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것 - 인류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후베르트 필저 지음, 김인순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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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일구어 낸 크고 작은 것들,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변화들을 찾아 가는 여행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뿌리를, 우리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안정된 상황이 혁신을 일구어 낸다는 것이다. 안정된 상황이 뭔가를 실험해 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물론 결핍도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창의적으로 발명해 낸 것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안정된 기반이 필요하다.(…)오늘날 자명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일찍이 언젠가는 엄청난 모험이었고, 그 배후에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기량이 숨어있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머리말' 중에서 6-9쪽)
 
 
독일의 고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후베르트 필저의 <최초의 것>은 인류의 삶과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던,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최초의 것' 18가지를 순차적으로 논한다. 인간은 직립 보행을 기점으로 손의 자유로움을 얻었고, 이후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다루고, 점점 발달하는 뇌를 통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고, 무기를 만들고 예술적 가치에 눈 뜨고, 옷을 입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가축을 기르고, 수를 헤아리고, 신적 존재를 경배하고, 정착하고, 관료제가 도입되고, 술을 빚고, 스포츠를 즐기고 그리고 컴퓨터를 만들고 사용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18가지의 최초의 것-최초의 도구, 최초의 불, 최초의 언어, 최초의 살인 무기, 최초의 음악, 최초의 맥주 등-을 밝히는 데 있어서 과학적 증명, 고고학적 고증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의 흔적과 궤적을 쫓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고, 탄탄한 학문적 토대 위에 고증학적 추론과 상상력을 더하여 이 최초의 것들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밝히는 데에 무게를 두었다. 또한 반성과 숙고의 과정을 통해 오늘날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성찰한다. 바로 이러한 철학적 고찰이 후베르트 필저의 <최초의 것>이 담고 있는 의의일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무기를 개발했다. 침팬지들이 이따금 작은 창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냥을 위한 것이지 결코 의도적으로 다른 침팬지를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인간의 역사는 아주 일찍부터 무기들로 넘친다. 방망이, 도끼, 화살, 칼, 창은 인류 최초의 무기들이다. 그것들은 전부 원래 사냥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이다.(…)원시 시대부터 한 가지 사실만을 변함없다. 모든 살인의 배후에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살인 무기' 중에서 110,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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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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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네게 빠지게 됐는가를 종일 생각하다가 먼저 떠오른 것은, 너의 손이다. 내가 처음 보았던 너의 손은, 우리 집 데크의 내 흔들의자 팔걸이에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네가 산책하던 중 내 집에 들어왔다가 무심히 그 의자에 앉아 잠든 날 보았던 손이다. '놓여져' 있었다는 내 표현에 주목해다오. 그것은 네 의지로 네가 내려놓은 손이 아니었다. 우연히, 그곳에 놓여져 있었다. (92쪽)
박범신의 <은교>는 크게 세 가지의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째는 칠순을 바라보는 도저하고 명망 높은 시인 이적요와 열일곱의 고등학생 한은교를 통해 가질 수 없는,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열망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라는 건 사랑하려고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팔걸이에 그저 ‘놓여져’ 있었던 은교의 손처럼 사랑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우연히, 불현듯이 마음속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인지, 없는 사랑인지 아니면 통용될 수 있는 사랑인지, 그렇지 않은 사랑인지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사랑은 툭 하고 마음속에 놓여져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은교는 ‘빛’이었고 이적요는 그림자 즉 ‘어둠’이었다. 빛 가운데 어둠은 존재할 수 없고,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소멸된다.
 
 
질투심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며, 맹목적 잔인성을 갖는다는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질투심이 꼭 정열의 증거는 아니라고 했다. 정말 질투심이었다면, 나의 질투심이, 은교를 선생님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아니면 선생님을 은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그것이 아니면 재능에 있어 선생님의 그림자조차 따라갈 수 없는 고통에 따른 질투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224-225쪽)
범주의 그 둘째는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메울 수 없는 아득한 간극에 관해서 그리고 사랑과 증오, 연민과 모멸이 공존하는 이중적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적요와 은교의 이야기뿐 아니라 오이디푸스 신화를 근간에 둔 이적요와 서지우의 이야기 역시 이 소설의 굵은 줄기이다. 특히나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이를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읽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소설이든 영화든 잘 짜여진 구성이 주는 쾌감은 역시 크다.
 
 
문학에서까지, 층위를 제멋대로 나누어놓고, 모든 작가 작품을 마치 공산품에 품질 표시를 하듯 표시해서 칸칸마다 나누어 몰아넣으려는 듯한 지식인 독자들의 일반적 습관에 나는 경멸감을 갖고 있었다.(…)그들의 분류 기준이란,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대개는 전근대적 '양반의식'이 이월상품처럼 전이돼온 것이다. (141쪽-142쪽)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250-251쪽)
그 셋째는 작가 박범신의 목소리다. 사랑에 대한, 늙음에 대한 그의 성찰과 역사 저편으로 흘러간 고단했던 청춘을 향한 위로와 안타까움 그리고 대한민국 문단의 전근대성과 편협성에 관해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 문학에는 호불호가 있는 것이지 양반과 상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감은 자연이며 과오일 수 없고, 늙는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고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청춘의 욕망, 노년의 욕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갈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적요의 목소리가 아니라 박범신 자신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려는 듯 소설 곳곳에 박범신의 실제 시집인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의 시詩들을 배치하고 있다.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욕망은 한껏 당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고요했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로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310-311쪽)
그 숱한 사랑 이야기들은 결국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의 귀결이다. 이적요의 입을 빌려 저자는 사랑은 본래 미친 감정이고 당신들의 사랑은 당신들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랑이란 무엇이다라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정형화되어 있는 범주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들은 틀을 짜고 잣대를 들이댄다. 사랑은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고 또 많은 형태와 방법이 있다. 그것은 광기일 수도, 욕망일 수도, 헌신일 수도, 열망일 수도 있다. 소설 <은교>는 나에게 넌 빛이었기에 가질 수 없음에도 끝없이 갈망했음을, 한없이 사랑했음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간절했기에 나의 해체를 통해 소유의 욕망이 아닌 내어주고 싶은 욕망으로 그리고 욕망을 넘어선 사랑이었다고 말이다. 적어도 이적요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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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나무 여행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2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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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을 두고 흔히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을 합니다. 워낙 더디 자라고 오래 살기 때문에 살아서 천 년을 살 수 있는 나무이고, 이 붉고 아름다운 목재로 만든 것은 아주 오래도록 변치 않아 죽고도 천 년을 간직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조급한 세상에서 주목이 헤아리는 세월의 여백이 부럽기도 합니다. 지금도 소백산이나 태백산을 오르면 천 년을 살았음직한 검푸른 주목 숲의 장엄함을 만날 수 있지요. (158쪽)

 

‘나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의 이미지는 주목나무에 가장 가깝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 멋들어진, 묵묵히, 초연한, 장엄한, 고요한, 한결 같은, 숭고한 등의 낱말들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 그 나무들 가운데서도 주목은 마치 나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보편적 이미지를 집약하고 상징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백 년을, 이백 년을, 천 년을 살아가는 주목의 삶은 인간의 시간이 덧없음을 말하기보단 욕망과 욕심으로 들끓는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마음과 번민 앞에서 곧은 심지가, 굳은 의지가 무엇인지 제 몸을 다해 현현한다.

 

우리가 낭만으로 여기는 낙엽이 무엇이고, 구경하고 놀이를 떠나는 단풍이 무엇인지를요.(…)초록색 잎사귀는 그 속에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든다는 증거의 빛깔입니다. 나무들이 더 이상의 생장을 포기하는 순간 초록의 엽록소는 파괴됩니다. 그리고 숨어 있던 카로티노이드와 같은 노란 색소가 드러나면 은행나무처럼 노란빛 단풍이 들고, 안토시안과 같은 붉은 색소가 발현하면 단풍나무처럼 붉은빛 단풍이 들지요. 어려움을 준비하는 힘들고 비장한 순간에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빛으로 자신을 물들이는 존재가 나무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200, 203쪽)

 

이 산천에서 피고 지는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의 저자 이유미 박사는 <내 마음의 나무 여행>을 통해 이 한반도 땅에 뿌리내린 나무들의 고고한 삶을 전해준다. 그 흔한 벚나무, 아카시아(아까시나무), 밤나무부터 한라산 언저리 척박한 현무암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는 돌매화나무, 신들이 사는 숲의 나무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 꽃도 열매도 다 져가는 11월, 찬 서리를 맞으며 고운 꽃잎을 내미는 차나무 등등 마치 운명처럼, 숙명처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하다. 저자의 말처럼 곧 닥쳐올 모진 시련 앞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빛으로 자신을 물들이는 존재가 나무 말고 또 있을까. 4월의 막바지. 매섭고 시린 겨울바람 앞에 굴복하지 않고 나뭇가지마다 생명과 희망을 담아 새순을 준비한 나무는 이제 다시 봄 햇살 아래 푸른 잎을 활짝 펼쳐 보이고 있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잎을 흔들어 위로하고, 꽃을 피워 기쁘게 하며, 열매를 내어 준 나무 말입니다. 가지로는 집을 짓고, 줄기를 잘라 배가 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그루터기로 남아 행복했던 나무죠. 짧은 동화지만 나무라는 존재를 이처럼 아름답고 간결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어 읽고 또 읽으며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나무가 소년을 사랑했던 것이 더욱 마음을 울립니다. 저는 한 자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나무를 보면, 비록 우리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분명 나무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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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지식 세계고전 절대지식 시리즈
사사키 다케시 외 83명 지음,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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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도쿄대 총장이었던 사사키 다케시 외 일본의 석학들이 집필한 <절대지식 세계고전>은 정치 분야, 경제 분야, 법, 철학 사상, 여성학, 교육학 분야, 역사 분야, 환경문제를 비롯한 반문화(反文化) 분야 등 총 아홉 분야의 고전 94권을 ‘소개’한 책이다. 대체로 이런 부류의 책들이 그러하듯 심오한 울림이라든가 깊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정도의 지식은 위키백과를 비롯한 인터넷상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절대지식 세계고전>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미덕이 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오늘날에도 부동의 지위를 점하고 있는 괴물 같은 고전 94권을 매우 간결하고 체계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현학적 표현이나 일체의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각 고전의 저자와 그 저자의 대표적 저서를 짜임새 있게 요약, 구성, 정리하였다. 이러한 특징(이를테면 일목요연함 같은)은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가마타 히로키의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에서도 모두 나타나는 특징이다. 깊이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오랜 시간 학문에 몸 담아왔던 학자들이 원숙하고 농익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당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94권의 고전들을 취합하고 개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 바로 <절대지식 세계고전>의 특징이자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의 깊이 있는 정수를 만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실망하겠지만 각 고전들에 대한 짜임새 있는 개론을 원한다면 그리고 잘 만들어진 나침반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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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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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79쪽)

 

문학 평론가 김현은 우리나라의 ‘비평’ 내지는 ‘평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이다. 김현의 저서 <행복한 책 읽기>는 그의 유고 일기이며 무수한 문학작품들, 인문학 서적들, 시, 영화에 대한 서평이고, 켜켜이 쌓아올린 단상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의 가장 끔찍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 (71쪽)

 

몇 해 전에 읽었던 책인데 문득 다시 꺼내들어 읽으면서도 여전히 읽는 내내 긴장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끝없이 던져대는 난해하고 날카로운 질문들, 신랄하고 단호한 통찰과 주장 앞에서 주눅이 든다. 어째서 그는 이토록 맹렬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 그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과 그 죽음을 예견한 김현의 글쓰기와 책 읽기는 날숨과 들숨이었고, ‘삶’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치열하게 사유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나는 물음들로 가득했던 것이 아닐까(문득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틀릴 리가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 (178쪽)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김현. 사망하기 반 년 전쯤 남긴 그의 마지막 일기이자 짧은 시 한 편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한 인간의 실존적인 두려움을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한 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삶을 향한 열정을, 생에 대한 고귀하고도 숭고한 욕망을 한 편의 시 안에 모두 토해내고 있다. 아, 살아 있다.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행복한 책 읽기: 김현의 일기 중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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