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에센스 55 - 박종호가 이야기해 주는 오페라 55편 감상의 핵심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노르마>가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면서도 공연을 자주 보기 어려운 것은 노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좋다고들 말하면서도 자주 올릴 수 없는 작품, 그래서 항상 관객의 목마름을 요구하는 작품, 그것이 바로 <노르마>인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라는 세기의 소프라노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묻혔던 이 오페라가 관객 앞에 다시 섰다. (95쪽)
유럽 화폐가 통합되기 전, 이탈리아 지폐에 그려진 유일한 음악가는 비발디도 푸치니도 아닌 바로 벨리니였으며 그 지폐의 뒷면에는 벨리니의 작품인 오페라 <노르마>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노르마는 작품의 내용도 내용지만 아리아 ‘정결한 여신’의 그 고고한 기품과 아름다움은 단연 압권이다. 그리고 여사제 노르마 역이 보여주어야 하는 섬세한 감정선과 카리스마, 음악적 기교는 모든 소프라노들이 꿈꾸되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역할로 악명 높다. 그래서 무대 위로 쉽게 올리지 못하는 오페라 <노르마>. 하지만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로 인하여 오페라 속 노르마는 현현顯現케 된다. 아니 노르마로 인하여 마리아 칼라스가 세기의 소프라노가 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칼라스 이후 많은 소프라노들이 노르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저자의 말처럼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노르마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등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무대 위는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그때 유명한 간주곡이 연주된다. 고금의 모든 오페라 간주곡을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은 마지막 파국이 닥치기 직전의 폭풍 전야 같은 역할을 한다.(…)지중해의 코발트블루빛이 가득한 이 명곡은 비극을 예감이라도 하듯 유려하면서도 간절하게 흐른다. (333-334쪽)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꼽으라고 한다면 열 손가락 안에,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곡을 꼽으라고 한다면 첫 번째 손가락에 꼽게 되는 곡,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마스카니가 약관의 나이인 26세에 작곡한 이 명곡은 마스카니에게는 기적이고 행운이고 운명이었으며 동시에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 늪이자 넘지 못한 벽이 되었다. 자신의 데뷔작이자 성공작인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을 뛰어 넘는, 아니 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82세에 이르러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쓰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은 이 오페라의 비극적 결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처연하게 아름답고 사무치게 안타깝다. 한평생 얼마나 갈망했을까, 다시 한 번 명곡을 쓰고자.



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투란도트는 류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사랑의 가치를 생각한다. 류는 죽음으로써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가르친 것이다.(…)마지막 장면에서 투란도트는 천자 앞에서 만인에게 공포한다. “그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의 이름은…… 사랑!” (405쪽)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는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되었다. 최대 규모의 야외오페라, 거장 장예모 감독의 연출, 장대한 스케일, 화려한 무대와 함께 음향 시스템의 문제, 관객들의 매너 문제 등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연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잊혀지지 않는 오페라다. 왜냐하면 오페라 <투란도트>였으니까. 오페라의 거장 푸치니의 유작 <투란도트>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푸치니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작업을 했던 투란도트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책의 저자 박종호의 말처럼 투란도트의 피날레는 아직도 창작의 여지가 남아 있기에 지금도 피날레는 여러 가지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되고 있으며, 인간의 개념과 의식의 변화에 따라 오페라 투란도트는 지금도 여전히 재창조되고 있는 살아있는 오페라다. 암으로 무너져 가는 육체와 싸우며 탄생한 거장의 마지막 작품 그리고 미완으로 남은 피날레. 위대한 오페라 투란도트보다 더 위대하고,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보다 더 감동적인 한 음악가의 삶의 마지막. 지금도 그의 이름과 그의 음악은 이렇게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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