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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모든 것이 반드시 그에게, 이를테면 그의 권력과 주머니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이든 특수하든 자신의 만족에 대해 또 하나 고결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온 세상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속한 계급의 성스러운 경전은(…)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리께서 이르시되, 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니라.” (152쪽)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자 숭고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도시’란 프랑스 혁명 당시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책의 구성 역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소수의 압제자였던 왕족과 귀족의 횡포가 극에 달해 있었고, 다수의 피지배자였던 일반 민중들의 분노와 울분 역시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디킨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고통 받는 자, 굶주린 자, 억압 받는 자를 향한 연민과 애민을 담아내곤 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 올리버에게는 고생 끝에 해피엔딩을 선사했고,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는 스크루지 영감을 회오시켜 가난한 이들을 돕게 했다.
(기요틴은) 심지어 말끔하게 면도하는 솜씨가 최고라 국보급 면도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구는 기요틴에게 키스하고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가 하면 마대 속에 재채기를 했다고 수군거렸다. 이것은 새로운 인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기요틴은 십자가의 지위를 빼앗았다. 사람들은 십자가 목걸이 대신 기요틴 모형 목걸이를 걸었다. 기요틴에게 절을 했고, 십자가가 치워진 곳에서 기요틴을 숭배했다. (393쪽)
그런 의미에서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지배계층의 비인간성과 패악을 비판하되, 피지배계층을 향한 무한한 연민 대신 그들 또한 지배층의 양상과 압제자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음을, 숭고했던 목적이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풍자적, 해학적 요소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국기의 상징이기도 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일어났던 민중들이 점차 본래의 목적과 의도를 상실한 채 증오, 복수, 광기로 치닫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혁명인 동시에 그 안에는 또 다른 비극과 희생, 비인간성과 부도덕성이 존재했음을 디킨스 특유의 서정성을 담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역사적 비평과 서정성뿐만이 아니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니 만큼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소한 사건들, 사소한 대화 등이 실은 이유이고, 원인이며 복선이고 암시이다. 결론으로 도달할수록 이 소설이 얼마나 치밀하고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잘 짜여진 구성이 주는 쾌감과 더불어 깨닫게 된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친 광경에서 무엇이 그 남자의 일생보다 더 슬프겠는가.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는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였다.(133쪽)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행동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어느 길보다 훨씬 평안한 길이리라.” (543쪽)
부당하게 십팔 년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마네트 박사, 사랑스러운 그의 딸 루시, 그녀의 남편이자 마네트 박사와 비극적 관계에 놓인 찰스 다네이, 헌신적이며 따뜻한 노신사 자르비스 로리, 추악하지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부름꾼 제리 크런처, 속물 변호사 스트라이버, 광기와 복수의 상징인 드파르주와 그의 아내 테레즈, 압제자의 상징인 에브레몽드 후작, 그리고 부정과 자학 속에서 살다가 인생의 끝에서야 평안을 얻은 시드니 카턴(재봉사 처녀와 카턴이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많은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지만 찰스 디킨스는 마네트 박사와 카턴을 통해 증오와 폭력, 복수, 혼란과 광기 가운데서도 인간이 얼마나 존엄할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존엄함이란 다름 아닌 용서와 사랑,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 그리고 숭고한 희생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문호 찰스 디킨스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굳이 밝히고 싶다면 그의 작품 몇 가지를 열거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 디킨스의 작품들은 소설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 무수히 재탄생되었고 후세의 많은 대가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유년 시절에 만났던 찰스 디킨스, 갓 성인이 되었을 때 만났던 찰스 디킨스 그리고 이제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대문호 찰스 디킨스와 또 한 번 이렇게 만났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