접어두게 만든다.
저자들의 산문집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는 그 지나온 시간 사이에 쌓인 여백에 채워졌던 수 많은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내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했던 것이었는지...그리고 동시대와 공간의 공감까지.
마침 얼마 전 그 친구들 중 하나의 모친상으로 오랜만에 모여서 늦은 시간까지 한편으론 위로 하고 한편으로 그 부모님들의 얘기를 하며 온통 시절을 훝듯이 얘기들을 꺼내고 또 꺼내던 생각이 난다.
저자들이 말했듯이 우리가 철없던 시절과 그 신산스런시절을 관통하며 무엇으로 그 시대를 응답하며 살았는지 지금도 다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좌충우돌하며 쌓아온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만 않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향유하며 살았다는 은밀한 기쁨도 발견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세월에 따라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나 추억 할 수 있는 기억이 남아 있는한 또 추억 할 것이고, 이렇게 그 자취를 남기는 글이 있는한 또 기억하게 될 것이다.

추억은 힘이 세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오늘 그 힘을 또 느끼며 나를 토닥여 보게 된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먼 여행을 하고 돌아 온 느낌이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온 안온함으로 푸근함이 느껴진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낙엽타는 내음과 커피의 진한 향이 그리워 질때면 이 공감 가득한 추억의 여행을 또 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가 또 그리워 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