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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의 전설 ㅣ 펭귄클래식 132
워싱턴 어빙 지음, 권민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오 헨리,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나 기 드 모파상, 알퐁스 도데 같은 프랑스 단편소설 작가, 니콜라이 고골, 안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단편소설 작가 등 단편 문학의 거장들 가운데 ‘워싱턴 어빙’이란 이름은 사실 익숙지 않다(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럼에도 그가 영 생소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팀 버튼의 영화 ‘슬리피 할로우’ 덕분일 것이다. 바로 워싱턴 어빙의 단편소설 <슬리피 할로의 전설>이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원작소설은 구체적인 내용도, 등장인물도, 결말도 사뭇 다르지만 큰 줄기는 동일하다. 슬리피 할로란 이름의 외진 마을은 밤이 되면 자신의 머리를 찾아 헤매는 목 없는 유령에 대한 괴이한 소문으로 들끓었고,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 이커보드 크레인이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단순한 구성으로 전개되지만 그 단순한 포맷 속에는 정교함과 유려함, 신비로움과 공포, 낭만과 환상이 한껏 녹아 있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외 11편의 또 다른 단편들 역시 어빙 특유의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때론 유쾌하고도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그가 미국 단편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유려한 필력을 지닌 작가여서가 아니라 미국 단편 문학의 초석을 마련하고 후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싱턴 어빙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는 이는 꼼짝없이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게 되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일은, 앞서 언급한 몽상적 경향이 비단 이 골짜기의 원래 주민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 무의식중에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슬리피 할로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아무리 정신이 말짱했더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의 마력을 들이마시고 점점 상상 속에 빠져들어, 꿈을 꾸고 환영을 보게 된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중에서 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