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출간된 책이어서 시의성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여전히 유효한 지적이다. 수 많은 사람들을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 갇힌 자들. 나는 그들을 미워하기보다 그들의 무사유에 분노할 뿐이다.
1931년에 쓰여진 책이라 약간은 각오어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없어서 참 놀랐다. 저자는 오히려 주인공인 남성 셋의 모순적이고 기만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모던걸‘이라는 수식어를 차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거침없고 당당하며 주체적인 당대의 여성에 주목하게 만든다.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마치 살아있는 듯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흡인력 또한 대단해서 70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금세 읽을 수 있었다.서로 미워하고 때론 한심하다 여기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삼대(할아버지-아버지-손자)의 장면이 나올 때면 정말이지 새어나오는 실소를 숨길 수 없었다. 보고 배워 자란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싶기도..
워낙 효(孝)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원가족을 버리지 못하거나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을 가정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정신을 파괴하고 마음을 갉아먹더라도 ‘그래도 가족‘이라며 참고 견디기 일쑤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모든 행위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든 것 같다. 아마도 가족이란 굉장히 다층적이고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저자는 자꾸만 죽음을 생각케 했던 원가족으로부터의 탈출 이후, 살기를 꿈꾼다. 여성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비혼주의자인 나 역시 언젠가 여성들과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저자의 앞 날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산다면 가족으로 인정받는 생활동반자법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