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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하고 싶은 날에
이지은.이지영 지음 / 시드앤피드 / 2016년 8월
평점 :

'짠하고 싶은 날에'의 제목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가슴이 짠해지는 쓸쓸함과 짠소리와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이며 두런두런 얘기하고픈 그런날이 떠오른다. 요즘 보면 참 사는 것 자체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위로하거나 다독여주지는 못하는 세상이다.
저자가 풀어낸 자전적인 아포리즘은 그런 이들에게 세상의 아픔을 나누고 토닥거리는 위로가 담겨있어 한장 한장 넘기게 된다. 누구나 세상을 잘 살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어느 때는 뜻하지 않은 상처에 헤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사람들의 관계에 힘들어 하며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은 것이 세상살이다.
'짠하고 싶은 날에'는 그런날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상대방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간 편이다. 그런데 정작 마음 편하게 함께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낄때가 있다. 더구나 어느날 갑자기 속내를 털어 놓고 속 시원 할 때 까지 수다를 떨거나 얘기를 할 이들을 찾는다면 의외로 많지 않은것을 알게 된다.
어느날 문득 허망해 지는 기분이 들때는 '짠하고 싶은 날에' 처럼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 울린다.
책과는 좀 떨어진 얘기지만 내 가까운 지인 중에는 자기안에 갖혀 과거를 되씹어가며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약한 자신을 감추려고 다른이에게 더 상처를 주며 헤집어 가며 자신 안에 울분을 풀어낸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은 떠나가고 외롭게 지낸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 외로움의 실체를 외로움이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병에 묻혀 스스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낮은 자존감 또는 예민한 자존심, 맥락 없는 거만함 또는 과대망상 등등 상처입은 신음소리가 저절로 들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살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저자 이지은의 따뜻한 아포리즘 '짠 하고 싶은 날에'는 토닥여 주고 싶은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안에는 청춘의 미숙함도 담겨 있고, 관계의 어려움이나 뜻대로 안되는 삶의 상처들을 그대로 안고 비틀거리다가 주저 앉아 힘들어 하는 나의 모습,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던 그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다. 그 서툰 청춘 앞에 누군가 손 내밀어 주길 바라던 그때 말이다.
'짠하고 싶은 날에는'에는 그런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친구나, 선배의 말이 묻어 있다. 훈계하려 들지도 않고 "그냥 이런거야 별거 아니야 단지 내가 지내보니 이런거였어"하고 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이렇게 자신의 지나온 얘기로 시작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자기 안에 담긴 속내를 비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속내에 귀기울여지는 것은 그가 지내온 시간안에 서투름과 미숙함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상처받고 자신안에서 힘들어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것에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 책을 힘들어하는 내 아이에게 주면서 너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너 혼자만이 아니라고 말해 준적이 있다. 그리고 네가 쌓아 왔던 그 시간이 많은 사람들의 인연이 얽힌 시간임을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과연 납득을 했을까?
어쩌면 또 현재의 시간을 넘기려면 그만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한 '우린 어쩌면'에서 처럼 이런 서투름의 시간이 반복되어가며 살아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름답게 살아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는 것이 인지상정 일 것이다.

사실 대화는 그 대상이 중요한데 아이에게 알맞은 대화의 상대처럼 권한 셈이다.
한가지 더 좋은 것은 은근히 마음을 콕 집는 일러스트가 라디오 디제이가 던져주는 음악사이 멘트처럼 그 행간에서 감성을 더해주는 점이다.
오늘도 자신만이 아는 이런저런 많은 일상에서 한마디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몇마디의 다른 말보다 이책을 넣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