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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ㅣ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욕망 Desire
커피의 자극은 인간의 한계와 나태함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를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이 서양문화,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칠 줄 모르는’ 지속성이 기본요소이자 근간이 됩니다.(…)과도한 업무형태를 부추기고 지탱해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쪽) 개개인마다 커피에 대한 호불호, 마시는 이유, 마시는 양, 마시는 종류 등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건 언젠가부터 커피는 현대인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음료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커피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커피를 음용함으로써 인간은 ‘깨어 있음’을 지향하고 치열한 경쟁의 세상 곧 이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고 더 나아가 성공하고자 갈망한다. 저자는 커피를 통해 멈추지 않는 지속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함께 물질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금과 철, 브랜드 등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또한 인간의 이러한 욕망으로 인하여 발생한 나라간 빈부의 격차와 착취, 삼림채벌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등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잊지 않고 짚고 넘어간다.
2. 모더니즘 Modernism
근대라는 시대는 중세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인간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주의 시대입니다. (…)‘근대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관리당하고 권리를 침해당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90-91쪽)
근대의 태동은 신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인간의 자유라는 모토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신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인간은 또 다른 존재로부터 지배받게 되었고 권리를 침해받게 된다. 저자는 이 존재를 사회의 거대한 관리 시스템이라는 체계 속에서 우위에 있는 자 곧 ‘보는 자’ 더 나아가 ‘정보를 쥐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무한한 정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근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닫고 이를 넘어선 탈근대, 포스트모던으로의 지향도 결국엔 또 다른 지배층을, 또 다른 피지배층을 다시금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제국주의 Imperialism
제국의 야망은 영역을 바꿨을 뿐 지금도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특히 제국의 야망이 가장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경제 분야입니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의 영토적 침략은 줄었지만 그 대신 금용기관들이 탐욕스럽게 먹이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168쪽)
제국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괴물이다. 과거의 제국은 영토를 확장했지만 오늘 날의 제국은 경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칼에서 총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본과 금융으로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시대이며 자본이라는 무기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제국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형태와 다른 속성을 가진 제국주의가 오늘 날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서 결국 이 제국으로부터 침략당하고, 침식당하고 있는 종속국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현대의 제국주의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며 덧붙여서 그렇기 때문에 실체의 명확성이 파악되기도 전에 이 거대한 제국으로부터 잠식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4. 몬스터 Monster
남들이 다 가진 것을 자기만 갖고 있지 않다는 왠지 모를 열등감,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다는 부러움이나 질투심, 그런 여러 가지 불쾌한 감정의 반동으로 브랜드 물건을 향한 강렬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186쪽)
저자가 세계를 움직인 몬스터로 꼽는 것은 세 가지다. 첫 번째 괴물은 여전히 역동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두 번째 괴물은 몰락했으며, 세 번째 괴물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몬스터인 자본주의는 많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인 ‘욕망’과 가장 절묘하게 궁합을 이루고 있기에 포기할 수 없고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째 모스터인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관료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노동자의 지나친 예속성은 필연적이며 노동자의 자발성과 성취욕은 저하되고 이는 정치적으로는 독재를, 경제적으로는 낙후와 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괴물은 몰락했다. 세 번째 몬스터인 파시즘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과 동시에 사라진 듯 보이지만 민족주의와 극우주의를 내세우고 감성과 폭력에 의지한 채 자국의 이익과 정부의 이익을 좇는 그런 나라, 그런 지도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5. 종교 Religion
기독교는 서양의 세계 침략에서 하나의 무기, 혹은 구실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들은 기독교를 보급하는 것으로 미개한 사람들에게 ‘신의 구원’을 가져다준다며 정복의 명분으로 종교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악용한 이 방식을 예수가 보았다면 통탄할 일이죠. (241쪽)
15분.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으며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단 15분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가 팩트인지 아니면 상징적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세계사가 전쟁사이며 전쟁사가 곧 인류사라는 사실이다. 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종교는 주연이 되었든, 조연이 되었든 매우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출연이 잦은 배우는 바로 일신교들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지하고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진리이며 자신이 믿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여기는 일신교들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 책 가운데 저자의 가장 빛나는 주장은 다름 아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적인 세계가 아니라 많은 신들을 포함하는 신화의 세계’라는 논리일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가 고찰하고 있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곧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는 모두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책에 새로운 사실이나 새로운 논리는 없다)을 풀어 나가되, 세계사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매우 명쾌하며 일목요연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꼽은 다섯 가지 힘이 인류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한 일목요연한 통찰력과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과 궤적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상당히 크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제국주의나 파시즘에 관한 부분에서 교묘히 빠져나가는 저자의 영리함을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