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선- 그렇다면 긴 선을 왜 그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긋는 선의 길이는 시선의 길이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각을 필요에 따라 넓거나 좁게 두어야 형태를 제대로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학원에서는 학생들이 자주 이런 핀잔을 듣는다. 서서 그려! 뒤에 떨어져서 봐! 크고 넓게 볼 줄 알아야 그림에 방황이 적어진다. 좁은 시야로만 그리면 다른 사물을 그릴 여백이 없거나, 너무 많이 남거나, 혹은 이상한 비율로 뭉쳐 있을 확률이 높다. - P131
-일정한 두께의 선 & 리듬감이 있는 선- 선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도 선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의 경우 대상을 담백하고 평평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두께가 일정한 선을 쓰고, 풍부한 공간감을 담고 싶을 때는 선에 강약 조절을 한다. 이렇게 원하는 느낌에 따라 재료도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매직이나 코픽 마카가 어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플러스펜이나 연필이 좋다. - P135
무엇이든 의도가 분명하면 거기에 따른 무드가 생긴다. 정답은 없고 전부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니 어떤 느낌을 보여주고 싶은지 먼저 간단히 생각해보자. 틈틈이 그림에 생각을 담는 연습을 해야한다.
나는 가방 브랜드 로우로우를 좋아하는데, 그 브랜드의 대표가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로우로우에서 만드는 가방은 주머니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깊이 공감했다. 어떤 분야든 창작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 P136
-얇은 선 & 두꺼운 선- 이 또한 입맛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얇은 선에는 이런 느낌이 있다. 시원함, 가벼움, 흐르는 느낌, 리듬감, 바람, 실. 두꺼운 선은 이런 느낌이다. 무거움, 선명함, 멈춰 있는 느낌, 강인함, 물, 털실.
하지만 이 속성을 반드시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고, 의외로 반대로 그리는 것도 꽤나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초여름 한강의 나무들을 표현할 때 두꺼운 선으로 그리는 것이다. 겨울의 모닥불 앞을 얇은 선으로 그리는 것. 오히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선의 무게가 다르다는 지점에서 새로움이 있다. - P137
이처럼 선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여러 옵션이 있으니 뭐든 갖고 놀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여러 선을 써봐야 그림을 더욱 오래, 질리지 않고 그릴 수 있다. 연필 하나로도 표현할 수 있는 선의 종류가 이렇게 많아서 어찌나 든든한지. - P137
우리는 이미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충분히 각자의 개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당신이 평범이라는 단어릉 함부로 자기 자신에게 씌우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다.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치부하지 말고 가까이 들여다보자. 그러면 그 안에 각자의 색이 있다. - P139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처음에는 단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들만큼 둥글지 못하고 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걸까. 특히 나보다 연장자와의 다툼에서 늘 그런 것들이 해가 되었다. - P141
이런 내 고민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네가 그래서 더 좋아.
사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가 뾰족하고 모나서 늘 누군가랑 부딪히는 그 부분, 거기에 진짜 내 모습이 있다. 조직 생활을 하거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창작에서 만큼은 그 날을 더 다듬어서 멋지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 뿔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아주선 명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 P142
나는 항상 이게 다 그린 건데요, 하고 그림을 내밀었다.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말하는 완성도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선생님들도 그냥 나처럼 딱 여기까지만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림의 끝은 화가가 정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남들이 미완이라고 말해도 화가가 이게 완성이라고 말하면 완성인 것이다. 왜냐면 그걸 만든 사람이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니까. (여러분이 삶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말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다. 직접 살아본, 살아갈 사람이 진정 판단할 권리가 있다.) - P143
-개성은 플레이리스트다- 이미 음악은 준비되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재생목록을 만들면 된다. 그 플레이리스트가 당신을 설명한다. 이는 모든 종류의 창작에 적용된다. 대상을 창조할 필요 없이, 기존에 있었던 것들을 재조명하거나 조합하여 엮어내면 된다. - P146
각자의 이상한 점이 사회생활을 하면 감출 수 없이 삐죽 튀어나온다. 그것을 둥글게 만드는 것이 사회화의 과정일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럴 필요가 있지만, 당신의 날을 전부 죽여 스스로의 각을 지우거나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말이다. - P147
나의 평범함이 혼자 갖고 있을 때는 초라한 일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꺼내놓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당신의 개성이 발현되는 방향이 중요한 거지 모양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남들이 갖고 있는 것만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창조‘가 아니다. 당신이라는 하나뿐인 특별한 인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새로움은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비롯된다. - P148
강약, 그 리듬을 파악하기 이전에 무엇이 강하고 약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그림에서 강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를 포함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육면체의 모서리, 화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 시선을 사로잡는 색, 대비가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인상, 움직이지만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어떤 중심. - P152
약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여백, 육면체의 면, 백색의 가장 뒷부분, 대비가 적어 흐린 인상,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선, 시선을 붙잡지 않고 지나가게 해주는 색, 중심의 곁에 맴도는 무언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예시로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때로는 여백이나 면이 가장 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P153
모든 표현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적절히 섞였을 때 비로소 리듬을 갖는다. 관찰한 다음에는 대상에서 무엇이 제일 강하고 약한지를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 왼손을 다시 예시로 든다면, 손의 마디와 진한 손금, 그리고 그 외에 두드러지는 특징 등이 강한 축에 속하고, 그 위를 슬쩍 덮은 피부와 그것이 이루는 곡선이 약한 축에 속한다. - P154
강약은 이처럼 선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면이나 색으로도 가능하다. 글로도 가능한 것이 바로 강약 표현이다. 처음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강약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더 강한 것 앞에서는 약한 것이 된다. 강약은 때와 환경에 맞추어 항상 변화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관찰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 - P155
나는 내가 원하는 표현으로 담백하고 간결한 어조를 선택했다. 그래서 여백과 선 같은 제한된 요소만 사용한다. 그렇다고 지루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을 일부러 엉키게 둔다. 어떤 부분은 생략하거나 얇고 멀리 흐르게 둔다.
어조에 일관성을 갖고 지속하다 보면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 P155
그래서 그림을 홀로 그린다는 생각에 외로웠던 적은 한순간도 없다. 그럴 새도 없이, 내가 버둥대든 말든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 너무 많다! - P159
-나의 색- 자신이 선호하는 색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땐 주변의 물건을 살펴보는 편이 가장 쉽다. 자주 입는 옷의 색이나, 물건을 고를 때 고집하거나 피하는 색, 그러니까 일상에서 본인이 어떤 색을 선호하는지 생각해 보자. ... 알지 않거나, 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여러분의 색은 여러분의 존재에 기인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상태로 의식이 있다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그 색이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을 품고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자. - P160
-세상의 색- 세상에는 정말 많은 색이 있다. ‘그림‘에 한정하지 말고 그냥 도처에 있는 것들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 바다와 하늘, 피부와 눈동자의 색만 헤아려도 끝이 없다. 그중에도 색을 잘쓰는 공간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자. 인스타그램도 좋다. 혹은 여행을 하면서 장소의 색을 느껴보자. 내가 쓰지 않을 색이어도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두고 알면 좋다. 12색 색연필을 쓰는 것과 120색 색연필을 쓰는 것의 차이랄까. 많이 알아두고 염두에 두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물론 적은 색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많은 색이 있는데 그 안에서 선택한 것일 때에 의미가 있지, 다른 대안이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쓰던 색을 고수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 P161
-색의 소리- 색상은 그 자체가 언어로 손색이 없다. 색이 주는 말들과 분위기를 이해하자. 그러려면 색 주변의 환경과 맥락을 살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이 색은 왜 여기에 쓰였을까? 어떤 색과 어울릴까? 나는 왜 이 색이 좋을까? 색 그자체 말고, 어우러지는 전체의 풍경에도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조합은 어떤 무드를 선사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런 색을 좋아하는가? 이 색을 다른 곳에도 쓸 수 있을까?
색을 공부하는 데에는 옷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막 입기보다는 한번 바닥에 상의, 하의, 양말을 깔아두고 색의 관계를 살피자. 색을 부드럽게 잇거나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런 옷을 입고 나서서 사람들의 차림새를 관찰하라. 지하철에서, 홍대에서, 이태원에서, 청담에서, 신사에서 사람들은 어떤 톤의 옷을 입는지 보는 것이다. 색은 꽤나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런 색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컬러 차트는 빛을 발한다. - P162
모두들 스스로를 정의할 때 하나를 택하여 구분 짓지는 않았으면 한다. 물론 둘 중 하나에 선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생각 외로 당신이 둘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P165
당신이 당장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지금은 그럴 수 있어도 그게 평생 그럴까?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똑같다. 아직 서툴 뿐이지 영영 못 할 일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일단 마음을 열어두고 생각하자.
손으로 그릴까, 디지털 그림을 그릴까? 그런 생각부터 집어치우길. 당신은 둘 다 할 수 있다. - P166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을까?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런 게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 다음에 바로 마시면 입을 델 수 있기 때문에, 스타벅스에서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종종 얼음을 두 알 넣어준다. 얼음이 들어가 찰나로 남아 있는 상태, 그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것이다. 세상에는 모순 같은 일들이 현상으로 분명히 실재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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