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을까? 고인돌에도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도 별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하긴, 별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원시 인류는 가로등도, 상점 간판의 불빛도, 자동차 헤드라이트도 없는 칠흑 같은 밤하늘을 매일 밤 보았을 테니까. 아니, 별이 쏟아질 듯해서 칠흑 같지 않은, 온통 블링블링한 밤하늘을 보았겠지. - P219
다큐멘터리 속 고릴라를 마주할 때면, 고리롱이 고향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의 삶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낮에는 그 우람한 몸매와 끝없는 용맹의 위엄을 떨치고, 밤에는 설핏 잠을 깨어 쏟아지는 별을 보았을까. 이따금씩 커다란 유성이 하늘을 가로지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들어 별똥별이 지나간 찰나의 길을 따라 허공을 그어보았을까. 나는 그의 말년을 잠시 엿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진정 멋지고 상대에게 경외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최고의 수컷이었다. 어쩌면 하늘의 별이 되었을, 안녕, 고리롱. - P225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삭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
- P227
달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는 달을 바라보노라면 달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달에는 풍찬노숙의 역사가 담겨 있다. 대기와 자기장에 포근히 싸여 있는 지구와는 달리, 달은 어떠한 보호막도 없이 따가운 햇살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곳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크고 작은 돌덩이가 지구에서는 아름다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별똥별이 되어 타오르지만, 달에서는 여과없이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힌다. 지금은 그런 유성이 가끔 하나씩 떨어지지만,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달은 그렇게 조용하지 않았다. - P227
시작부터 그랬다. 먼 곳에서 날아온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달이 생겨났다. 날아온 소행성도 거기에 부딪힌 지구의 일부도 산산조각이 났다. 조각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지구 주위를 맴돌다가 서로 얽히고설켜 달의 씨앗이 되었다. 굴릴수록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씨앗은 남은 조각들을 주워 삼키며 커다란 달로 자라났다.
이번에는 또다른 소행성이 날아와 달에 부딪혔다. 한 개, 두 개, 열개…… 수없이 이어진 충격으로 달은 온통 불덩이가 되었다. 여러 개의 화산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처럼 땅 밑 여기저기에서 용암이 흘러나왔다. 소행성들의 대습격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달은 천천히 식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거대한 불바다를 이루었던 용암은 서서히 식으면서 제주도 현무암처럼 검은 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달의 바다 unar maria‘라고 부르는 어둡고 평평한 지역에 불지옥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고 나면, 그 무늬를 보고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둥, 사람의 얼굴이라는 둥, 물 긷는 여인이라는 둥 하며 낭만적인 상상만 해도되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 P228
달은 우리 인류의 오랜 벗이었다. 농업사회의 기본이 되었던 음력, 정월대보름, 한가윗날 밝은 달 아래 너나없이 손잡고 도는 강강술래, 그리고 수많은 옛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하얀 쪽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불개가 먹었다 너무 차가워 뱉은 달,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자 사라졌던 달, 노피곰 도도샤 머리곰 비치오시는 정읍사의 달, 산허리를 가득 메운 메밀밭에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 - P228
달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 옥토끼가 사는 앞면이 좋을 것이다. 달의 뒷면에는 검은 바다가 없다. 지구에서 보이는 달처럼 얼룩덜룩한 무늬도 없이 밝은 회색빛의 고원 지대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대충돌 시기에 용암 위를 둥둥 떠다니던 지각이 보글보글 끓는 찌개의 거품처럼 달의 뒤편으로 밀려난 상태로 서서히 식어 오늘날의 달 지형이 완성되어서다. 달의 뒷면에 없는 것은 또 있다. 지구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이, 달의 뒷면에서도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 P229
달의 앞면에선 늘 지구가 보인다. 하늘의 어느 한쪽에 거대한 파란 보석 같은 지구가 떠 있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나 크다. 다시 말하면 달에서 보는 지구는 우리가 지구에서보는 달보다 네 배나 큰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지구가 떠있는 하늘을 가질 수 있다니, 숨쉴 공기도 없고 먹을 유기물질도 없는 척박한 그곳으로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게다가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 P230
달은 우리의 오랜 벗이면서, 자주 이용당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특정 국가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쓰였고, 과학 목적의 달탐사시대에는 우주와 태양계라는 대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견본으로 쓰였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달을 이용하려고 한다. 달을 중간기지로 삼아 화성으로, 그리고 더 먼 우주로 나아가려 한다. - P231
어느 여름날 경남 김해의 한 초등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주로 가려면 정신력도 강해야 하고 신체적으로도 강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달은커녕 김해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면 한낮의 무더위에도 과학 시간을 뜨겁게 달구었을 그 열정이 사그라들어버릴까.
인류 역사상 달 표면에 발을 디뎌본 사람은 열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1972년의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유인 달 탐사‘는 중단된 상태다. 숨쉴 공기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곳. 설혹 물이 있다고 해도 단숨에 끊어버릴 만큼 뜨거운 낮과 질소도 얼어버릴 차가운 밤이 보름마다 반복되는 곳. 그곳에 가보겠다는 꿈은 이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달에 가고싶다. 그리고 화성에도. - P233
아니, 잠깐. 조금 오래 머무르기에는 화성이 더 나을 수도있다. 달에서 일교차가 300도가 넘는 이유는 낮과 밤이 각각 보름씩이나 되기 때문이다. 반면 화성에서의 하루는 24시간 37분, 주당 52시간의 근로 기준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될 정도다. 자전축이 25도 기울어져 있어 지구와 비슷한 계절이 있지만 한 해가 1.9배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곳이라 여름휴가도 19배로 길어질지 모른다. 적도의 여름 한낮이면 영상 20도, 극지방의 겨울밤이라 봐야 영하 140도다. 온도의 범위가 지구에서와 비슷하다면 우리가 지구에서 개발하는 기계장치도 잘 작동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보호장구가 좀더 간단해진다. - P233
화성사막연구기지는 항공우주 엔지니어 로버트 주브린이 1998년에 설립한 비영리단체 마스 소사이어티 Mars Society가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브린은 오래전부터 화성에 갈 수 있는 유인 우주선을 계획하며 미항공우주국과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화성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천수를 누리거나, 여차하면 지구로 돌아올 방법도 아직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정부기관인 미항공우주국은 유인 탐사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 P234
조금 더 적극적인 유인 화성 탐사 준비대로는 네덜란드의 비영리단체 마스 원Mars One이 있다. 탐사 로버 rover와 주거용 시설을 미리 보내 거주환경을 갖춰둔 뒤 2026년부터 스물네 명을 화성행 편도 여행길에 보낸다는 계획이다. 소식을 늦게 들어 지원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마스 원은 화성에 갈 로켓이나 우주선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다른 회사에서 빌려와야 할 형편이다.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같은 회사 말이다. - P235
딸이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다. 같은 반 친구가 이웃 도시로 이사해서 이제 만날 수 없다고 하기에 우리가 놀러 가면 된다고 위로했더니 "하지만 우주선 타고 너무 멀리 가는거 아니야?"라고 했다. 친구가 이사 간 곳은 경기도 화성시. "아, 그렇구나. 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 하고 대충 대꾸했는데, 이제 그 대답은 고쳐주어야겠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정말로 그곳, 화성에서 만날 수도 있다고.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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