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무작정 그려서는 안 되며, 언제나 생각하면서, 의심하면서 그려야 한다. 잘 그리기 위해서 화가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그의 그림이 그가 무엇을 봤는지를 설명한다.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봤는가? 앞장에 나왔던 관찰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면서, 받아들이면서, 내부에 있으면서, 혹은 동떨어져 한 번쯤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조차도.

의심하지 못하면 자기 생각과 언어를 갖기 어렵다. 
자기 그림을 그리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 P170

또는 나는 저렇게 그릴 수 없을거야. 작가가 될 만한 사람들은 따로 있어. 나는 특별하지 않아. 연습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정말 그럴까? 의심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보길 바란다. 
정말 그런지, 당신의 눈으로 한번 확인해 봐야 한다. 
누군가는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사실일까? 그게 당신의 전부일까?
내가, 혹은 타인이 대상을 이해했다고 착각한 것은아닐까?

이것만큼은 오해와 이해의 잣대에서 벗어나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당신은 뭐든 할 수 있다.
이 작은 사실만 알아도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삶에 큰 힘이 된다.
- P174

-피드백-
피드백에 관한 인상적인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입시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제는 서울대 기출문제 중 하나로, 해산물 파스타 패키지를 그리는 것이었다. 다들 늘 해왔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림을 완성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종이를오려서 각자 패키지를 만들어보라고 시켰다. 

종이를 자르라고요? 어, 만들어봐. 칼 선이 다 있잖아. 

나를 포함하여 다들 당황했지만 더듬더듬 종이를 오려서 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된 패키지가 책상 위에 놓였다. 
항상 평면으로 된 그림을 그리다 갑자기 이렇게 디자인을 하라고 하니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만들어 놓으니 제법 그럴싸해서 깔깔대던 중,
선생님은 가만히 테이블을 둘러보다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너희들이 사고 싶은 디자인 앞에 줄 서."

아, 나는 이 순간의 절망을 평생 잊지 못할것이다. 
내 그림 앞에 몇 명이 서든, 내가 누구의 그림을 선택하든, 
이렇게 선택을 받는 것 자체가 몹시 불편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제발…… 하면서 머리를 떨어뜨렸던 기억이 난다.

기분을 견디기가 어려워 그 순간을 잠시 도려내고 싶었다. 
친구들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다들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다 이내 그림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당시 반에는 4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3개 정도의 디자인 앞에 줄을 섰다.
(다행히 그중 하나가 내 것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입을 뗐다.

"어때? 그림이 많다고 고르기 어려울 것 같아? 봐봐, 너무 쉬워. 
입시장에서도 마찬가지야. 
너희가 앞으로 뭘 하든, 거기서 살아남는 사람은 소수야.
너희도 이제 곧 고3인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 P178

피드백은 그게 어떤 형태이든 우리에게 너무도 확실하게 와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고 싶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이 대개 몹시 솔직하다는 것이다. 
다들 두루뭉술하게 숨기려고 해도 잘 숨기지 못한다. 

만약 그림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의견이 한둘이 아니라면,
안타깝게도 정말로 그림이 별로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이 몰라봐 주는 것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 - P179

한번 당신의 그림을 남들에게 보여주자.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 앞에 줄을 설까? 
줄을 서는지 안서는지보다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을 때, 스스로 뭐가 문제인지 되짚어 보며 
다시 그림을 그리고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사실 이게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더 필요한 능력이다. 그 맷집만 있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 P179

…… 아무튼 그렇게만 생각된 채 잊힐수도 있겠구나.
잠시 서글펐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 이대로 잊히지 않을 거야.
모서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 P183

-공언-
당신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을 그리는 이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다녀야 한다. 
내가 요즘 떠들고 다니는 소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부자가 될거라는 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나는 내가 부자가 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그냥 내뱉고 다녀서 그렇다.

자신감이 없으면 말로 내뱉을 수도 없다. 반대로 말로 내뱉으면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까 떳떳하게 나는 화가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길 바란다.

꼭 말이 아니어도 좋다.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에서는 보여주는 것이 곧 언어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 어찌나 편리한지.

팔로워가 5년 동안 겨우 600명 남짓했던 인스타그램 하나를 갖고 있었지만, 
거기에 그림을 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내가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이라고 인지했다. 

그렇게 기억되는것이다. - P184

몰래 숨어서 연습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 그려서 깜짝 놀라게 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항상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까지 남들에게 다 보여줄 것. 그것이야말로 강하고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방법이다.

‘작가가 되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작가로 불리는 것‘은 남들의 기억에 남아야 한다.
...
당신이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만족한다면 
남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를 설명하길 기대한다면, 
그림을 보여주고 공언해라.
- P185

물은 참 신기하다. 낯선 사람에게는 숨 쉴 수 없는 공간이지만, 적응한 이에게는 더 멀리 부드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 된다.
밖은 시끄럽고 소란한데 수영장에서는 거품 소리만 들리며, 푸른 타일과 그걸 가르는 내 손끝이 뚜렷이 보인다.

처음엔 물이 나를 밀어낸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내가 물을 밀어낼 수 있게 된다. 
저항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저항을 만난다. 
늘 나를 밀어낸다는 기분이 들고 나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서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용할 저항이기 때문이다. - P196

모든 고통을 한 몸에 받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저항을 최소화하면 더 쉽고 부드럽게 나아갈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일들과 사람은 미련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마치 몸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물결을 가르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에서는 필요한 저항과 불필요한 저항을 구분하여 이용한다.  - P197

태어난 것에 의지가 개입할 틈이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차릴 것. 

태어난 후의 삶은, 
특히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선택‘에 달려 있다.
- P202

모두가 여러분을 속이려 들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 받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 인생이 탄탄대로 꽃길일 거라고.

아니다. 지금 내가 대기업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속지 마라. 
대기업에 다니고 결혼하는 것이 
당신의 진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그리고 싶을 때에 아무런 그림이나 그리고, 쓰며 살고 싶다. 돈도 적당히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대기업을 다니는 일과 무슨 상관인가. - P203

예전에는 괜찮지 않았는데 지금은 남들이 다 나처럼 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태연하게 대답할 수 있다. 
"뭐, 그럭저럭." 
이런 이방인의 기분을 참을 수 없어서 안정에 집착했다.

매달려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영영 이방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돌아와야 했다. 나에게 말이다.
- P205

내가 진짜 안정감을 느끼는 때는 
내가 나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예민하고 우울한 내가 싫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을 때, 
친구는 내가 나여서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그 어떤 좋은 회사나 공간에 머물 때보다도 큰 안도를 느꼈다. 
진짜 당신이 안정을 느끼고 싶다면, 
당신에게 안정을 줄 외부세계를 탐색하지 말고 
내부로 시선을 돌리길 권한다.
- P205

뭘 그릴지 모르겠으면,
우선 내가 뭘 그리고 싶은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건 타고난 나의 시선을 인지하는 일과 같다.
나를 오히려 멀리서, 남을 보듯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남 눈치 봐왔던 만큼, 
아니 그것의 배로 자신을 살펴라.
그럼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당신은 무척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말이다.

당신의 이상함을 잘못으로 치부하여 고치지 말고 그대로 바라보길 바란다. 
모두가 깎아내고 지적하는 부분, 그 뾰족함에 주목하는 것이다. - P206

타인의 시선과 내 시선을 두루 갖출 수 있는 것.
둘 중 더 어려운 것은 내 시선을 수호하는 일이다.
왜냐면 항상 사회는 당신을 교정하고 싶어 하니까. 

그림을 고쳐달라고 남들에게 말하는 일을 되도록 삼가라.
대신 당신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그림들을 찾아라.
그것들이 왜 좋아 보이는지 이유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길 바란다. 

그런 질문들이 거듭되면서 
비로소 대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린다는 것은 사실 90퍼센트 이상이 보는 일에 달려 있다. - P208

그림이 무섭다는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다. 
나도 이것을 경험했고, 현직 작가도 그럴 것이며, 혹은 그림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낄것이다. 

뭐든 욕심이 나면, 내 손이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게 
실망스럽고 싫어진다.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를 아예 안 하려고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자신의 기대를 외면하는것이다.
- P211

그렇다면? 그림 연습을 안 하니까 
그림 실력은 제자리고, 불안함만 커진다. 

아, 나 그림 그려야 되는데…… 그런데 무서워서 못 그리니까, 
뭔가를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그럼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온다. 
크로키를 해라, 도형화를 해라, 모작을 해라……… 
결국 그리라고 말한다. 

근데 그냥 그리라고? 그냥 그리는 게 어려운데 말이다! 
그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 P212

나도 겁이 많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해결책을 고안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겁내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10가지 방법.
[212p ~ 220p]

1. 겁이 날 때, 그때야말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가장 좋은 때다.
2. 종이에 아무 선이나 긋고 시작한다.
3. 쉬운 것부터 그린다.
4.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
5. 지우개를 쓴다.
6. 보정,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스스로를 세뇌한다.
8. 망친 그림은 혼자 간직한다.
9. 끝까지 완성하도록 한다.
10. 언제나 모든 그림이 처음 그리는 그림임을 기억한다. - P212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편지 중 이런 말이 있다.

만약 가슴 안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걸‘ 이라는 음성이 들려온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 - P213

예전에 오은 시인의 강연을 들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머리를 싸매며 창작을 하는 오은 시인에게, 어머니께서 
"너는 시를 10년을 넘게 썼으면서도 시 쓰는 게 어렵니?" 
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머니, 저는 시를 10년 넘게썼지만 이 시는 처음 쓰는 시예요."
- P220

우리 모두 그림을 그린 지는 오래됐지만, 
그럼에도 그림이 두려운 이유는 지금 그리는 이 그림이 처음이기 때문이지 않은가. 몹시 당연한 일이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도 계속 두렵겠구나.
그리고 누구나 두려워하면서 창작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두려움이 부끄럽거나 하찮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울 정도로, 욕심이 날 정도로, 덜덜 떨릴 정도로 내가 그림을 잘하고 싶고 사랑하는구나.
- P221

생생한 슬럼프의 터널 안에서 슬럼프에 대해 글을 쓴다. 
뭐라도 써야하는데 별로 떠오르지 않고, 이전에 써둔 글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게임에 빠져서 툭하면 졸리니까 게임 한 판만 하자, 하면서 일들을 미뤘다. 

그 대가로 어떻게 되었는가? 글은 단 한줄도 쓰지 못했고 게임 레벨만 높아졌다.
- P223

신기하게도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흥미롭게 하게 된다.
지금의 나도 어쩌면 수많은 일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이만큼의 내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도망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닌게,
영감은 도망친 일에서 발견된다. - P224

아무리 두려워도 저자가 되는 멋진 미래가 나로부터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참에 슬럼프의 생김새나 한번 묘사해 보자. 
이 녀석은 몰래 온 손님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아차, 시간만 허비했구나‘ 자각하게 된다. 

눈을 내려 발밑을 바라보면 두 발이 진흙에 질퍽질퍽 빠져 있다. 
이런때에는 어쩔 도리 없이 단 두 가지의 선택지만 갖게된다. 
진흙에 계속 있든지 아니면 빠져나오는 것.
- P224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냅시다.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중 - P227

애초에 이 책을 그림 그리는 순서로 구성했는데 슬럼프는 정말 딱 이 지점 즈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정말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걸 겪었다면 당신은 뭔가에 진심이라는 뜻이고, 나 또한 해결 방법을 알 수 없어 힘들지만 그래도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단지 이것이다. 슬럼프를 겪고 있는가? 나도 지금 그렇다.
당신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안이다. - P228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연필 조각과 손끝에 묻은 흑연, 지우개 가루, 
의미가 새겨진 종이 한 장, 약간 빨개진 손가락.

무엇이든 그린다. 그렇게 잔뜩 흔적을 남긴 다음에 잔여되는 것은 그 다음 종이, 백지다.

그게 아마 그리기의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연결을 염두에 두는 것.
- P231

예술은 장면마다 나누어진 사진이 아니라,
필름과 같은 하나의 영화가 아닐까. 
삶에서 상영을 멈춰서는 안 된다.
- P231

훗날 후회하지 않을 말들을 적으려고 노력했다.
내 목표는 언제나 전체이용가다. 
누가 봐도 이해할수 있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들이 좋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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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선-
그렇다면 긴 선을 왜 그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긋는 선의 길이는 시선의 길이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각을 필요에 따라 넓거나 좁게 두어야 형태를 제대로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학원에서는 학생들이 자주 이런 핀잔을 듣는다.
서서 그려! 뒤에 떨어져서 봐! 
크고 넓게 볼 줄 알아야 그림에 방황이 적어진다. 좁은 시야로만 그리면 다른 사물을 그릴 여백이 없거나, 너무 많이 남거나, 혹은 이상한 비율로 뭉쳐 있을 확률이 높다. - P131

-일정한 두께의 선 & 리듬감이 있는 선-
선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도 선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의 경우 대상을 담백하고 평평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두께가 일정한 선을 쓰고, 풍부한 공간감을 담고 싶을 때는 선에 강약 조절을 한다.
이렇게 원하는 느낌에 따라 재료도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매직이나 코픽 마카가 어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플러스펜이나 연필이 좋다.
- P135

무엇이든 의도가 분명하면 거기에 따른 무드가 생긴다. 정답은 없고 전부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니 어떤 느낌을 보여주고 싶은지 먼저 간단히 생각해보자. 틈틈이 그림에 생각을 담는 연습을 해야한다. 

나는 가방 브랜드 로우로우를 좋아하는데,
그 브랜드의 대표가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로우로우에서 만드는 가방은 주머니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깊이 공감했다. 어떤 분야든 창작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 P136

-얇은 선 & 두꺼운 선-
이 또한 입맛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얇은 선에는 이런 느낌이 있다. 시원함, 가벼움, 흐르는 느낌,
리듬감, 바람, 실.
두꺼운 선은 이런 느낌이다. 무거움, 선명함, 멈춰 있는 느낌, 강인함, 물, 털실.

하지만 이 속성을 반드시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고,
의외로 반대로 그리는 것도 꽤나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초여름 한강의 나무들을 표현할 때 두꺼운 선으로 그리는 것이다.
겨울의 모닥불 앞을 얇은 선으로 그리는 것.
오히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선의 무게가 다르다는 지점에서 새로움이 있다. - P137

이처럼 선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여러 옵션이 있으니 뭐든 갖고 놀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여러 선을 써봐야 그림을 더욱 오래, 질리지 않고 그릴 수 있다. 연필 하나로도 표현할 수 있는 선의 종류가 이렇게 많아서 어찌나 든든한지.
- P137

우리는 이미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충분히 각자의 개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당신이 평범이라는 단어릉 함부로 자기 자신에게 씌우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다.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치부하지 말고 가까이 들여다보자. 그러면 그 안에 각자의 색이 있다. - P139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처음에는 단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들만큼 둥글지 못하고 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걸까. 특히 나보다 연장자와의 다툼에서 늘 그런 것들이 해가 되었다.
- P141

이런 내 고민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네가 그래서 더 좋아.

사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가 뾰족하고 모나서 늘 누군가랑 부딪히는 그 부분,
거기에 진짜 내 모습이 있다. 조직 생활을 하거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창작에서 만큼은 그 날을 더 다듬어서 멋지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 뿔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아주선 명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 P142

나는 항상 이게 다 그린 건데요, 하고 그림을 내밀었다.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 완성도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선생님들도 그냥 나처럼 딱 여기까지만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림의 끝은 화가가 정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남들이 미완이라고 말해도 화가가 이게 완성이라고 말하면 완성인 것이다. 
왜냐면 그걸 만든 사람이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니까. 
(여러분이 삶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말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다. 직접 살아본, 살아갈 사람이 진정 판단할 권리가 있다.) - P143

-개성은 플레이리스트다-
이미 음악은 준비되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재생목록을 만들면 된다. 그 플레이리스트가 당신을 설명한다. 이는 모든 종류의 창작에 적용된다. 대상을 창조할 필요 없이, 기존에 있었던 것들을 재조명하거나 조합하여 엮어내면 된다. - P146

각자의 이상한 점이 사회생활을 하면 감출 수 없이 삐죽 튀어나온다. 그것을 둥글게 만드는 것이 사회화의 과정일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럴 필요가 있지만, 당신의 날을 전부 죽여 스스로의 각을 지우거나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말이다.
- P147

나의 평범함이 혼자 갖고 있을 때는 초라한 일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꺼내놓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당신의 개성이 발현되는 방향이 중요한 거지 모양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남들이 갖고 있는 것만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창조‘가 아니다. 당신이라는 하나뿐인 특별한 인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새로움은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비롯된다.
- P148

강약, 그 리듬을 파악하기 이전에 무엇이 강하고 약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그림에서 강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포함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육면체의 모서리, 화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 시선을 사로잡는 색, 대비가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인상, 움직이지만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어떤 중심.
- P152

약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여백, 육면체의 면,
백색의 가장 뒷부분, 대비가 적어 흐린 인상,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선, 시선을 붙잡지 않고 지나가게 해주는 색, 중심의 곁에 맴도는 무언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예시로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때로는 여백이나 면이 가장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P153

모든 표현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적절히 섞였을 때 비로소 리듬을 갖는다. 관찰한 다음에는 대상에서 무엇이 제일 강하고 약한지를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 왼손을 다시 예시로 든다면, 손의 마디와 진한 손금, 그리고 그 외에 두드러지는 특징 등이 강한 축에 속하고, 그 위를 슬쩍 덮은 피부와 그것이 이루는 곡선이 약한 축에 속한다.
- P154

강약은 이처럼 선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면이나 색으로도 가능하다. 글로도 가능한 것이 바로 강약 표현이다. 처음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강약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더 강한 것 앞에서는 약한 것이 된다.
강약은 때와 환경에 맞추어 항상 변화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관찰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 - P155

나는 내가 원하는 표현으로 담백하고 간결한 어조를 선택했다. 그래서 여백과 선 같은 제한된 요소만 사용한다. 그렇다고 지루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을 일부러 엉키게 둔다.
어떤 부분은 생략하거나 얇고 멀리 흐르게 둔다.

어조에 일관성을 갖고 지속하다 보면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 P155

그래서 그림을 홀로 그린다는 생각에 외로웠던 적은 한순간도 없다. 그럴 새도 없이, 내가 버둥대든 말든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 너무 많다!
- P159

-나의 색-
자신이 선호하는 색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땐 주변의 물건을 살펴보는 편이 가장 쉽다.
자주 입는 옷의 색이나, 물건을 고를 때 고집하거나 피하는 색, 그러니까 일상에서 본인이 어떤 색을 선호하는지 생각해 보자. 
...
알지 않거나, 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여러분의 색은 여러분의 존재에 기인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상태로 의식이 있다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그 색이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을 품고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자. - P160

-세상의 색-
세상에는 정말 많은 색이 있다. ‘그림‘에 한정하지 말고 그냥 도처에 있는 것들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 바다와 하늘, 피부와 눈동자의 색만 헤아려도 끝이 없다. 
그중에도 색을 잘쓰는 공간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자. 인스타그램도 좋다. 혹은 여행을 하면서 장소의 색을 느껴보자. 내가 쓰지 않을 색이어도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두고 알면 좋다. 12색 색연필을 쓰는 것과 120색 색연필을 쓰는 것의 차이랄까. 많이 알아두고 염두에 두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물론 적은 색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많은 색이 있는데 그 안에서 선택한 것일 때에 의미가 있지, 다른 대안이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쓰던 색을 고수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 P161

-색의 소리-
색상은 그 자체가 언어로 손색이 없다. 색이 주는 말들과 분위기를 이해하자. 그러려면 색 주변의 환경과 맥락을 살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이 색은 왜 여기에 쓰였을까? 어떤 색과 어울릴까? 나는 왜 이 색이 좋을까? 
색 그자체 말고, 어우러지는 전체의 풍경에도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조합은 어떤 무드를 선사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런 색을 좋아하는가? 이 색을 다른 곳에도 쓸 수 있을까?

색을 공부하는 데에는 옷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막 입기보다는 한번 바닥에 상의, 하의, 양말을 깔아두고 색의 관계를 살피자. 색을 부드럽게 잇거나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런 옷을 입고 나서서 사람들의 차림새를 관찰하라.
지하철에서, 홍대에서, 이태원에서, 청담에서, 신사에서 사람들은 어떤 톤의 옷을 입는지 보는 것이다. 색은 꽤나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런 색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컬러 차트는 빛을 발한다.
- P162

모두들 스스로를 정의할 때 하나를 택하여 구분 짓지는 않았으면 한다. 물론 둘 중 하나에 선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생각 외로 당신이 둘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P165

당신이 당장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지금은 그럴 수 있어도 그게 평생 그럴까?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똑같다. 
아직 서툴 뿐이지 영영 못 할 일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일단 마음을 열어두고 생각하자. 

손으로 그릴까, 디지털 그림을 그릴까? 
그런 생각부터 집어치우길. 당신은 둘 다 할 수 있다.
- P166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을까?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런 게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 다음에 바로 마시면 입을 델 수 있기 때문에, 스타벅스에서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종종 얼음을 두 알 넣어준다. 얼음이 들어가 찰나로 남아 있는 상태, 그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것이다. 
세상에는 모순 같은 일들이 현상으로 분명히 실재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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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제품을 사용하며 연동성과 편의성, 그리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 같은 것을 배웠다. 그때 아이폰을 써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영 모른 채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비웃었을 것 같다. 
이 생태계에 몸을 담가보니 알겠다. 어디에든 세계관이 있고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살 만하게 다듬는 것이 세계관의 사명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머물고 싶은 사람이 되게끔 나를 가꾸는 것,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
- P94

필요 없는 것들만 덜어내도 삶의 많은 것들이 괜찮아진다. 
‘필요 없음‘의 기준은 그걸 빼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삼으면 쉽다. 이를테면 우리 삶에서 가까운 소비를 예로 들어보자. 물건을 구매할 때 이것 없는 삶이 내게 치명적일지 자문 해 보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이 모든 사물이 한 프레임에 전부 나와야 하는 걸까? 더 드러내고 싶은 것과 덜어내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걸 순간순간 느껴야 한다. - P95

이런 질문도 도움이 된다. 뭔가를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왜?‘ 라고 묻는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누리는 와중에 그 중요성을 잊는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일상이 있다. 2020년 코로나사태 이후 평범하게 해온 많은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제야 우리는 빈자리를 느낀다. - P96

한 번 비싼 셔츠의 가치를 알게 되면,
계속 그런 셔츠를 구매하지는 못하더라도 다음에 셔츠를 살 때 참고할 ‘좋은 셔츠‘의 기준이 생긴다.

절약하는 습관은 좋다. 하지만 매사 가성비만 따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가격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궁금해하며 알아갈 기회도 동시에 적어진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좋은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 가격표를 보고 질색하기 전에 한번 질문하자. 이것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가치를 알아보려는 태도와 호기심이 고급 취향과 안목을 키운다. - P104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 모두에게 미움을 받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고 있기도 하다.
냉면도 마찬가지. 나는 그 냉면이 맛있던데 대체 그 말을 누가 한 건지…… 5년간 그곳을 가지 못한 세월이 아쉽다. 그런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 리뷰를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는 않기로 했다. - P105

리뷰를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싶으면 ‘모르겠으니까 해봐야겠다‘ 한다. 
부딪친다고 생각보다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모르겠으니까 해보자. 겪어보고 판단하자. 자신의 시각을 기르자. 안목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품질 관리 요원이 있다. 그 기준이 정밀하고 체계적일수록 삶에 실수가 줄어든다.
안목을 갖고 선택할 것이 너무 많다. 왜냐면 삶은 대부분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인생은 모든 선택의 총합이다. 현명하게 살고 싶다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P105

옷과 말투, 가지고 있는 소품, 방의 인테리어, 듣는 음악, 자주 가는 장소. 이런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소중한 것을 베풀 수있다. 
그것은 사랑이든 그림이든 마찬가지다. 나는 남들에게 본인이 본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 P106

영감이 저절로 벌처럼 찾아오는 꽃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며칠째 물조차 먹지 못한 짐승처럼 등에 붙은 뱃가죽을 감싸안고, 오늘도 키 작은 풀 뒤에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영감을 다정한 방법으로 찾는 방법 따위를 나는 모른다.
오히려 나의 포착법은 사냥에 가까울 것이다. - P109

-영감은 사냥감이다-
가만히 내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쫓아가서 포착해야 한다. 우선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발자국의 모양을 살핀다.
...
발자국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녀석이 숨어 있는 굴이 보인다. 도망칠 수있으니 조심, 또 조심할 것. 때로는 냄새를 지우고 가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너무 많은 나를 가져가면 영감이 도망친다. 때를 보다가, 녀석이 나올 때를 포착한다. 그게 오늘 나의 저녁이다.
- P111

하지만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좋다 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되고, 나를 둘러싼 세상도 아주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간지러워진다. 뭐든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런 기록을 아주 많이 남기는 것이다.
- P115

언제든 사냥이 가능한 상태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주 사냥을 해봐야.
한다. 경험이 쌓여 나의 냄새를 지울 수 있게 되고,
숨소리를 감추게 되고, 끈기 있게 기다릴 줄도 알게 되며, 달아나는 녀석을 단번에 낚아챌 수 있게 된다.
단순하다. 많이 해봐야 잘한다.
- P114

-그 외에 도움이 되는 작은 팁들-

★나이가 많다고 창의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훈련에 가까워서 많이 해본 사람이 더욱 잘하게 된다. 늦었어‘라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작은 것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크고 멋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력에 대한 불신이 기본값이다. 인간은 그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다. 언제나 메모를 해둘 것.

★사냥감을 따라가다 보면 불편한 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는 놀라지 말고 침착하자.
세상이 원래 그렇다. 아름다운 것들보다 이상한 것들이 더 많고, 그게 아주 당연하다. 
『위험한생각들』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깊이 사유하다보면 위험한 진실에 닿게 된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 P115

모서리에서 나는 누구든 곁에 머물러줬으면 했다.
아주 쓸데없는 주제로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꼈다. 더이상 방에 가만히 기대 죽어서 발견될 날짜를 셀 수 없었다. 일어났다. 잊히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과 연결되려면? 끊임없이 질문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질문보다 대답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이폰을 낡은 거치대에 덜렁 걸친 채 미숙하게 크로키를 그려나갔다. 내 손은 머뭇거리다 이내 얼굴이 없는 발레리노의 몸짓을 그었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영상이었다.
- P119

매번 비겁하게 가장 힘든 순간에 그림을 찾곤 했고, 그림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한때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있다. ‘나의 세상에서 그림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않아. 근데 그림이 나에게나 중요하지 세상은 내 그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난 어떻게 살아랴 할까?‘ 그 애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림 때문에 너를 좋아한 게 아닌데.

그 애가 착한 것일수도, 내가 착각을 한 것일수도 있다. 무엇이 정답이든 그 대답은 나에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림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을 많났기 때문이다. - P120

그림을 가르치는 이도 많이 만났다. 주로 10대 때 입시미술을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다들 직업이니만큼 그림을 웬만큼 그리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정말 잘 그린다고 인정했던 사람은 겨우 두 명 남짓이다. 
한 명은 스킬이 너무 좋았고 다른 한 명은 신념이 좋았다. 그렇게 자기만의 가치관을 갖고 그리는 사람을 이후에도 많이 만나지 못했다. 그는 그림을 이미 잘그리는데도 항상 배우고 또 발전시키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고 신기했다. 왜 잘 그리는데 계속 그리지?

그는 어떤 진심을 믿고 있었다. 잔디를 그릴 때 잔디처럼 보이도록 어떤 덩어리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다 가리라고 가르쳤다. 그래야 진짜 잔디처럼 보인다고. - P123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잊을 때 종종 잔디를 그리는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세필 붓으로 푸른 물감을 개어 한 톨씩 종이에 잔디를 심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알려준 어른이 있었지, 하면서 지금도 내 말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하는가. 항상 고민이많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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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을 참 좋아한다. 그저 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학문의 도움도 종종 빌리곤 한다.
...
사람을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통계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얻어 분석하는 것이 내게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일상에서도 문득 심심하면 사람들을 살피는편인데, 이처럼 항상 관찰을 하는 것은 관찰 자체에 흥미를 느껴야 가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살피는 일이 어렵고, 또 피로하게 느껴질 것이다.

관찰을 왜 하는가. 나는 분명한 이점 때문에 한다. 사람의 겉모습을 면밀히 살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마음 까지도 말이다.
마음을 알게 된 후에는 그를 위해 배려할 수도 있고,
적절히 거절할 수도 있다. 타인의 마음을 몰라서 답답한 일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 P81

그림은 정말 본 만큼만 그릴 수 있다. 그 이상 얻어 걸려서 우연히 잘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말 정직하게 보고 느낀 만큼만 종이에 표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나 글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놀란다.
저 사람은 세상을 이 정도의 디테일로 살펴볼 수있는 사람이구나 싶기 때문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 그만의 창작을 한다.
- P82

그럼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당신이 가장 관심 있는 대상을 관찰하길 바란다.
그래야 흥미 있게 지속할 수 있다. 관찰도 결국 훈련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반복해야 잘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엄청나게 관찰하는 편이다.
...
그리고 나를 면밀히 관찰한바, 
나와 타인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사람의 마음이 엄청나게 어렵지않다. 그도 큰 틀에서는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결국 스스로를 아는 일은 인간을 아는 일에가깝다. 타인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살필 것을 권하고 싶다.
- P83

그렇다면 내가 나를 관찰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일기를 쓰는 일이다. 
나는 정말 많은 메모를 한다. - P84

이렇게 몇 년 동안 일기를 뒤적여 보니까 여러 철칙이 생겼는데 일단 일기를 잘 쓰려면 말이지.
정말 쓸데없는 것들을 적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가장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거창하고 멋진 것을 기록하려고 하면 일기 쓰기를 주저하게 된다. 
난 정말 방금 만난 사람에 대한 혼자만의 평가, 그리고 내가 오늘 하루 했던 바보짓, 올해에는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유튜브 주제 등 정말 뭐든 적어둔다. - P86

그리고 나에게는 꼭 솔직해져야 한다. 이게 참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타인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내가 느끼는 온갖 지질한 감정들을 인정해야 글로 적을 수있다. 
눈으로 보기에 역겨운 진실들이 항상 도처에 있었지만 나는 비위를 견디면서 적어냈다. 

이를테면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누군가는 나에게 잘해주지만 나는 그 사람의 친절이 싫다는 것, 그리고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았던 여러 순간들을 썼다. 내가 그간 저질러온 짓임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또 불편한 일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아주 끔찍한 것들이 잔뜩 있어서, 인정하긴 싫지만 스스로가 그렇게 멋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 P87

각자의 누추함은 스스로만 아는 것이겠지요.

너무 많이 봐서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더 꼭꼭 숨겨서 나만 알고 있다. 그래서 우울을 자주 앓는다.
스스로 너무 깊이 들여다 보면 결국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는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정말 그렇다.
지나치게 깊은 사유는 자아를 병들게 한다.

그럼에도 관찰, 그중에서도 나를 관찰하는 것은 몹시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뜻밖에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서 여러 것들을 찾고 나면, 내가 그저 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와 타인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타인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저 사람 또한 나랑 비슷한 인간인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존중과 애정이 가능하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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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 즐거워진다. 그림이 정말로 지루하고 재미없을 가능성보다 당신이 아직 즐거울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 P67

살면서 자주 그런 날들이 온다. 어릴 때는 딱히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그림을 시작하거나 조금 배운 다음에는 예전처럼 쉽게 흰 종이에 선을 그을 수 없어진다. 
뭘 그리지? 차라리 누군가 정해줬으면 좋겠다. 나중엔 이런 말까지 한다. 자유 주제가 제일 어려워!

왜 그런 걸까? 이는 그림을 그리는 흰 종이가 낭비가 아니라 하나의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와 크고 난 후의 시간관념은 다소 다르다. 어릴 땐 자신이 늙는다거나 시간이 부족할 거란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기기에 뭔가 하나를 해도 큰마음을 먹고 시작해야 한다. - P71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리게 되는 거다. 나는 미술학원을 다니면 원하는 그림을 배울 수 있겠지 싶었다. 막상 입시를 시작하니 대학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래도 잠시라고 생각했다.
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합격하면 그때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 아니었다. 대학에서도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 졸업만 하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어떻게 되었을까? 막상 졸업을 하자 ‘내가 뭘 그리고 싶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 P72

-사용할 재료-
나는 어떤 대상들을 보면 그것의 면을 제외하고 선만 남긴 채 감상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나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 포기한, 그런 고민과 선택을 담은 담백한 모습의 그림들이 보고 싶었다. 사람을 완전 카메라처럼 찍어낼 것이 아니라면 표현에 많은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다. 드로잉에는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과 생략을 위한 절제가 필요하다.
여러 표현 기법과 미술 이론을 배운 내가 드로잉을 한다고 하면 교수들은 싫어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까.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겠다.
그래, 드로잉을 하자.
- P75

-취향이 곧 대상이 된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모든 사람이 나 같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한다.
- P76

나는 나에게 도움도 쥐뿔 되지 않는 그림을 대체 왜 그리고 싶어 하는 걸까?
그냥이었다. 정말 거창한 이유 없이 그림이 그냥 좋았다.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고? 그렇다.
이런 게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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