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어둠 속을 고요히 떠돌고 있는 커다란 돌덩이 곁에 라디오를 든 작은 우주선 친구를 붙여주는 것이다. 라디오는 지구의 신호를 우주선에 전달하고, 우주선이 이 돌덩이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다시 지구로 송신할 것이다. 같은 방향과 같은 속도로, 소행성의 궤도에 발맞추는 ‘랑데부‘다.
우주 랑데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했던 사람은 아마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방문했던 버즈 올드린일 것이다. 그는 달로 향하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수년전부터 랑데부 기법을 연구했다. 지상에서라면 속력을 높이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다른 물체를 따라잡을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속력을 바꾸면 궤도의 높낮이도 같이 변하기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 버즈 올드린의 랑데부 연구는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에 크게 기여했고, 이후의 우주 탐사 임무를 설계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사람들은 그를 ‘랑데부 박사‘라고 부른다. - P170
얼마 전,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회사 스페이스엑스가 민간으로서는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크루 드래곤 캡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우주선은 지표면으로부터 400킬로미터 높이의 상공으로 올라가 시속 2만7000킬로미터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잘으로 접근했다. 가까워질수록 점차 서로의 궤도를 맞추며 함께 지구 둘레를 날았다. 성공적인 랑데부가 성공적인 도킹으로 이어졌고 크루 드래곤이 우주정거장에 연결된 뒤, 19시간 전에 지구를 출발한 우주비행사들은 마침내 해치를 열고 우주정거장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에서의 우주탐사시대를 여는 순간이었다. - P171
오래전 라디오에서 이런 사연을 들었다.
난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에 내는 ‘희망직업‘란에 드러머가 없었다. 난 엔지니어라고 썼고 손에는 스틱 대신 펜이 주어졌다. 그리고 공부도 음악도 어중간한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난 고장난 스피커나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되겠지.
신세한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들렸다.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으면 덜 성공한 경우를 상상할 때조차 음악에 관련된 장비를 다루는 자신을 떠올리는 것일까? ‘고장난 스피커‘를 고치는 사람이라니, 음악을 사랑하며 실천하는 실로 멋진 방법이다. - P174
우리나라가 언젠가 달 탐사를 하리라는 것은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리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아직 추상적인 미래의 일이었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의 ‘우주개발중장기계획‘은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 2000년 이후의 김대중 정부에서도 인공위성 관련 사업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공위성과 더불어 이를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릴 발사체 기술도 착실히 개발되고 있었다. ‘달 탐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였다. 2020년에 달 궤도선을 발사한다는 목표가 설정되었다. 아직은 정부 차원에서 논하는 단계였을 뿐, 탐사에 필요한 기술 개발 방안이나과학적 탐구 목표,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등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달 궤도선 발사 계획을 2023년으로 미루면서,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 역시 시작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유예되었다. 우리나라도 달 탐사를 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국민이 많다거나, 뛰어난 천문학자가 달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일도 없었다. 국내에는 달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자연히 그러했다. 그러다가 2012년 말, 우리나라는 갑자기 달 탐사를 준비하게 됐다. 대선을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달 궤도선 발사를 2017년으로 앞당기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이다.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그는 곧 대통령이 되었고, 그렇게 한국형 달 탐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기술적 난항을 겪으며 두 차례에 걸쳐 궤도선 발사를 연기했다. 현재는 2022년 여름에 발사하는 것이 목표다. - P177
... 공학자들은 부랴부랴 궤도선을 설계•제작했고, 과학자들은 어떤 관측기기를 싣고 갈지 결정했다. 대학에서는 천문학의 다른 분야를 가르치던 몇몇 교수들이 급히달 팀을 꾸렸다. 2017년이 되어서야 국내에서 달 과학 전공으로 첫 박사학위자가 나왔다.
스마트폰이나 신형 자동차 개발이 그렇듯이, 달 탐사에도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가장 쉽게 생각나는 것은 달 과학자다. 달의 이모저모를 연구할 과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이 달과학의 기초를 탄탄히 해주어야 한다. ... 과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관측기기를 제작해주는 기업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개별 관측기기들이 부착될 탐사선 자체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공학기술이 실현되어야 한다. ... 발사체 기술도 필요하다. - P179
... 따라서 훌륭한 공학자가 필요하고, 그들의 이론과 설계를 뒷받침해주는 기술도 실현되어야 한다. 지구에서 탐사선에 명령을 보내고, 탐사선이 보내오는 자료를 지구에서 받을 수 있도록 통신을 담당해주는 팀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탐사전용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누군가는 홍보자료를 만들고, 누군가는 이를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한국형 우주탐사선의 이름과 로고를 정하는 공모전을 진행하는 팀도 필요할 것이다. 나중에 유인 탐사를 하게 되면, 우주비행사는 물론 이들의 건강을 챙길 의사와 헬스 트레이너, 심리 전문가도 필요하다. 우주복을 설계하는 산업디자이너, 이를 제작하는 공장이 있어야 한다. 우주인이 먹을 식량, 달 표면을 탐사할 때 사용할 집게와 가방 따위도 만들어야 한다. 탐사선에 들어갈 전선 하나, 볼트 하나마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거쳐갈 것이다. 수많은 분야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 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예산 집행 내역을 들여다 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방법이 있으니까. - P180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성운과 은하의 위치가 관측한 지역마다 다르게 기록된다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북극성의 고도가 38도 정도지만, 북극에 가면 북극성이 고도 90도, 머리 꼭대기에 있다. 적도에서는 북극성이 지평선 부근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느 방향, 고도 몇도에 별이 있다는 기록은 그 지역에서만 쓸모가 있다.
대항해시대에는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위치와 시간을 알아야했고,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관측하기 좋은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간다. 심지어 우주에 밍원경을 띄워두기도 하는데, 고도와 방위각으로 천체의 위치를 논할 수는 없다. - P184
초승달은 해를 바짝 뒤쫓느라 초저녁에나 잠시 보였다가 이내 지평선 아래로 가버린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달은 차오르고, 뜨고 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진다. 오후에 반달이 보인다면 해와 한참 떨어진 동남쪽이다. 오른손 방향으로 볼록한 상현달이다. 보름이면 서쪽으로 해가 질 무렵에야 동쪽에 달이 떠오른다. 보름달은 해가 없는 동안 내내 밤을 지키다 해 뜰 무렵 서쪽으로 진다.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은 매일 대략 50분씩 늦어진다. 보름에서 며칠이 지나 이제 왼쪽만 볼록한 하현달은 한밤중에야 잠깐 떴다가 낮에 진다. 오전에 서쪽에 뜬 반달이 하현달이다. 며칠이 더 지나 그믐달 무렵이 되면, 새벽녘에야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는 곧 해가 올라오니 낮 동안 보이지 않는다. 초승달은 많은사람들이 볼 수 있고 상현달과 보름달도 꽤나 사랑받는다. 그러나 밤하늘에 하현달이 보이는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그믐달은 밤을 꼴딱 샌 사람들,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태양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보는 그런 달이다. - P186
그러나 우리가 수십 년째 외계 생명체를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오로지 우주에 대한 궁금증,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심 때문이다. 우리는 관찰자일 뿐, 바깥 천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생태계를 위해 어떤 잔인한 포식자 종을 절멸시키거나 가여운 피식자를 집중적으로 키워낼 권리가 우리 인류에게 없는 것처럼.
<스타 트렉> 시리즈에서는 우주 곳곳의 문명이 서로 교류하며 행성 연방을 구성하는데, 연방의 규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외계 문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프라임 디렉티브‘ 규칙에 완전히 동의한다. - P191
그런 지구에 물과 유기물질이라는 생명의 씨앗을 가져다준 여행자가 있었다. 인류가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훨씬 전부터,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저호가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차례차례 방문하기 전부터 태양계를 누비던 여행자, 소행성과 혜성이다. - P193
혜성탐사선 지오토와 로제타를 통해 우리는 혜성이 메테인과 같은 탄소화합물을 풍부하게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혜성에는 다량의 물이 들어 있기도 하다. 소행성의 암석 속에서도 다양한 유기물질과 물을 찾을 수 있다. 태양계 초기의 열기가 한풀 가라앉은 뒤, 이제는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지구에 태양계 곳곳에서 물과 유기물질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바다가 생겨나고 그 속에서 생명이 잉태되었다. 벌이 꽃밭을 날아다니며 수분하듯이, 혜성과 소행성, 그리고 작은 먼지 입자들이 지구에 생명을 가져온 것이다. - P194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인류와 문명이 발달한 후에도 여행자들은 종종 찾아온다. 생명의 씨앗 말고도 우주의 신비, 태양계의 경이로움을 알려줄 힌트를 하나씩 떨구고 간다. 혜성과 유성, 운석을 통해 인류는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을 배운다. - P195
천문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천문학은 실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다. 네안데르탈인도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인류 혹은 그 비슷한 종족이 나타나기 전에도, 이를테면 백악기의 공룡들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좋아하는 야행성 동물들은 보름달 무렵에는 밤새 너무 밝아 활동을 조심했겠지. - P196
기록으로 남아 있는 옛 천문학자로는 마야문명의 공무원이 있다. 돌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원통형의 관을 통해 주위를 둘러싼 천체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의 그림이 전해진다. 유적 중에서도 하늘을 관찰할 수 있는 창이 여럿 나 있는 건물이나, 머리 바로 위 천정zenith 방향으로 창이 난 지하실이 발견된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마야 사람들은 일 년의 길이와 달의 주기뿐 아니라, 금성과 화성의 주기까지 알고 있었는데, 이들이 추정한 값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와 매우 가깝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금성의 회합 주기가 583.92일인데, 마야인들의 계산으로는 584일이다. 실제에 거의 근접하게 계산해낸 것이다. 마야 사람들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과 금성을 기준으로 하는 금성력, 두 종류의 달력을 동시에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P198
종교나 점성술, 농경에 필요한 달력 계산을 벗어나 천문학이 보다 학문적인 형태를 갖춘 것은 그리스시대라고 할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할 수없는 대상으로 보고, 천체의 움직임 또한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다. ... 피타고라스학파는 원과 구를 특별한 것으로 취급했는데, 여기에 더해 플라톤은 하늘에 있는 천체들이 그 특별한 구형이며, 이들이 커다란원 위에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그 중심에는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 P198
그러나 행성의 움직임은 너무나 오묘했다. 별과 달리 행성은 때때로 방향을 바꾸어 역행하가가 다시 본래의 방향으로 순행하곤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태양을 중심에 두고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각자의 주기로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철학은 우주의 중심에 오로지 지구만를 허락했다. - P199
... 오늘날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은 복집한 가정을 억지로 끼워 맞춰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비유할 때 언급되는 슬픈 운명을 맞이했다.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 개념의 대척점이라고나 할까. 태양을 중심에 두고, 행성의 공전 궤도로 원이 아니라 타원을 도입하면 간단히 끝날일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얘기지만 말이다. - P200
오늘날 지동설의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중세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다. 그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다.아무리 계산해보아도 지구를 중심에 두고서는 행성들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관측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그의 자료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말하고 있었다. 태양이 가운데 있고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로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분석을 해놓고도 정작 자신의 결과를 믿지 못했다. 과학자로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인지, 지동설을 주장하는 순간 시작될 교회의 탄압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그가 지동설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정리한 것은 말년의 병석에서 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뒤에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발간되었다. 훗날, 그가 완벽하게 옳았음이 증명되고, 지동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발상의 대전환을 촉발하는 사건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이라고 비유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 P201
브라헤의 관측자료는 다음 세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넘겨졌다. 브라헤의 관측기록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자료를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성은 태양 근처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태양에서 멀 때에는 느리게 움직이며, 공전 궤도의 장반경이 공전 주기의 3분의 2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세 가지는 ‘케플러 법칙‘으로 불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본규칙이 되었다.
브라헤가 활동하던 바로 그 시기에 망원경이 등장했다. 최초로 망원경을 발명한 사람은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 제조업자 한스 리퍼세이이지만, 이를 개량해 천체 관측에 사용한 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던 갈릴레이는 목성 주위에 네 개의 작고 밝은 점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날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불리는 목성의 네 위성, 가니메데, 칼리스토, 이오, 유로파였다. - P202
태양계 천체의 모든 궤도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 드디어 등장했으니, 바로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힘은 서로의 질량이 클수록 커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제곱만큼 작아진다. 이것은 태양계 행성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물체, 밤하늘의 모든 별, 그야말로 ‘만물‘에 다 적용할 수 있다. - P203
뉴턴은 반사망원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좁고 기다란 형태였던 기존의 굴절식 망원경의 단점을 보완해 렌즈 대신 거울을 활용한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망원경의 길이도 줄일 수 있었고, 렌즈 표면을 아주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부족했던 당대에도 밤하늘의 별을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후대의 사람들은 뉴턴의 제작 방식을 따라 대형 망원경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 P204
반사망원경에 푹 빠진 나머지 400여 개가 넘는 망원경을 직접 만든 월리엄 허셜은 망원경 제작 말고도 많은 업적을 역사에 남겼다. 그는 요즘 말로 ‘엄마 친구 아들‘이라 불릴만한데, 일단 삼십대 초반까지는 클래식 음악 연주자이자 저명한 작곡가였다. 수많은 교향곡과 협주곡을 만들었고,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이름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다. 음악 이론을 파고들던 허셜은 수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더니 곧 스스로 망원경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가 되었고, 그 망원경을 이용해 밤하늘의 별을 체계적으로 관측하기 시작 했다. 눈으로 볼 때는 별 하나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면 쌍성인 별들을 수백 개나 발견해 목록으로 만들었고, 토성 너머의 또다른 행성, 천왕성을 발견했다.
토성까지는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천왕성부터는 너무 멀어서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인류는 망원경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우리 이웃 행성의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 P204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샤를 메시에라는 천문학자가 별이 아닌 천체의 목록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1774년, 성운과 성단, 은하의 목록을 완성해 발표했는데, 이 ‘메시에 목록‘은 오늘날 까지도 망원경으로 밤하늘 관측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기본 중의 기본 자료다.
별은 아무리 큰 망원경으로 보아도 그저 밝은 점일 따름이지만, 메시에 목록에 나온 천체들은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볼수록 예쁘고,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다. - P205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모든 자연과학과 공학이 그러했듯이 천문학의 범위 또한 대단히 확장되었다. 인류는 이제 더 먼 우주의 수많은 은하단을 발견하고, 은하의 구조와 진화를 논하고, 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우주에 망원경을 띄워두기도 하고, 태양계 안의 여러 이웃들에게 수많은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1977년에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 2호 탐사선들은 이제 태양의 영향권이 미치는 끝자락, 태양권계면 너머까지 나아갔다. 지금 이순간에도, 보이저의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이루어지는 천문학자들의 모험도 그렇다. - P205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라는 것은 서양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건물의 외형만 보아도 한옥보다는 서양식 건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집도, 직장도, 상점도 대부분 그렇듯이. 어디 건물뿐인가. 학문의 종류에 따라 학부를 나누되 전공에 상관없이 다양한 ‘교양‘ 과목을 배우게 하는 것은 오래전 태동한 서양식 대학 교육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적‘ 혹은 ‘과학적‘이라 부르는 태도, 자연과 사회, 인류를 탐구하고 그에 관해 토론하는 태도, 역시 다분히 서양식이다. 밤하늘의 별과 행성을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계시를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보고 관찰하고 탐구하는 태도는 그리스시대부터 흥했던 사고방식이다. - P207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날 전 지구에 널리 퍼져 있지 않다고 해서 동양의 사고방식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우리말이 지구상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가 아니라서 타국의 대중이나 평론가가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별자리만 해도 그렇다. 서양식 별자리는 점성술이나 이달의 운세뿐 아니라 천문학에서 공식 용어로도 쓴다. 예를 들어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이름은 사지타리우스sgr A*인데, 궁수자리에 있는 A별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천문학에서 별을 부를 때는 북두칠성이 아니라 큰곰자리의꼬리, 직녀성과 견우성이 아니라 리라자리의 베가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라는 이름이 통용된다.
- P208
그런데 동양에 살던 옛사람들도 별을 보았다. 가장 오래된 기록을 꼽는다면 고인돌을 들 수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 송송 새겨진 작은 홈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고대의 별자리를 인위적으로 표시해놓은 흔적이다. 별의 위치는 물론이고 홈의 크기를 조절해 밝고 어두운 별을 구분해놓았다. 은하수를 표시한 것도 발견된다. 제작 시기가 청동기나 후기 신석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도 여럿 있다고 하니, 인류가 오래전부터 별을 깊이 관찰해왔다는 점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 고인돌 태반이 한반도 부근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별을 특히 사랑했거나, 돌을 조각하는 기술이 특히 좋았던 것 같다. 고대의 무덤 벽화에서도 별자리는 흔히 발견된다.
예를들어, 씨름무덤(각저총)과 춤무덤(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 수십 기의 벽과 천장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데, 당시 밤하늘의 실제 별 위치가 반영되어 있다. 북두칠성, 남두육성 같은 우리 고유 별자리들이다.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별자리 그림은 고고학과 천문학이 만날 수있는 지점이기도 하고, 남한과 북한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 P209
서양식 별자리는 밤하늘의 별을 88개의 구획으로 나누고, 해, 달, 행성이 지나는 길에 있는 별자리들을 특별히 황도 12궁 이라고 부른다.
반면 우리 옛 선조들은 밤하늘을 세구역으로 나누고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이라고 이름 지었다. 밤하늘의 중심이 되는 북극성 근처는 자미원으로 하늘의 궁궐을 감싸는 울타리다. 자미원 너머에는정부에 해당하는 태미원, 백성들이 주로 오가는 시장에 해당하는 천시원이 있다.
해와 달, 행성들이 지나는 길에 있는 별들은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28수로 묶어두었고, 동방의청룡, 서방의 백호, 북방의 현무, 남방의 주작이 각각 7수씩을 맡고 있다. 28수는 윷놀이 말판에서도 볼 수 있다. 말판을 잘 보면 한가운데 칸 주위로 28개의 칸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북극성과 28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 P210
한자 宿을 ‘별자리 수‘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본래는 ‘잘 숙‘자인데 동양 별자리에서 28수의 ‘수‘자로 쓰인다. 28수는 밤하늘에서 달이 하루씩 머무는 영역을 별자리로 묶어 놓은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각에 달의 위치를 관찰하면 매일 동쪽으로 옮겨가는데, 한 달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달이 하루 묵어가는 자리라서 宿자를 쓴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잘 숙‘과 ‘별자리 수가 함께 쓰임을 알 수 있다. 별자리뿐 아니라, 별의 이름도 기존의 한자를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동방칠수는 각, 항, 저, 방, 심, 미, 기의 일곱 별인데, 한자사전에서 각이나 항자를 찾아보면 열번째쯤 항목에 ‘별 각‘ ‘별 항‘ 같은 내용이 나온다. - P210
... 안상현 박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라는, 우리 전통 별자리에 관한 책이 나온 것이다. ... 지금은 서양식 현대 천문학을 하느라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내가 할머니가 되면 우리 고천문학古天文學을 연구하시는 분들 곁에서 기웃기웃해보고 싶다. - P211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 지폐의 뒷면에도 우리 전통 별자리가 나온다. 세종시대의 천문 관측기기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의 뒷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많은 동그라미가 바로 한반도의 옛 밤하늘을 담은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다. 조선시대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는 석탁본, 목탁본, 필사본 등 종류도 다양하게 여럿 전해진다. 잘나가는 집안이라면 탁본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폼 좀 났던 모양이다. 대개 맨 위에 이름이 크게 써 있고, 가운데에는 세밀한 천문도가, 위아래로는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 중국, 일본에도 유사한 천문도가 전해지는데, 그 후예들이 동의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것이 가장 정교하다고 알려져 있다.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시하고, 별들의 위치도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등 우리 선조들은 천문도에 꽤나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탁본은 흑백이지만, 필사본은 은하수를 하늘색으로, 별은 밝기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 아름답게 꾸민 것도 여럿 전해진다. - P212
재밌는 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을 새기는 일이 국가의 중대사였다는 점이다. 전쟁중에 원본이 유실되자 남아있던 탁본을 가지고 다시 석각으로 만든 것도 태조가 명했기 때문이다.
633년 무렵, 그러니까 신라의 선덕여왕도 천체 관측시설을 건설했다. 첨성대는 가운데에 난 창으로 들어가 꼭대기에 얹어진 네 귀퉁이를 기준 삼아 하늘을 관찰한 현장이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천문대다.
사실 유사 이래 천문학에 있어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는 주체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서양은 개개인이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데 반해, 동양, 특히 우리의 천문 관측과 기록은국가가 주도했다. 그래서 천문 기록이 역사서 속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더 오랜 기록인 『고려사』에도 태양의 흑점과 오로라의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분석해보면 태양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11년 주기와 일치한다. 태양 활동이 활발하면 태양 표면에 나타나는 흑점의 개수도 늘어나고 크기도 커진다. 오로라도 자주 나타나고 중위도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오로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흑점은 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시대를 불문하고 관측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조선의 기록까지 합치면 오로라 기록 건수가 700회를 넘는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만 가진 놀라운 자산이다.
태양의 11년 주기는 서양에서 19세기 들어서야 발견되었다. 기록은 우리가 한참 앞섰는데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초기로 돌아가 고려의 흑점 기록을 분석해 일찌감치 온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214
핼리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기록에서 자주 등장한다. 워낙 밝은데다 꼬리도 길어서 밤하늘에 일단 나타나기만 하면 뭇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역사서뿐 아니라 옛사람들의 그림이나 태피스트리로도 남아 있다. 재밌는 것은 이 혜성이 76년마다 지구 근처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혜성을 기록한 예술작품의 연대를 추정하기 좋다는 점이다. - P214
우리나라 사료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핼리혜성 기록은 ‘고려사‘에서 시작한다. ... 이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핼리혜성이 76년 주기로 지구 근처를 지날 때마다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다.
혜성뿐 아니라 초신성, 일식과 월식, 오로라, 행성들의 움직임은 물론 매일의 기상 상태와 지진, 가뭄 등의 이상 현상을 아주 오랜 세월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자연을 이용하는 시계 장치와 정교한 관측기기도 만들었다. 그런 흔적들을 만 원권 지폐의 배경 그림에서 만날 때마다 한편 으로는 자랑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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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셋씩이나 새겨진 나라는 많지 않다. 해외 학회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게 지폐를 자랑하면, 한국 사람들은 천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고 지폐에 새길 만큼 중요하게 여기나보다 하는 말을 듣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동양의, 우리나라의 멋진 천문학사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고3 학생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보내는가. ‘천상열차분야지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와 NASA 로고가 붙은 티셔츠를 판다면 어느 것이 더 잘 팔릴까?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다. 이제부터 덧붙여질 한국 천문학사는 더욱 다채롭고,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의 환호와 함께 계속되기를.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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