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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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힐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71, 104쪽)

늘 하던 이야기지만 정치인 유시민보다 글 쓰는 유시민을 좋아한다. 그의 사상이나 신념, 정치적 행보가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그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갈한 문체에 담긴 지고지순한 인간애가 좋고, 차분한 문장에 담긴 깊은 울림이 좋고, 온유한 어투에 담긴 강인한 신념이 좋아서다. 그런데 정치인의 삶에서 벗어난 유시민이 처음으로 집필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앞서 그가 집필한 책들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번 글쓰기는 정치적 이유로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 관념의 속박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날의 글쓰기와는 다르게 조금은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그 대신 앞선 글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소탈함이 있고, 자신의 내면(이를테면 과거의 행적이라든가 살아온 이야기, 지극히 사적인 그의 견해와 상념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조금은 달라진 글쓰기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며 행복한 삶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타심, 측은지심)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264쪽)

저자는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무엇을 하든 자기 결정권과 자유의지를 통한 기쁨과 자부심이 전제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즐겁게 놀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돈을 좇기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연대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며 의미 있는 삶이고 존엄한 삶이라는 것.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답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제각각일 것이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강요하거나 강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있다. ‘나는 존엄하다 그리고 타인도 존엄하다’라는 대전제. 나의 존엄성과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기억하고 가꾸고 소중히 할 때, 사람마다 정답에 가까운 각각의 삶의 의미와 각자의 삶의 가치를 찾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찾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분투한 사람의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삶의 완성이며 성취일 것이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삶이고 죽음이다. 그러하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하고 때론 번뇌하면서 그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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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의 전설 펭귄클래식 132
워싱턴 어빙 지음, 권민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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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나 기 드 모파상, 알퐁스 도데 같은 프랑스 단편소설 작가, 니콜라이 고골, 안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단편소설 작가 등 단편 문학의 거장들 가운데 ‘워싱턴 어빙’이란 이름은 사실 익숙지 않다(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럼에도 그가 영 생소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팀 버튼의 영화 ‘슬리피 할로우’ 덕분일 것이다. 바로 워싱턴 어빙의 단편소설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원작소설은 구체적인 내용도, 등장인물도, 결말도 사뭇 다르지만 큰 줄기는 동일하다. 슬리피 할로란 이름의 외진 마을은 밤이 되면 자신의 머리를 찾아 헤매는 목 없는 유령에 대한 괴이한 소문으로 들끓었고,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 이커보드 크레인이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단순한 구성으로 전개되지만 그 단순한 포맷 속에는 정교함과 유려함, 신비로움과 공포, 낭만과 환상이 한껏 녹아 있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외 11편의 또 다른 단편들 역시 어빙 특유의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때론 유쾌하고도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그가 미국 단편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유려한 필력을 지닌 작가여서가 아니라 미국 단편 문학의 초석을 마련하고 후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싱턴 어빙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는 이는 꼼짝없이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게 되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일은, 앞서 언급한 몽상적 경향이 비단 이 골짜기의 원래 주민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 무의식중에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슬리피 할로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아무리 정신이 말짱했더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의 마력을 들이마시고 점점 상상 속에 빠져들어, 꿈을 꾸고 환영을 보게 된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중에서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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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펭귄클래식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마이클 헐스 작품해설,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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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봐요.” (85쪽)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무슨 내용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매우 짧고 간단했다. “베르테르라는 한 청년이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이지.” 십대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수성 충만했던 여고생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향력은커녕 참 못나고 어리석은 남자 베르테르, 한 여자에게 평생을 두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난 무책임한 남자 베르테르, 비겁한 겁쟁이 베르테르라는 기억만을 남겼을 뿐. 이것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때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의 고통을, 욕망의 고뇌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비단 사랑뿐이겠는가. 가질 수 없는 그 숱한 대상들을 향한 무한한 갈망과 욕망을,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성인이 된 지금, 베르테르의 슬픔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베르테르의 말처럼 내면에 자리한 ‘어두운 욕망의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 내면에 단단히 자리한 욕망의 세계는 이 책의 저자 괴테 역시 떨쳐낼 수 없었다.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를 연모하게 된 괴테 본인의 고백과 유부녀를 사랑했던 지인의 권총 자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한 일종의 고백록이자 논픽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게 된 괴테는 베르테르의 입을 빌려 탄식한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 불행의 근원이 되다니 말일세. (90쪽)

 

책의 곳곳에 묻어나는 자연을 향한 동경과 그에 대한 서정적이고 수려한 묘사, 1700년대 말 독일 신분 계급 사이의 갈등과 관료제와 인습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사랑 이야기 안에 유려히 녹여내는 대문호의 필력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괴테의 도저한 시선에 탄복하게 된다. 파우스트(1831년) 또한 파우스트에게 욕망이 없었더라면 무대의 막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니. 중요한 것은 괴테의 시선이 단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열망과 욕망의 탐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괴테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갖지 못했기에 죽음조차 불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으로 각인되는 대상의 실체를 관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자각했다고 해서 대상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베르테르가 자신의 눈에 총을 발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이루지 못한 열망의 대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안나 카레니나도, 위대한 게츠비도, 폭풍의 언덕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그래서 참으로 애틋한 존재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나는 언덕에 서서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네!(…)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서둘러 가보았지만 내가 원하던 것은 찾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왔네. 우리의 미래는 바로 그런 먼 거리와 같다네!(…)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쳐 유일하고 무한하며 장려한 감정의 온갖 환희로 가슴을 채우려 애태운다네. 그러다가 아! 막상 그리로 달려가면, 저곳이 이곳이 되면, 모든 것은 전과 다를 게 없어지지.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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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
요헨 마이 외 지음, 오공훈 옮김 / 지식갤러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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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효과들은 단순히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 및 원인과 결과의 설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효과들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며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고 삶의 전반을 통틀어 반드시 마주치는 효과들이다. (머리말 중에서)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은 인간의 행동과 습관, 생활 패턴, 특정 상황에서의 말과 행위들 심지어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믿는 결정까지 실상은 내재된 잠재의식과 인간의 ‘심리’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근거로써 백여 가지가 넘는 심리 효과(effect)를 알기 쉽게 소개,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밝혀 간다.
 
 
스파이크 리와 노버트 슈워츠에 따르면 손을 씻는 행동은 단순히 위생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비누를 통해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는 행동이다.(…)인간은 누구나 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릴 때 어느 정도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절박한 욕구가 있다. 한쪽은 찬성하고 다른 쪽은 반대해야 하는, 즉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친구나 배우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다. 손을 씻는 행동은 이렇게 정당화에 수반되는 고통을 덜어준다. (맥베스 효과 중에서 80-81쪽)
 
방관자 효과와 바넘 효과 등을 통해 본인의 이성과는 상관없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휩쓸려 가고 있는지, 맥베스 효과와 루시퍼 효과 등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속이고 감추고 있는지, 호혜 효과와 수면자 효과 등을 통해 계획에도 없던 소비를 왜 할 수밖에 없는지, 최근 효과와 스트루프 효과 등을 통해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확증 편향과 반복 효과 등을 통해 인간의 판단과 결정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헬퍼 신드롬과 파킨스 법칙 등을 통해 사회와 직장에서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카멜레온 효과와 도미노 효과 등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차례차례 발견하고 인식하게 된다.
 
 
도와줘야겠다는 욕구가 도와줄 필요성보다 더 클 때, 굳이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데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으로 팔을 걷어붙일 때 또는 주목과 칭찬을 받으려는 의도로 도움을 베푸는 것일 뿐 진정 곤경에 빠진 누군가를 궁지에서 구해내려는 것과 별 상관이 없을 때다. 슈미트바우어는 이 같은 현상을 ‘헬퍼 신드롬’이라고 불렀다.(…)그들은 다른 이가 자기를 필요로 하며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때 상황은 거꾸로 뒤집힌다. 그런 선행은 더 이상 사리사욕 없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라 극도로 이기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헬퍼 신드롬 중에서 329-330쪽)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을 통해 말과 행동, 판단과 결정 등 우리의 숱한 행위들이 인간 근저에 자리한 잠재의식과 심리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 그러하기에 자신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알고 있는 타인이 어쩌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혹은 곡해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요헨 마이와 다니엘 레티히는 많은 실험 결과와 다수의 심리학적 자료, 풍부한 예시 등을 근거로 인간의 행동 심리를 명쾌하고 유쾌하게 설명한다. 또한 <설득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행동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루시퍼 이팩트>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정신분석학자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등 유수의 학자들과 그들의 실험,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학설들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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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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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반드시 그에게, 이를테면 그의 권력과 주머니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이든 특수하든 자신의 만족에 대해 또 하나 고결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온 세상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속한 계급의 성스러운 경전은(…)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리께서 이르시되, 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니라.” (152쪽)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자 숭고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도시’란 프랑스 혁명 당시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책의 구성 역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소수의 압제자였던 왕족과 귀족의 횡포가 극에 달해 있었고, 다수의 피지배자였던 일반 민중들의 분노와 울분 역시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디킨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고통 받는 자, 굶주린 자, 억압 받는 자를 향한 연민과 애민을 담아내곤 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 올리버에게는 고생 끝에 해피엔딩을 선사했고,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는 스크루지 영감을 회오시켜 가난한 이들을 돕게 했다.
 
 
(기요틴은) 심지어 말끔하게 면도하는 솜씨가 최고라 국보급 면도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구는 기요틴에게 키스하고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가 하면 마대 속에 재채기를 했다고 수군거렸다. 이것은 새로운 인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기요틴은 십자가의 지위를 빼앗았다. 사람들은 십자가 목걸이 대신 기요틴 모형 목걸이를 걸었다. 기요틴에게 절을 했고, 십자가가 치워진 곳에서 기요틴을 숭배했다. (393쪽)
그런 의미에서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지배계층의 비인간성과 패악을 비판하되, 피지배계층을 향한 무한한 연민 대신 그들 또한 지배층의 양상과 압제자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음을, 숭고했던 목적이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풍자적, 해학적 요소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국기의 상징이기도 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일어났던 민중들이 점차 본래의 목적과 의도를 상실한 채 증오, 복수, 광기로 치닫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혁명인 동시에 그 안에는 또 다른 비극과 희생, 비인간성과 부도덕성이 존재했음을 디킨스 특유의 서정성을 담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역사적 비평과 서정성뿐만이 아니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니 만큼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소한 사건들, 사소한 대화 등이 실은 이유이고, 원인이며 복선이고 암시이다. 결론으로 도달할수록 이 소설이 얼마나 치밀하고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잘 짜여진 구성이 주는 쾌감과 더불어 깨닫게 된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친 광경에서 무엇이 그 남자의 일생보다 더 슬프겠는가.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는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였다.(133쪽)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행동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어느 길보다 훨씬 평안한 길이리라.” (543쪽)
부당하게 십팔 년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마네트 박사, 사랑스러운 그의 딸 루시, 그녀의 남편이자 마네트 박사와 비극적 관계에 놓인 찰스 다네이, 헌신적이며 따뜻한 노신사 자르비스 로리, 추악하지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부름꾼 제리 크런처, 속물 변호사 스트라이버, 광기와 복수의 상징인 드파르주와 그의 아내 테레즈, 압제자의 상징인 에브레몽드 후작, 그리고 부정과 자학 속에서 살다가 인생의 끝에서야 평안을 얻은 시드니 카턴(재봉사 처녀와 카턴이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많은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지만 찰스 디킨스는 마네트 박사와 카턴을 통해 증오와 폭력, 복수, 혼란과 광기 가운데서도 인간이 얼마나 존엄할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존엄함이란 다름 아닌 용서와 사랑,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 그리고 숭고한 희생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문호 찰스 디킨스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굳이 밝히고 싶다면 그의 작품 몇 가지를 열거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 디킨스의 작품들은 소설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 무수히 재탄생되었고 후세의 많은 대가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유년 시절에 만났던 찰스 디킨스, 갓 성인이 되었을 때 만났던 찰스 디킨스 그리고 이제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대문호 찰스 디킨스와 또 한 번 이렇게 만났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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