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을 대하는 위험한 질문들
이영호 지음 / 책들의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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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표절'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근간에는 천재로 지칭 받은 모씨의 논문표절문제 부터 작년에는 즐겨 읽던 소설가인 신 모씨의 소설 문제로 실망하게 되고 그러면서 항상 따라붙는 '표절'이라는 단어가 세간에 떠들썩 했지만, 그로인해 누군가 배상하고 크게 법적인 책임을졌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예전에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모 작곡가가 작곡한 곡이 표절이라 한다는데 도대체 '표절'의 기준은 무엇이고 '표절'이 왜 그렇게 지탄을 받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들도 학교에서 NI를 하면서 지적재산권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그 범주를 다루는 토론도 해봤다는데 실제로 그것이 어느 범위와 기준을 가졌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떠들썩 했던 표절이라는 내용이 시간이 가면서 조용히 묻혀가는 일이 허다했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명확히 법적인 대응이 안 된일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표절의 정의는 단순 명료하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타인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쓰는 경우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인냥 속이는 행위다.

그런데 왜 이렇게 뻔히 아는 내용이 모호하게 처리되느냐는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타인의 것을 베낄때 마치 진실에 거짓을 적당히 섞으면 태가 안나듯이 자신의 것에 남의 것을 적당히 그대로 섞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혹 그것을 들켰을 경우는 단순히 우연이라는 말로 우기거나 넘어가기 때문이다. 더 고급스럽게 말하면 오랜 시간 같은 방향성을 가진 학문을 하면 그 잔재가 남아 우연히 겹칠 수 있다는 부류의 변명이다.

레퍼런스 했다면 출전이 필요한데도 단순히 기억의 오류 정도로 넘어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혹은 차용 또는 모방에 대해 전혀 인식자체가 안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일이지만 논문의 한 부분을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 인 것처럼 쓰면서 자신의 해박한 지식인양하던 자랑하던 사람을 본적이 있다. 분명 어투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 누구나 아는 부분이었는데 오랜시간 공부한 지식이 녹아든 부분인양 당당히 얘기하니 오히려 긴가민가 다른 얘기를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표절의 모호성은 뻔뻔히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사용하여 누구나가 봐도 명확한 사항이 아니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전문성까지 갖춰야 증명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표절을 대하는 위험한 질문들'은 이런 모호성에 대하여 다양한 열네가지의 에피소드와 그안에 담긴 질문을 통해 표절과 모방 그리고 학습 더 나아가서는 문화적인 발전은 모방에서 이뤄지고 많은 것이 그렇게 이뤄진 가운데 지켜져야 할 선들에 대한 기준이 어떠한지를 얘기하고 있다.

책은 다양한 분야 와 역사적인 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시대와 문화, 나라에 따른 인식정도에 따라 이런 표절에 대한 부분을 다양하게 받아 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로 자신의 것인지를 인식하자는 것이다. 학습을 위해 모방을 할 수 도 있고 창작을 위해 다양한 원전을 참조할 수있지만 사상과 형식을 빌려 올 수 있으 되 베껴서 자신의 것인양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례나 얘기를 거쳐 오면서 남는 것은 역시 진실이라는 명제에서 멈추게 되는 이유이다.

너무도 원론적인 얘기지만 지금도 아무리 명작을 모사하고 똑같아도 그 작품을 예술품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원작안에 담긴 그 사람만에 진실과 창의력 또는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훔쳐 진실을 가리려 한다면 일 순간의 이득을 생길지언정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다. 어떻게 살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부분이다.

표절을 대하는 위험한 질문들은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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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하지 않는다
모씨들 지음 / 소라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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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팍팍 하거나 어려울 수록 누군가가 건내는 진솔한 말 한마디가 고플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 얘기를 쉽게 나누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벌써 제법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 왔지만 삶의 문제와 고민이라는 것이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그때마다 또 다른 삶의 문제와 고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십대에는 그 세대나름대로 그리고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더 나아가서는 아마 죽을 때가지 이런 문제는 해결 되지 않고 끙끙거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외롭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문제를 개인이 홀로지고 가야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픔은 나누면 덜어진다고들 말하지만 이런 얘기를 쉽게 나누거나 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요즘도 가끔 라디오를 듣다보면 익명의 모씨의 절절한 사연이 가끔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느땐 오죽하면 저럴가 싶기도한데, 요즘은 그런 사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읽게 된 '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 하지 않는다.'는 그런 수많은 이들의 인생의 성장통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모씨(MOCI)'란 공간이 앱으로 있었는지 몰랐지만 이런 삶의 고민이나 세대별 고민을 나누고 쏟아내는 힐링공간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런 삶의 짐을 지고 사는 이들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과 정말 많은 이들이 세대별 나이별 성별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정말 '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인생의 굴곡과 마디마디를 넘어 지금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자신의 가정을 꾸려가며 살고 있으나 매 순간마다 쉽게 살아지는 날은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좋은 결과로 돌아 오기를 항상 고심하며 살아 왔습니다.

요즘은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고민까지 다가 오고, 마치 그림자처럼 그때 그 시기에 나도 저랬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이 분류한 여섯가지의 시퀀스를 보면 어느 세대나 나이를 떠나서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를 말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십대때는 불안한 미래와 호기심이 얽혀있던 '미래의 꿈'에 대해 고민했고, 이십대에는 누구보다 더 '사랑'에 아파 했으며, 가장 가까이에는 '가족'이란 틀에서 웃고 울으며 감내했고,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인간관계' 에 힘들었어 했던 일과 요즘은 삶의 불안과 살아오면서 생긴 편견과 타성에 젖은 내 모습에 힘겨워 할 때를 생각 합니다.


책은 다양한 사연을 얘기하고 있기에 하나하나의 사연마다 그 사람의 삶의 흔적과 아픔 그리고 생각이 담겨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더구나 바쁘게 살아 오면서 무심코 지나오거나 애써 외면해 버린 부분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지금보면 왜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가고 피했을까 싶은 많은 사연들 속에서 이제야 후회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세대별 사연에서는 요즘 아이들의 고민이 스쳐 지나가고, 세대차가 나서 자신들을 이해 못해 준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갖고 있는 삶의 고민이나 아픔을 알게하며 서로간에 이해의 장을 열어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과한 조언이나 이상향을 설정해 놓지 않아 좋습니다. 그저 살아 온 삶의 지혜와 경험을 다독이며 얘기해 줄 뿐입니다.

 

각 시퀀스별로 멘토들의 얘기가 나오지만 그중 '불안이란 프레임'의 정체를 얘기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불확정성 이기 때문에 누구나 매순간 갖는 이 '불안'이란 정체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용기'와 '행복'의 비밀을 얘기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친구의 위로처럼, 또는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다독임처럼 힘을 줍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은책입니다. 아마 수 많은 모씨들과 함께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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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하고 싶은 날에
이지은.이지영 지음 / 시드앤피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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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고 싶은 날에'의 제목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가슴이 짠해지는  쓸쓸함과 짠소리와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이며 두런두런 얘기하고픈 그런날이 떠오른다. 요즘 보면 참 사는 것 자체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위로하거나 다독여주지는 못하는 세상이다.

저자가 풀어낸 자전적인 아포리즘은 그런 이들에게 세상의 아픔을 나누고 토닥거리는 위로가 담겨있어 한장 한장 넘기게 된다. 누구나 세상을 잘 살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어느 때는 뜻하지 않은 상처에 헤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사람들의 관계에 힘들어 하며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은 것이 세상살이다.

'짠하고 싶은 날에'는 그런날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상대방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간 편이다. 그런데 정작 마음 편하게 함께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낄때가 있다. 더구나 어느날 갑자기 속내를 털어 놓고 속 시원 할 때 까지 수다를 떨거나 얘기를 할 이들을 찾는다면 의외로 많지 않은것을 알게 된다.

어느날 문득 허망해 지는 기분이 들때는 '짠하고 싶은 날에' 처럼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 울린다. 


책과는 좀 떨어진 얘기지만 내 가까운 지인 중에는 자기안에 갖혀 과거를 되씹어가며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약한 자신을 감추려고 다른이에게 더 상처를 주며 헤집어 가며 자신 안에 울분을 풀어낸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은 떠나가고 외롭게 지낸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 외로움의 실체를 외로움이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병에 묻혀 스스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낮은 자존감 또는 예민한 자존심, 맥락 없는 거만함 또는 과대망상 등등 상처입은 신음소리가 저절로 들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살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저자 이지은의 따뜻한 아포리즘 '짠 하고 싶은 날에'는 토닥여 주고 싶은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안에는 청춘의 미숙함도 담겨 있고, 관계의 어려움이나 뜻대로 안되는 삶의 상처들을 그대로 안고 비틀거리다가 주저 앉아 힘들어 하는 나의 모습,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던 그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다. 그 서툰 청춘 앞에 누군가 손 내밀어 주길 바라던 그때 말이다.

'짠하고 싶은 날에는'에는 그런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친구나, 선배의 말이 묻어 있다. 훈계하려 들지도 않고 "그냥 이런거야 별거 아니야 단지 내가 지내보니 이런거였어"하고 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이렇게 자신의 지나온 얘기로 시작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자기 안에 담긴 속내를 비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속내에 귀기울여지는 것은 그가 지내온 시간안에 서투름과 미숙함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상처받고 자신안에서 힘들어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것에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 책을 힘들어하는 내 아이에게 주면서 너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너 혼자만이 아니라고 말해 준적이 있다. 그리고 네가 쌓아 왔던 그 시간이 많은 사람들의 인연이 얽힌 시간임을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과연 납득을 했을까?

어쩌면 또 현재의 시간을 넘기려면 그만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한 '우린 어쩌면'에서 처럼 이런 서투름의 시간이 반복되어가며 살아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름답게 살아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는 것이 인지상정 일 것이다.

 



사실 대화는 그 대상이 중요한데 아이에게 알맞은 대화의 상대처럼 권한 셈이다.

한가지 더 좋은 것은 은근히 마음을 콕 집는 일러스트가 라디오 디제이가 던져주는 음악사이 멘트처럼 그 행간에서 감성을 더해주는 점이다.

오늘도 자신만이 아는 이런저런 많은 일상에서 한마디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몇마디의 다른 말보다 이책을 넣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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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송원석.정명효 지음 / 책들의정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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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안에는 행복한 순간 뿐만이 아니라 회한도 고통도 포함되어 있다. 

때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오랜 세월에 부대끼며 때가 끼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그 순간이나마 열정적이었고 조금은 순수했던 그때의 내가 된 것처럼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지난 세월의 모두를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 지난하지 않은 시간들이 없었지만 그 쌓인 시간이 주는 의미에 이제는 조금 초연해졌다고 할까? 수 없이 비틀거리며 살았던 순간들과 그때를 같이 했던 수 많은 회상꺼리에 이제는 커피 한잔을 놓고 생각 할 여유가 생겼으니 참 세월이 제법 흘렀다. 

물론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의 내 모습에 고함 치고 야단 쳐서라도 바꾸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때와 함께 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그 또한 뒤 늦게 철이 들었나 보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나 술 한잔 받아 놓고 이런 저런 옛이야기를 한 기분이다.

공유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은 어린시절 고향친구를 만나 오랜시간 날 새는 줄 모르고 떠들던 그 기억과도 같았다.

송원석 저자의 '지금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와 만난 기분으로 그 시절로 훌쩍 회기하게 만들었고, 정명효 저자의 '멀어져 가는 것은 모두'에서는 같은 동네 친구와 함께 놀았던 그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저자가 불러 일으킨 추억의 공감은 잡지책 뒤에 있던 펜팔 주소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생각,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의 운동장과 국기계양, 가요책을 찾아가며 라디오 디제이의 선곡에 따라 가사를 찾아 읽던 그때,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산동네 판자촌집 친구와 급식빵 하나들고 온통 뒷산을 뛰어다닌 생각,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고 OB베어스 회원이 된 동생을 부러워 했던 생각, 집 담벼락 화단 마다 피었던 사루비아 꽃을 따서 빨던 생각, 다락방에 숨겨진 꿀을 몰래 먹고 아버지가 숨겨둔 술 한 모금에 온 집안을 뒤집어 놨던 생각, AFKN의 세서미스트리트 등등 으로 나만의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고, 


내 막내 동생뻘 되는 정명효 작가의 '멀어져 가는 것은 모두'에서는 마치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뛰놀던 그때가 그대로 떠올라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고단하게 마감했던 그 많은 일들을 잠시나마 모두 잊고 또 읽고 또 읽어보며 국민학생이 되었다가, 중학생이 되었다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며 그때의 추억과 사건까지 추억 할 수 있었다.

시흥동, 독산동,가리봉동,구로동 지금은 광명시가 된 철산동, 그 너머 개봉동 까지, 남들이 구로공단이라 부르며 수출의 역군들이 산다고 대한뉴스에 홍보하던 그 시절 철없이 닭장집이라 남들이 부르던 촘촘한 방들의 그말을 그대로 입에 올렸던 철없던 시절의 친구들과 온 동네를 쏘다니던 생각, 조금 커서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그들의 고통을 공유한다고 착각하던 얼치기 시절을 지나 함께했던 민주화 운동의 시기 등등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 시간의 여백사이에 아직은 살아 계셨던 어머니와 시장을 쫓아다니며 십원이라도 깍는다고 아웅다웅거리는 어머니 곁에서 발휘한 인내심의 댓가로 먹게된 짜장면과 비빔냉면의 어린추억, 오거리 빵집의 설레이는 만남, 후에 방송사에 들어간 고등학교 친구의 LP수집에 턴테이블도 없이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소위 빽판(?)이라는 B급LP를 사모으며 겉멋에 만족 했던 오글거리던 생각, 학교수업만 끝나면 달려갔던 동네 탁구장, 영화를 너무 좋아 했던 시네마키드 시절의 암표의 추억, 지금은 사라진 연흥극장, 명화극장, 시흥극장 등 주변동네 극장의 추억 등 

거기에 군복무하던 철친의 어이없던 죽음까지...


그 친구들중 이제는 목사도 사장도 그냥 회사원도 되어 다들 살고는 있지만 그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치기어린 그때를 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힘은 그 고단 했던 많은 시간들을 잠시나마 접어두게 만든다.

저자들의 산문집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는 그 지나온 시간 사이에 쌓인 여백에 채워졌던 수 많은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내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했던 것이었는지...그리고 동시대와 공간의 공감까지.

마침 얼마 전 그 친구들 중 하나의 모친상으로 오랜만에 모여서 늦은 시간까지 한편으론 위로 하고 한편으로 그 부모님들의 얘기를 하며 온통 시절을 훝듯이 얘기들을 꺼내고 또 꺼내던 생각이 난다.

저자들이 말했듯이 우리가 철없던 시절과 그 신산스런시절을 관통하며 무엇으로 그 시대를 응답하며 살았는지 지금도 다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좌충우돌하며 쌓아온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만 않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향유하며 살았다는 은밀한 기쁨도 발견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세월에 따라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나 추억 할 수 있는 기억이 남아 있는한 또 추억 할 것이고, 이렇게 그 자취를 남기는 글이 있는한 또 기억하게 될 것이다.

   


추억은 힘이 세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오늘 그 힘을 또 느끼며 나를 토닥여 보게 된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먼 여행을 하고 돌아 온 느낌이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온 안온함으로 푸근함이 느껴진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낙엽타는 내음과 커피의 진한 향이 그리워 질때면 이 공감 가득한 추억의 여행을 또 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가 또 그리워 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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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슝둔 지음, 김숙향.다온크리에이티브 옮김, 문진규 감수 / 바이브릿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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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꺼져줄래 종양군!'의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저자인 '슝둔'은 자신의 병에 대해서 조금 귀찮은 존재 정도로 정의하고 있었다.

보통 자신이 큰 병에 걸려 불치 판정이나 생존률을 따지는 병에 걸리면 많은 이들의 반응은 '자기부정'과 '절망' 그리고 '순응'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기연민적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슝둔'은 스물아홉이란 나이로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세상과 그리고 자신과 소통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는 과정은 어느 하루나 다름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았다.


후에 '꺼져줄래 종양군'이란 영화로도 그의 유쾌한 투병기를 그린 영화가 개봉되어 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그의 직업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그녀가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까지 병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만의 하루를 위하여 유쾌하고 즐겁게 자신의 시간을 만들고 채워가는 모습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오히려 힘을 주는 존재로 남았다.


사실 영화를 먼저 보고 그녀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찾아 보기도 하고 그녀가 남긴 웹툰의 일부를 먼저 보면서 그녀가 도저히 병자라고 생각 할 수 없었는데, 이미 그녀가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고도 가슴이 아팠던 생각이 난다.

'슝둔'은 그녀가 죽기전 까지 웹툰을 일상이야기로 그려가며 그녀의 투병기를 그려 왔는데 너무도 일상을 밝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그리는 그녀의 투병일기를 보면서 오히려 그녀가 림프종이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그녀의 긍정바이러스가 거꾸로 우리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자에게 위안이 되고자 소통하던 독자들이 거꾸로 그녀의 밝음에 동화되고 긍정마인드에 동화되어 힘을 얻게 되는 현상은 그녀가 가진 그녀만에 매력이었다.

보통 죽음이란 단어는 음울하고 암울하다 못해 시한부인생이라면 남은 인생마저 자칫 '죽음'이란 어둠 속에 매몰시키기 마련인데 그녀 '슝둔'은 누구나 죽음이란 시한부를 살고 있다고 여기며 자신이 조금 이세상과 빨리 헤어지는 것 뿐이란 생각으로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남긴 웹툰소설이자 투병기인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는 그런 그녀의 유쾌한 유작이며 그녀를 통해 세상을 힘들고 어둡게 볼 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저서라 할 수 있다.

현재가 아무리 암울하고 힘들어도 현재를 즐기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긍정의 힘은 요즘처럼 힘든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도 많은 힘이 되리라 생각해서 이 책을 권해 보고 싶다. 그녀를 통해 아직 자신이 가진 시간이 얼마나 많으며 소중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사는 것을 더 생각한 '슝둔'의 삶이 그래서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긴 시간을 살아도 삶을 허비하는 사람보다 그녀의 삶이 더 행복 했을 테니 말이다.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를 보면서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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