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영화를 만나다
김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남자들에게 있어서 축구란 놀이나 운동, 게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나 보다. 축구뿐만이 아니라 농구가 되었든 복싱이 되었든 남자들에게 있어서 축구를 잘한다, 농구를 잘한다 혹은 축구를 한다, 농구를 한다는 것은 단지 한다, 잘한다의 의미를 넘어선 ‘남자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모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자다움이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남자’로서의 자격이 갖추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남자 아이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일종에 통과의례를 거쳐 남자가 되어감을 상징한다. 그림책 작가에 대해 말할 때 앤서니 브라운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일명 ‘윌리 시리즈’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작가는 작고 소심하고 조금은 부족한 듯 보이는 침팬지 ‘윌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과 소통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축구선수 윌리>에 등장하는 주인공 윌리는 소심하고 체구가 작은 친구다. 다른 덩치 큰 친구들-이를테면 고릴라, 고릴라의 눈에 침팬지는 얼마나 왜소해 보이겠는가-은 이런 윌리를 축구에 끼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윌리는 비록 몸은 왜소하지만 덩치 좋은 선수들을 재치 있게 따돌리고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경기 당일, 윌리는 능수능란하고 정확하게 공을 다루어 결국 상대팀의 골망을 흔든다.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이 작은 친구를 통해서 아이가 소년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동시에 편견이나 힘, 권위 앞에서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건강한 영혼을 담아내고 있다.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의 저자 김영욱은 그림책 <축구선수 윌리>와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잇대었다. 1980년대 영국 북부의 한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는 탄광 마을의 다른 사내아이들과는 좀 다르다. 축구나 권투, 레슬링을 하며 노는 아니 교육받고 훈련받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빌리는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많이 변화했지만 발레라는 것이 그렇다. 발레 포스터가 되었든 발레 관련 팸플릿이 되었든 여성인 발레리나Ballerina의 이름이 우선이며, 그 뒤를 이어서 남성인 발레리노Ballerino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건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으로써 그만큼 발레라는 영역은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예술-오늘날에는 발레리나, 발레리노를 구분하기보다는 남녀 무용수 모두를 통틀어서 발레 무용수(ballet dancer)로 칭하지만-이다. 80년대 그것도 영국 노동계급의 상징인 광산 마을에서 사내아이인 빌리가 발레를 하겠다고 하니 빌리의 아버지나 형은 의아한 것이 아니라 화가 날 지경이다. 노동계급으로서, 광부로서 사내다운 사내가,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야 할 내 아들 빌리가 발레라니! 하지만 빌리는 말한다. 발레를 할 때만큼은 불타는 영혼을,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느낀다고. 결국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 빌리를 로열발레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광부들의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갱도 안으로 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로 빌리가 런던에 위치한 로열발레학교로 가기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넓고 환한 세상으로 향하는 그 순간, 어두운 지하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빌리의 아버지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빌리는 정식 발레리노가 되어 날아오른다, 새처럼. <축구선수 윌리>와 마찬가지로 영화 <빌리 엘리어트> 역시 아이가 소년으로, 성인으로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빌리를 통해 세상이 정해 놓은 편견 앞에 굴복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가꾸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운 영혼을 담아내고 있다.



남자다움이란 무엇이며 또 여자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하는 남성들, 혹은 여성들’을 두고 남자답다, 여자답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다움의 자격 그리고 여자다움의 자격은 다름 아닌 얼마나 건강한 영혼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는가,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바꾸기 위한 용기를 가기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의 여하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팬지 윌리와 발레리노 빌리는 사나이다운 사나이, 남자다운 남자가 아닐까.



<그림책, 영화를 말하다>는 기억의 편린 같은 저자의 소소한 추억들과 열일곱 여덟 편의 영화들 그리고 열일곱 편의 그림책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한 에세이다. 저자가 선택한 그림책-작가 크빈트 부흐홀츠와 로베르트 이노첸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 많지만-과 영화의 조우는 대체적으로 조화로웠으며 에세이로써 갖추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형식에 구애拘礙받지 않고 저자의 경험과 느낌,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좋은 에세이로써 부족하지 하지 않다.



“어느 독자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기 나름의 상상을 펼치며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내 그림책은 그런 수많은 상상의 결과물 중 한 예에 불과할 뿐, 정답은 아니다.”(…)그에게 그림이란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도구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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