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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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적극적인 홍보와 권유로 큰 맘 먹고 이 책을 구입했다. 어떤 내용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등 사전지식따위는 전혀 없이 책을 읽었다.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쉽게 읽혀졌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아팠고, 슬펐고, 황홀했고, 행복했다. 사랑의 경험이 있는, 사랑을 기억하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이성애가 중심인 사회에서 동성 연애 서사를 이렇게 구현해놓은 책은 처음이었으므로,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책 표지에 연작소설이라고 쓰여져있듯이 이야기는 4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대도시의 사랑법] 책 전체를 보았을 때 한 편의 장편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화자는 대학시절 헤테로 여성 친구와 서로 친구 이상으로 동지애를 느끼며 동거를 하고, 띠동갑의 형에게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고, 상대의 이름을 소원으로 풍등에 쓸 만큼의 가슴 벅찬 사랑도 경험한다. 그 사랑들은 결혼이나 사실혼 혹은 동거 등 사회가 규정한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으나 사랑의 과정 속에서 화자가 느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 순간의 기억들이 자꾸만 떠올라 나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만들었다.

절친 헤테로 여성 ‘재희‘가 결혼하자 ‘나‘는 함께 살던 방으로 돌아와 눕는다. 제멋대로인데다 운동권 시절 이야기만 늘어놓아도 열렬히 사랑한 형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은 뒤 ‘나‘는 그의 추억이 담긴 종이를 찢어 변기에 버린다. 타국에서 함께 할 미래를 꿈 꿨지만 갖고 있는 병때문에 ‘규호‘만 상해로 떠나보내고 돌아 온 뒤 방에서 그를 그린다.

[붉은 선]을 쓴 홍승희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반드시 성적 끌림이 있는 섹슈얼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한다면 그 역시 사랑이라고. 나는 ‘재희‘와 ‘나‘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지 아닌지 따위를 논하고 그것을 유머로 소비하며 터부시한다. 이성애 사랑을 강요하면서도 이성간의 사랑(‘재희‘와 ‘나‘가 나눈 사랑의 형태)을 비난한다. 또한 사랑의 끝이 결혼이 아니라면 혹은 그 사랑이 이성애가 아니라면 비정상으로 치부되기에, 책 속 화자는 다시 혼자다. 이별을 한 사람은 누구나가 홀로 남아 상대를 추억한다. 하지만 이성애가 기본값인 사회에서 결혼,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 등 장애물을 넘어야만 하는 성적 소수자들에게는 사랑도, 이별도 험난하기만 하다.

매년 퀴어축제를 찾아다니는데, 헤테로 여성인 나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자유와 행복감을 느낀다. 퀴어축제에 참가한 사람이라는 티를 팍팍 내면서 시위하는 호모포비아들 옆을 당당히 지나갈 때면, 짜릿한 희열감까지 느낀다. 그 때 느끼던 희열감을 이 책을 통해서도 느꼈다. 자유롭게 열렬히 사랑하는 장면들은 독자인 나로 하여금 죽었던 연애세포 마저 살아나게 만들었다.

책 속의 ‘재희‘가 ‘나‘를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좆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듯이 그를 알기 전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지 말고 모르면 좀 배우자.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자. 세상에는 다양성이 존재하니까. 언제나처럼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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