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스아바바에서, 타이베이에서, 도쿄에서, 치앙마이에서 그 나라의 언어라고는 고작 몇 글자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서 서점 구경만은 신나게 하며 돌아다녔던 것을 떠올리면, 나에게도 「행성어 서점」의 화자가 지긋지긋해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분명히 있었던 셈이다. 그 안의 내용은 이해할 생각이 없으면서 낯선 언어가 주는 이국적 경험만을 소비하려는 태도가. - P7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서가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목소리를 낮추어 밖에서보다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고,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뒤늦은 아쉬움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왜 가장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때에 이곳을 찾지 않았을까. 그때야말로 나에게 이 책들, 다른 차원의 것들이 필요했는데. - P10
좋은 것들을 천천히 느리게 알아가고 있다. 남들이다 좋다고 할 때는 들은 체도 않다가, 어쩌다 우연히 경험한 다음에야 "아, 난 왜 이제 알았지" 하고 뒷북을 치는 거다. 포항을 떠나기 직전에야 들여다보게된 책방도, 우연히 책을 만나는 기쁨 같은 것도 그렇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취향이 무척 확고한 독자이며,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서점은 단지 이미 구입하기로 결정한 책을 가서 사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내 취향에 대한 확신이 오히려 나의 세계를 좁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P10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세계 안에서만 빙글빙글 맴돌며 익히 아는 즐거움만을 찾고 있었다. 큰 서점에 가거나 온라인 서점에 접속하면 망설임 없이 특정 분야의 서가로 직진해서 혹은 특정 카테고리를 열어서 그곳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에 가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언제나 자연과학 서가 근처만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렇지만 꽤 재미있는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아주 약간 열어놓는 것. 그건 소설가로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태도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세계를 자꾸 의식적으로 넓혀나가지 않으면, 소설도 내가 편애하는 자그만 세계 안에 갇히고 말 테니까.
그렇게 책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조금 더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내 일상에는 소박한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일 때문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 날이면, 꼭 그 지역의 책방을 찾아본다. - P11
찰리 제인 앤더스의 《아메리카 끝에 있는 서점》에는 늘 일촉즉발의 적대 관계에 있는 두 나라 사이 국경 지대에 위치한 서점이 나온다. 가치관도, 사고방식도, 세계관도 너무 다른 양쪽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입구를 통과해 서점으로 들어오고, 책을 찾아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간다. 서점주인 몰리는 굳이 두 세계를 섞이게 하는 대신, 다들 원하는 책들만을 접해도 무방하도록 책을 배치해둔다.
어떤 책들이 우리를 생각지 못했던 낯선 세계로 이끈다면, 책방은 그 우연한 마주침을 가능하게 하는통로다. 좀 더 많은 책들이 그렇게 우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면 좋겠다. - P13
그날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읍읍‘이라고 읽는 시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내게 돌아올 답이 검은 봉지만큼 뻔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를 따라 걸으며 사람이 언어를 갖기 전에 어쩌면 새처럼 그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검은 새가되는 엉뚱한 상상과 함께. - P21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눈을 감았다가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던 밤에 펼쳤던 책들, 무슨 말인지 모를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그것이 자신의 삶인 것같아 애써 이해하려 노력했던 시간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늙어 죽는 일이 두려워 책 속으로 달아나려했던 시도들,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삶과 마침내 이른 편안함에 대하여, 마치 수도 없이 대사를 연습한 배우처럼 긴 독백을 막힘없이 내뱉었다. - P22
나는 엄마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노년을 향해 가는 여성의 삶이 엄마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고, 내게는 그것이 자꾸 읍읍이라 읽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 그 시는 책 속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그 ‘읍읍‘이란 시를 여기저기서 읽은 적이 있다. 시장의 여자들에게서, 어떤남자의 양복 소맷자락에서, 술집 테이블에 혼자 남아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이에게서, 엄마의 몸에서. 대체로 그 ‘읍읍‘의 시는 ‘엉엉‘이 되기 전에 사람의 목구멍 깊숙한곳으로 사라졌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의 몸에서 목구멍처럼 깊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다들 몇 편의 시를 숨기고 살아가는지... - P23
지금 나는 그때의 엄마처럼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엄마에게서 배운 것은 물음이 많아지는 날에는 걷고 읽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걷다보니 다시 그곳이다. 오래전, 우리의 걸음을 붙잡았던 그 서점 앞. - P23
옛 서적들을 모아둔 서가에서 《생의한가운데》를 찾아냈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 책을 펼치는 순간, 우연히 내게 달려든 문장.
"인간은 생의 의미를 물으면 결코 알지 못하게 되지요. 오히려 그걸 묻지 않는 사람만이 생의 의미를알고 있는 것이에요."
소설 속 니나의 말이다. 그런데 과연 물음이 그치는 날이 올까.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강박에 얼마나 헤매고 걸어야 물음이 다 닳아 비로소 그저 걷고 있음에 자족할 수 있을까. 닳아버린 물음을 벗어던지고 맨발처럼 가벼운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오래전 내가 읽었던《생의 한가운데》는 엄마의 책이었으니 이제 내 것을 가져야 할 때라 생각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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