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펭귄클래식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마이클 헐스 작품해설,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봐요.” (85쪽)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무슨 내용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매우 짧고 간단했다. “베르테르라는 한 청년이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이지.” 십대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수성 충만했던 여고생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향력은커녕 참 못나고 어리석은 남자 베르테르, 한 여자에게 평생을 두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난 무책임한 남자 베르테르, 비겁한 겁쟁이 베르테르라는 기억만을 남겼을 뿐. 이것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그때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의 고통을, 욕망의 고뇌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비단 사랑뿐이겠는가. 가질 수 없는 그 숱한 대상들을 향한 무한한 갈망과 욕망을, 그로 인한 광기와 절망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성인이 된 지금, 베르테르의 슬픔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베르테르의 말처럼 내면에 자리한 ‘어두운 욕망의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 내면에 단단히 자리한 욕망의 세계는 이 책의 저자 괴테 역시 떨쳐낼 수 없었다.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를 연모하게 된 괴테 본인의 고백과 유부녀를 사랑했던 지인의 권총 자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한 일종의 고백록이자 논픽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게 된 괴테는 베르테르의 입을 빌려 탄식한다.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인간의 행복의 원천이 불행의 근원이 되다니 말일세. (90쪽)

 

책의 곳곳에 묻어나는 자연을 향한 동경과 그에 대한 서정적이고 수려한 묘사, 1700년대 말 독일 신분 계급 사이의 갈등과 관료제와 인습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사랑 이야기 안에 유려히 녹여내는 대문호의 필력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괴테의 도저한 시선에 탄복하게 된다. 파우스트(1831년) 또한 파우스트에게 욕망이 없었더라면 무대의 막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니. 중요한 것은 괴테의 시선이 단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열망과 욕망의 탐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괴테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무나 소중해서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갖지 못했기에 죽음조차 불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으로 각인되는 대상의 실체를 관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자각했다고 해서 대상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베르테르가 자신의 눈에 총을 발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이루지 못한 열망의 대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안나 카레니나도, 위대한 게츠비도, 폭풍의 언덕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그래서 참으로 애틋한 존재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나는 언덕에 서서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네!(…)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서둘러 가보았지만 내가 원하던 것은 찾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왔네. 우리의 미래는 바로 그런 먼 거리와 같다네!(…)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쳐 유일하고 무한하며 장려한 감정의 온갖 환희로 가슴을 채우려 애태운다네. 그러다가 아! 막상 그리로 달려가면, 저곳이 이곳이 되면, 모든 것은 전과 다를 게 없어지지. (53-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