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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의 바다 - 영혼의 일기
이해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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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면의 기록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거창하게 말할 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타인의 수기를 읽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말에 경청할 수 있는 여지는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미사 때마다 맨 끝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뜰에 핀 자그마한 들꽃과 그 꽃의 이름을 알고 계시던 어느 수녀님의 인상이 오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수녀원에서 진행되는 피정 프로그램은 일 년에 한 번은 꼭 참여해야 영성이 풍부해질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때로 피정 덕분에 핸드폰에 집착하지 않게 됐고요. 오랫동안 말하지 않더라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웃을 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대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손짓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로 해인 수녀님의 말씀처럼. 행복이란 우리가 불러야 할 손짓이라는 것을 말이죠.


"수녀님. 예수님께서는 어떤 외모를 가지셨죠? 이 사진 속의 인물이 맞나요? 그렇다면 저는 이 인물과 평생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여쭸습니다. 그때 저는 수녀님과 한참 웃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의 예수님께서는 자매님께서 상상하시는 외모와 음성은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자매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계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째서 제가 여러 사람을 부여잡도록 오해하게 만드셨을까요? 농담이지만요. 저는 이제야 제가 마음에 드는 예수님의 사진을 찾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따뜻한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자유롭더라도 주님을 사랑하고 신앙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인의 바다' 책에서는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평화롭게 소통하는 방법을 구해주셨습니다. 이 소통으로 인해서 주님의 현존함이 저를 병자에게 헌신하도록 해주셨고,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는 마음을 단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셨고. 혹은 비난의 아우성으로 가득 찬 광장에서 몸을 피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안전하고 조용한 곳으로 인도해서 늘어진 어깨를 가만히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속의 깊이가 심해처럼 깊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환한 미소가 마냥 그리워서 '해인의 바다'를 사랑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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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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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에드거 엘런 포'는 "우리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오래 두지 못하고, 사라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을 완전히 본다고 느끼는가?"라는 사유를 던져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나의 감정이 정말로 어땠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제 생각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드는 감정은 "허무"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측근에 있었지요. 그분은 요리를 좋아하셔서 "어느 시장의 식당에서 이렇게 만들어 팔더라."라고 하셨죠. 아버지를 떠올리면 '요리'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것은. 저도 가사 일을 돕는 남성의 훌륭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요리를 하시던 중에 피우시던 담배와 조개껍질로 만든 막걸리. 저도 가끔 술을 마신다면 막걸리를 마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란, 그게 아름다움이 아니랄까 하면서 '미학'으로 가르칩니다. 어쨌거나 고인의 성함과 그의 삶을 돌이켰을 때, 고통은 그를 통해서 겪었더라도, 그분께서 행하신 아름다운 행적들을 전해야 하죠. 아름다운 폭력과 고인께서 남기고 가신 저의 병을, 저는 그것을 끌어안았습니다. 이것은 저의 고정적인 아버지에 대한 인상입니다.


페이지 33장의 글귀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한정된 경계를 널려가면서 제 인생에 주인이 되고자 한다. 모름지기 미루고 깊어하지만,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가장 외적인 한계가 죽음이다.


원망스러운 사람과 영원한 이별인데 빨리 그를 만나서 해야 할 말이 있는 이유는 무얼까요? 또 그 할 말이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면요? 제 아버지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떠나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바오로'께서 본인이 생각하는 해피엔드로 가셨길 바랍니다. 영원한 헌신이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인자하시니까 당신 아프셨던 몸을 다 낫게 해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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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
미헬 레메리 지음, 최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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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맑은 눈망울. 모래 장난을 치는 무표정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자선을 구하는 노인과 동전 한 닢. 정의의 여신의 조각상과 성경, 그리고 철조망 앞에 선 한 명의 난민의 사진이 보입니다. 이 도서의 표지 속에는 청년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성인인 제가 청년들이 알아야 할 교리를 선택해서 읽은 것은 '청년 시기에 필요한 말씀을 지금 내가 알았더라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독립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늦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회는 그 문제를 걱정하고 있고, 해결책을 간구하며 여러 가지 방안으로 청년들의 직업 찾기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권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듯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속에는 '홀로서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 도서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홀로서기'가 아니라, '공동의 힘'으로 사회 법률의 정의, 정치와 사회, 전쟁과 평화, 차별과 약자들의 보호와 이해를 돕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자의 보호라던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요? 도서에서는 "불평등, 가난, 불의는 형제애의 깊은 결핍뿐만 아니라 연대 문화가 부재하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모호합니다. 통장속에 1만 원이 든 사람과 1억 원이 든 사람. 정말로 겉으로 가득 차 보이는 상태의 사람은 세상의 약자가 될 수 없고,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을까요? 결핍은 내 눈의 티끌로 볼 수 없으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는 제대로 된 식별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닐 것입니다. 평화란, 모든 소리가 정지된 상태도 아닐 테지요. 평화란, 꽃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말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평화로움이란, 우리들이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기고, 경기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선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법을 집행하는 사법권과, 정의로운 선에 대한 의미는 고대의 도시 사회에서부터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사법 제도는 과거에서처럼 복수하는 방식의 처벌이 아닌, 처벌의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의자의 범죄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공동의 선을 무시하는 이유는 연대 문화의 부족함이며, 하느님의 눈으로 식별한 올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서의 소 제목은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탱할 것 없이 홀로서기를 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경기에서는 친선이 필요하며,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으로! 제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었습니다. 인류에게 공동으로 부족한 자원은 침략이 아니라 함께 계발하는 것이며, 망가진 자연을 돌보는 것도 인간의 몫입니다.


개인이 독거하는 것 만이 홀로서기가 아니며, 누구도 공공의 힘으로 서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부족한 것은 만사에 감사하고, 받은 것에 환원하기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가득 차 있다'라는 시선의 위험함을 스스로에게 경계하면서, 누구도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가난함을 피할 수 없노라고 성경 한 편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카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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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
미헬 레메리 지음, 최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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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맑은 눈망울. 모래 장난을 치는 무표정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자선을 구하는 노인과 동전 한 닢. 정의의 여신의 조각상과 성경, 그리고 철조망 앞에 선 한 명의 난민의 사진이 보입니다. 이 도서의 표지 속에는 청년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성인인 제가 청년들이 알아야 할 교리를 선택해서 읽은 것은 '청년 시기에 필요한 말씀을 지금 내가 알았더라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독립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늦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회는 그 문제를 걱정하고 있고, 해결책을 간구하며 여러 가지 방안으로 청년들의 직업 찾기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권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듯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속에는 '홀로서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 도서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홀로서기'가 아니라, '공동의 힘'으로 사회 법률의 정의, 정치와 사회, 전쟁과 평화, 차별과 약자들의 보호와 이해를 돕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자의 보호라던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요? 도서에서는 "불평등, 가난, 불의는 형제애의 깊은 결핍뿐만 아니라 연대 문화가 부재하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모호합니다. 통장속에 1만 원이 든 사람과 1억 원이 든 사람. 정말로 겉으로 가득 차 보이는 상태의 사람은 세상의 약자가 될 수 없고,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을까요? 결핍은 내 눈의 티끌로 볼 수 없으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는 제대로 된 식별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닐 것입니다. 평화란, 모든 소리가 정지된 상태도 아닐 테지요. 평화란, 꽃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말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평화로움이란, 우리들이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기고, 경기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선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법을 집행하는 사법권과, 정의로운 선에 대한 의미는 고대의 도시 사회에서부터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사법 제도는 과거에서처럼 복수하는 방식의 처벌이 아닌, 처벌의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의자의 범죄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공동의 선을 무시하는 이유는 연대 문화의 부족함이며, 하느님의 눈으로 식별한 올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서의 소 제목은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탱할 것 없이 홀로서기를 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경기에서는 친선이 필요하며,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으로! 제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었습니다. 인류에게 공동으로 부족한 자원은 침략이 아니라 함께 계발하는 것이며, 망가진 자연을 돌보는 것도 인간의 몫입니다.


개인이 독거하는 것 만이 홀로서기가 아니며, 누구도 공공의 힘으로 서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부족한 것은 만사에 감사하고, 받은 것에 환원하기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가득 차 있다'라는 시선의 위험함을 스스로에게 경계하면서, 누구도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가난함을 피할 수 없노라고 성경 구절 한 편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카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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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 바치는 찬가들
코스탄테 베르셀리 외 엮음, 이인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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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율동과 균형이 좋았던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을 나는 성경에서의 시편, 혹은 아가서와 같은 기분으로 읽게 됐는데, 이론서를 선호하는 내게는 책이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학식과 지혜가 있어야만이 이 책에 수많은 학자들이 적은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가 쓴 찬가 37이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 성인에 관한 조사 끝에, 치릴로 성인은 교회의 핵심 인물로, 교부 신학자이며, 그리스도론과 마리아론에 큰 업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신앙의 열정과 인간적인 한계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라고 그의 삶의 업적을 서술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성경 속의 시편, 찬가보다도, 성모님에 의한, 성모님 위한 찬가는 처음 경험하고, 처음이라서 반가우며, 우리 가톨릭 안에서도 쉬쉬하는 '성모 신심'의 불꽃을 일으키는 훌륭한 저서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일 거다.

이 책의 구성은 '엮음'이고, 나는 그 '엮음'을 특별한 협업으로 생각하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으며, 성모 찬가를 기록한 모든 신학자들의 '성모 신심'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쓰기에는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가톨릭에서 공인된 교부철학자들의 찬가니까 우리가 견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들 마음속에 성모님에 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성모님을 견제하는 이유를 본인이 가슴에서 직접 찾아보는 등, 성모님에 관한 독서하기와 인터넷 조회 등으로 신심 활동에 갈등을 회복하고, 화해해서 어머니, 혹은 여인으로서의 성모님을 재 발견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는 욕망이 솟아오를 때, 우리가 매일 수십 단씩이나 바치는 묵주기도 역시, 그 의미를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신다. 이른바 협업이다.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의 성모 신심에는 조금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로사리오(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에 관한 지혜,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칠은'을 기억해야 할 거다. <"지식의 은사"와 "경외심의 은사">말이다. 이 두 항목은 교회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일치하면서 걸어가는 길, 그리고 '덕행'의 길을 성인들의 찬가를 통해서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번만 읽기에는 아쉽다.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꺼낸 책은, 로사리오(묵주기도)가 어렵게 느껴지고, 신심이 약해졌을 때. 우리가 신앙의 어머니로, 내가 자녀 된 입장에 부족함이 따를 때마다, 어머니의 노고를 말씀하시는 이 위대한 성인들의 말씀을 경청하여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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