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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
미헬 레메리 지음, 최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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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맑은 눈망울. 모래 장난을 치는 무표정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자선을 구하는 노인과 동전 한 닢. 정의의 여신의 조각상과 성경, 그리고 철조망 앞에 선 한 명의 난민의 사진이 보입니다. 이 도서의 표지 속에는 청년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성인인 제가 청년들이 알아야 할 교리를 선택해서 읽은 것은 '청년 시기에 필요한 말씀을 지금 내가 알았더라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독립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늦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회는 그 문제를 걱정하고 있고, 해결책을 간구하며 여러 가지 방안으로 청년들의 직업 찾기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권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듯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속에는 '홀로서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 도서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홀로서기'가 아니라, '공동의 힘'으로 사회 법률의 정의, 정치와 사회, 전쟁과 평화, 차별과 약자들의 보호와 이해를 돕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자의 보호라던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요? 도서에서는 "불평등, 가난, 불의는 형제애의 깊은 결핍뿐만 아니라 연대 문화가 부재하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모호합니다. 통장속에 1만 원이 든 사람과 1억 원이 든 사람. 정말로 겉으로 가득 차 보이는 상태의 사람은 세상의 약자가 될 수 없고,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을까요? 결핍은 내 눈의 티끌로 볼 수 없으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는 제대로 된 식별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닐 것입니다. 평화란, 모든 소리가 정지된 상태도 아닐 테지요. 평화란, 꽃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말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평화로움이란, 우리들이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기고, 경기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선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법을 집행하는 사법권과, 정의로운 선에 대한 의미는 고대의 도시 사회에서부터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사법 제도는 과거에서처럼 복수하는 방식의 처벌이 아닌, 처벌의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의자의 범죄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공동의 선을 무시하는 이유는 연대 문화의 부족함이며, 하느님의 눈으로 식별한 올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서의 소 제목은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탱할 것 없이 홀로서기를 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경기에서는 친선이 필요하며,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으로! 제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었습니다. 인류에게 공동으로 부족한 자원은 침략이 아니라 함께 계발하는 것이며, 망가진 자연을 돌보는 것도 인간의 몫입니다.


개인이 독거하는 것 만이 홀로서기가 아니며, 누구도 공공의 힘으로 서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부족한 것은 만사에 감사하고, 받은 것에 환원하기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가득 차 있다'라는 시선의 위험함을 스스로에게 경계하면서, 누구도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가난함을 피할 수 없노라고 성경 한 편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카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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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
미헬 레메리 지음, 최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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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맑은 눈망울. 모래 장난을 치는 무표정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자선을 구하는 노인과 동전 한 닢. 정의의 여신의 조각상과 성경, 그리고 철조망 앞에 선 한 명의 난민의 사진이 보입니다. 이 도서의 표지 속에는 청년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성인인 제가 청년들이 알아야 할 교리를 선택해서 읽은 것은 '청년 시기에 필요한 말씀을 지금 내가 알았더라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독립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이 늦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회는 그 문제를 걱정하고 있고, 해결책을 간구하며 여러 가지 방안으로 청년들의 직업 찾기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권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듯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속에는 '홀로서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 도서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홀로서기'가 아니라, '공동의 힘'으로 사회 법률의 정의, 정치와 사회, 전쟁과 평화, 차별과 약자들의 보호와 이해를 돕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자의 보호라던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요? 도서에서는 "불평등, 가난, 불의는 형제애의 깊은 결핍뿐만 아니라 연대 문화가 부재하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모호합니다. 통장속에 1만 원이 든 사람과 1억 원이 든 사람. 정말로 겉으로 가득 차 보이는 상태의 사람은 세상의 약자가 될 수 없고,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을까요? 결핍은 내 눈의 티끌로 볼 수 없으며,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는 제대로 된 식별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닐 것입니다. 평화란, 모든 소리가 정지된 상태도 아닐 테지요. 평화란, 꽃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말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평화로움이란, 우리들이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이익을 챙기고, 경기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선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법을 집행하는 사법권과, 정의로운 선에 대한 의미는 고대의 도시 사회에서부터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사법 제도는 과거에서처럼 복수하는 방식의 처벌이 아닌, 처벌의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의자의 범죄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공동의 선을 무시하는 이유는 연대 문화의 부족함이며, 하느님의 눈으로 식별한 올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서의 소 제목은 "여러분의 이웃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탱할 것 없이 홀로서기를 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경기에서는 친선이 필요하며, 각자의 몫은 각자의 것으로! 제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었습니다. 인류에게 공동으로 부족한 자원은 침략이 아니라 함께 계발하는 것이며, 망가진 자연을 돌보는 것도 인간의 몫입니다.


개인이 독거하는 것 만이 홀로서기가 아니며, 누구도 공공의 힘으로 서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부족한 것은 만사에 감사하고, 받은 것에 환원하기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가득 차 있다'라는 시선의 위험함을 스스로에게 경계하면서, 누구도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가난함을 피할 수 없노라고 성경 구절 한 편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카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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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 바치는 찬가들
코스탄테 베르셀리 외 엮음, 이인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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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율동과 균형이 좋았던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을 나는 성경에서의 시편, 혹은 아가서와 같은 기분으로 읽게 됐는데, 이론서를 선호하는 내게는 책이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학식과 지혜가 있어야만이 이 책에 수많은 학자들이 적은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가 쓴 찬가 37이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 성인에 관한 조사 끝에, 치릴로 성인은 교회의 핵심 인물로, 교부 신학자이며, 그리스도론과 마리아론에 큰 업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신앙의 열정과 인간적인 한계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라고 그의 삶의 업적을 서술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성경 속의 시편, 찬가보다도, 성모님에 의한, 성모님 위한 찬가는 처음 경험하고, 처음이라서 반가우며, 우리 가톨릭 안에서도 쉬쉬하는 '성모 신심'의 불꽃을 일으키는 훌륭한 저서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일 거다.

이 책의 구성은 '엮음'이고, 나는 그 '엮음'을 특별한 협업으로 생각하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으며, 성모 찬가를 기록한 모든 신학자들의 '성모 신심'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쓰기에는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가톨릭에서 공인된 교부철학자들의 찬가니까 우리가 견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들 마음속에 성모님에 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성모님을 견제하는 이유를 본인이 가슴에서 직접 찾아보는 등, 성모님에 관한 독서하기와 인터넷 조회 등으로 신심 활동에 갈등을 회복하고, 화해해서 어머니, 혹은 여인으로서의 성모님을 재 발견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는 욕망이 솟아오를 때, 우리가 매일 수십 단씩이나 바치는 묵주기도 역시, 그 의미를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신다. 이른바 협업이다.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의 성모 신심에는 조금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로사리오(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에 관한 지혜,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칠은'을 기억해야 할 거다. <"지식의 은사""경외심의 은사">말이다. 이 두 항목은 교회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일치하면서 걸어가는 길, 그리고 '덕행'의 길을 성인들의 찬가를 통해서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번만 읽기에는 아쉽다.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꺼낸 책은, 로사리오(묵주기도)가 어렵게 느껴지고, 신심이 약해졌을 때. 우리가 신앙의 어머니로, 내가 자녀 된 입장에 부족함이 따를 때마다, 어머니의 노고를 말씀하시는 이 위대한 성인들의 말씀을 경청하여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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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하루의 리듬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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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은 특정 목적이나 의미를 지닌 반복적 행동이나 의식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의식부터 개인적 습관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합니다. - 네이버 저는 일주일간 정해진 날짜에 필요에 맞춰서 교육을 받고 일을 합니다. 예술직이 아닌 직업을 가지는 것이 수년 전의 일이라서 많이 낯설고, 긴장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일의 소개와 이해가 부족해서 제가 공무원으로 착각한 경험이 있었고, 돈을 목적으로 다가왔던 이성을 물리치기 위해서 허세를 부려보기도 했습니다. "너 국가에다 고발해버릴 거야!"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우선 제가 처음부터 이해를 잘못했고, 물리치기 위한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의 루틴은 회사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평소라면 대체로 어학 공부나, 간단한 글쓰기로 일상을 전하는 정도, 독서와 공부 따위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종교적 의식은 많지 않지만, "성수기도"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도가 바로 "성수기도"입니다. 저의 루틴은 이제 글이 아니라, 센터에서의 삶이고, 일상적으로 맡은 일을 재미 있게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동료들과 재미있는 일과 추억을 많이 쌓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미있는 모임자리를 개설해 4명이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무척 기대하는 일 가운데 최고입니다. 최근의 제 고민은 직업에 관한 일로 가득차 있고, 마침 책 안에서 다짐을 할 기력이 생겼습니다. 꾸준하고, 오래 버티고. 의견이 있다면 주변 반응보다 스스로를 위해서 똑부러지게 거부하거나 승락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만들어져서, 밑바닥도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의 성품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 리츄얼은, 회사에 가서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게 굴지 말고, 모든 것을 믿거나, 기다리지도 말고, 준비된 상태에서 훌륭한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물론 아침과 저녁 사이에 성수기도는 바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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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poem1219 2025-07-2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추얼˝은 특정 목적이나 의미를 지닌 반복적 행동이나 의식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의식부터 개인적 습관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합니다. - 네이버

저는 일주일간 정해진 날짜에 필요에 맞춰서 교육을 받고 일을 합니다. 예술직이 아닌 직업을 가지는 것이 수년 전의 일이라서 많이 낯설고, 긴장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일의 소개와 이해가 부족해서 제가 공무원으로 착각한 경험이 있었고, 돈을 목적으로 다가왔던 이성을 물리치기 위해서 허세를 부려보기도 했습니다. ˝너 국가에다 고발해버릴 거야!˝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우선 제가 처음부터 이해를 잘못했고, 물리치기 위한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의 루틴은 회사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평소라면 대체로 어학 공부나, 간단한 글쓰기로 일상을 전하는 정도, 독서와 공부 따위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종교적 의식은 많지 않지만, ˝성수기도˝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도가 바로 ˝성수기도˝입니다.

저의 루틴은 이제 글이 아니라, 센터에서의 삶이고, 일상적으로 맡은 일을 재미 있게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동료들과 재미있는 일과 추억을 많이 쌓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미있는 모임자리를 개설해 4명이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무척 기대하는 일 가운데 최고입니다.

최근의 제 고민은 직업에 관한 일로 가득차 있고, 마침 책 안에서 다짐을 할 기력이 생겼습니다. 꾸준하고, 오래 버티고. 의견이 있다면 주변 반응보다 스스로를 위해서 똑부러지게 거부하거나 승락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만들어져서, 밑바닥도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의 성품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 리츄얼은, 회사에 가서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게 굴지 말고, 모든 것을 믿거나, 기다리지도 말고, 준비된 상태에서 훌륭한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물론 아침과 저녁 사이에 성수기도는 바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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