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동료들과 함께 유인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불운한 사고로 홀로 화성에 낙오된다. 참담한 
상황에서도 마크가 유머를 잃지 않으며 오래 생존할 수 있었던 
데는 동료의 개인 물품 속에서 찾아낸 USB메모리 속 음악 파일이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 디스코 음악만 잔뜩 골라둔 동료의 
음악 취향에 질색하면서도 그는시종일관 음악을 들으며 공포와 우울과 고독을 버텨낸다. - P238

미항공우주국이 달로 향하는 우주비행사를 위해 음악 재생목록을 준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수십 년만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위해 미항공우주국은 
여러 가지 음악을 골라두었다. 선곡 과정에서 지구인들의 추천도 받았는데, 가히 지구 최강이라할 만한 팬덤을 보유한 BTS의 곡이 일찌감치 우주 디제이의 목록에 올랐다.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아니었다.
많은 후보곡 가운데 <소우주>와 <134340>, 그리고 멤버 RM의 <문차일드>. 이렇게 우주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선택되었다.
<소우주>와 <문차일드>는 제목부터 ‘우주적‘인데 <134340>은 무엇인가. 이 번호는 다름 아닌 명왕성의 또다른 이름이다.
본래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다가 2006년 8월에 국제천문연맹(IAU) 투표 결과에 의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수금지화목토천해‘ 까지 읊은 다음 잠시 숨을 멈추게 만드는 바로 그 명왕성이다. 행성보다 작은 소행성, 왜소행성들은 번호가 공식 명칭이다. - P239

분명 행성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지를 않나,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황도 12궁이 13궁으로 변해서 생일 
별자리가 바뀔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지를 않나,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줄 알고 이 별은 너의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갖은 맹세를 다 했건만 천상의 세계도 변한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고대의 인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해가 이끄는 시간을 따라 생활하고, 별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달을 눈으로 좋고, 혜성이 나타나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때도 
명왕성은 제 궤도를 묵묵히 돌고 있었다.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BTS가 명왕성의 번호 134340을 노래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우주는 여전히 
자연 그대로인데,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교과서의 천문학 단원도 개정을 거듭한다. 대체 행성이란 
무엇이기에 명왕성을 따로 떼어야 한다는 것인가. - P240

‘행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천문학적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주제어로도 꽤 잘 어울린다.
...
수성, 금성, 화성,목성, 토성은 맨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인류는 밤하늘에서 별과 행성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뻔한 개념이었으므로, 행성 개념을 특별히 정의할필요도 없었다. 태양 주위를 돌면 행성, 그 행성의 주위를 돌면 
위성, 위성은 아니지만 행성보다 많이 작으면 소행성, 때때로 
태양 주위로 다가와 먼지와 연기를 흩뿌리며 지나가면 
혜성이었다. 
그런데 관측 기기도 기술도 발전하면서 그런 대강의 분류에 
속하지 않는 예외가 많이 발견되었다. 명왕성 근처에서 비슷한 
천체가 여럿 발견되자 이들의 정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하자니 그 이웃들도 모두 비슷한데 그중 누구만 행성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기가 애매모호해졌다. - P241

과학기술은 갈수록 더 발전해 앞으로도 명왕성의 이웃들이 더 
많이 발견될 텐데, 2006년에 그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태양 주위를 도는 둥근천체 중 궤도를 독점하면 행성, 궤도에 
이웃이 있으면 왜소행성으로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명왕성을 발견한 게 미국의 연구팀이라는 사실에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불만을 품고 행성 명단에서 끌어 내렸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천체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국제천문연맹이 도맡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천문연맹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고, 발견자에게 이름 붙일 기회를 주며 그 명단을 관리한다. 때때로 전 지구인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명왕성의 
영어 명칭인 플루토Pluto 라는 이름도 공모전 당선작이다. 영국의 한 소녀가 로마 신화 속 저승 신의이름을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지구 밖 우주에 이름을 붙이다니, 그 이름을 전 세계인들이 영구히 부르게 된다니, 과학자들의 논문에도 그 이름이 사용된다니, 그것 참 근사하지 아니한가.
- P242

21세기 들어서는 태양계 안에서보다 바깥에서 행성이 더 자주 발견된다. 지금까지 발견해서 검증도 마친 외계행성이 2020년 기준으로 4300여 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발견한 팀에서 붙인 번호로 관리되고 있지만, 
가끔은 공모전이 열린다. 지난 2015년, 14개의 별 주위를 도는
총 31개의 외계행성의 이름을 공모했다. 1차로 받은 여러 후보 
중 몇 개를 추려 2차는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우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니까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것으로
고르게 된다. 보통은 신화 속 혹은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붙이지만, 물건이나 장소의 이름, 혹은 어떤 추상적인 단어가 
될 수도 있다. 2차 투표에 어떤 후보가 올라왔나 둘러보았더니 
과연 ‘진실‘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본뜬 ‘베리타테Veritate", 
목성의 위성과 토성 고리를 발견했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 ‘갈릴레오 Galiled‘ 등이 올라와 있었다.
- P243

2019년에 두번째 공모전이 열렸다. 이번애는 이름 지을 대상을 
나라별로 나누어 투표를 진행했다. 우리나라에 배정된 것은 
작은곰자리의 별 ‘8 Umi‘와 그 주위를 도는 행성 ‘8 Umi b‘였다.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보현산 천문대의 1.8미터 망원경으로 발견한 첫번째 외계행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특별한 대상이다. 당신의 지갑 속 만 원권 지폐 뒷면에나오는 바로 그 망원경이다. 요즘은 지갑에 현금은 없고 신용카드만 있는 경우도 많은데,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만 원짜리 한 장은 가지고 다니도록 하자.

공모 결과 별의 이름은 ‘백두‘, 그 주위를 도는 행성 이름은 ‘한라‘로 결정되었다.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을 기리는 의미이기도 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뜻이기도 하다. 
백두별까지는 빛의 속도로 520년 정도 가야 한다. 그 주위를 
도는 행성 한라는 목성보다 약간 더 무거운, 목성과 비슷한 가스형 행성이다. 
...
물론 우리가 한라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한라는 별로 신경쓰지 않겠지만.
- P244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는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키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보기
에는 너무 덩치가 커서 위성이 아니라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 P245

팟캐스트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말한다. 경유지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짐을 기다리는 동안 읽을 것도, 쓸 것도 없어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노라고. 
그러다보니 계절이 지나가는 게 느껴지더라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돌려 들었다.
- P246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건 여간 숨막히는 일이 아니다. 
망원경의 시야는 대단히 좁아서, 살짝만 건드려도 망원경 속 
하늘은 저멀리 달아난다. 
공개 관측회에 가서 소구경 망원경으로 뭘 보게 된다면, 부디
두 손은 뒷짐을 지거나 허벅지에 붙여두기를 바란다.
...
통일전망대 쌍안경 보듯이 망원경을 손으로 감싸는 순간,
담당자가 탄식을 하며 당신을 밀어내고 삼 분 동안 망원경을 독점할 것이며 뒤에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것이다. - P248

처음 뮤지컬을 보러 간 날, 시력도 시원찮은데 주머니 사정까지 시원찮은 바람에 높은 층 비탈 객석에 앉아 거북목을 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하염없이 무대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조만간 일층까지 굴러떨어질까봐 신경이 쓰였는지, 
초면의 옆자리 관객이 오페라글라스를 빌려줬다. 
쌍안경으로 보니 배우의 표정은 물론이요, 특수분장으로 만든 상처의 주름까지 보여 과연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 P249

대학 1학년이었다. 입학만 하면 별이 무엇인지 은하가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배우며 망원경도 실컷 만져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른 과학생들과 함께 물리 실험, 
미적분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공통 과목들로 시간표를 꽉 
채워야 했다. - P250

나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망원경이라는 것을 만져보기는 커녕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었다. 과학 잡지에서본 은하와 성단 사진, "나는 천문학과에 갈 거야" 라며 직접찍은 별 사진을 보내 주었던 중학교 동창, 각자 다양한 방면으로 괴짜였지만 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머금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던 
고등학교 지구과학 선생님들, 그것이 대학 입학 전까지 천문학에 대해 접해본 전부였다. ‘천문학 전공자‘라는 알량한 이름은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P251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별자리 책을 하나 사서, 별을 보기에는 
너무 밝은 도시의 밤하늘과 책 속 별자리 그림을 한두개씩 맞춰 보았다. 그런 내가 그날 자연대 옥상에 누워서 처음으로 돌고래 자리를 발견했다. 여름밤 은하수 근처에 수줍게 빛나는, 꼬리가 달린 다이아몬드 모양의 별자리. 작은방패연 같기도 하고, 과연 
작은 돌고래가 물 밖으로 잠시 뛰어오르는 것도 같은 돌고래자리는 작고 어두워서 도시에서는 한참을 바라보아야 찾을 수 있다.

친구와 대화를 하는 등마는 둥 하며 가만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던 그때, 돌고래가 조금 움직인 게 아닌가! 우리가 있던 곳 
주변에는 멀고 가까운 낮은 산들이 지평선 위로 불쑥불쑥 올라와 있었다. 동쪽하늘에 아주 낮게 떠 있던 돌고래자리가 20분쯤 지나자 조금 더 높아져 아까보다 산에서 더 멀어진 것이 보였다.
...
별이 움직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니 그 속도는 하루에 
한 바퀴,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5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계산. 천문학을 책으로 배운 내게는 그저 단위 환산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여러 숫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돌고래가 내 마음속에서 뛰어오르기 전까지는.
- P252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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