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잉크냄새 > 고독도 삶의 연장선상일뿐...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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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밀란 쿤테라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마꼰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전염성 불면증, 유령과의 대화, 흙과 석회를 파먹는 레베까, 하늘로 승천하는 레메디오스, 죽음을 알리는 피, 노란 꽃비,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등 다분히 신화적이고 서사적이다. 또한 군부로 상징되는 식민지화, 바나나 농장으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화와 비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하는가.

한 남자를 죽임으로써 고향에서 도망치듯 떠나와 새로운 도시 마꼰도를 건설한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처절한 고독과 죽음, 불완전한 사랑, 그리고 가문의 멸망을 보여주고 있다. 부엔디아 가문은 후천적이라기보다 선천적으로 유전형질 속에 고독이라는 인자를 운명처럼 품고 살다 죽음에 이른다.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대물림 받으며 살아가는데 전자는 충동적이고 모험적이며 후자는 명민하며 은둔성을 지닌다. 자신만의 세상과 권력과 식탐과 성에 집착했던 그들중 특히 고독했던 인물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아내의 죽음을 접하고, 독립전쟁에서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나 완벽한 도덕적 타락을 경험한다. 세속적 가치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상,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일에 빠져드나 다시 한번 열일곱명의 아들의 암살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유령의 영혼마저 사라지도록 묶여있다 죽어간 밤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맞는다. 우르슬라가 뱃속의 대령이 우는 소리를 듣고 결코 남을 사랑할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던 남자이다. 아우렐리아노란 이름을 물려받는 이들이 그토록 집착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는 결국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사를 기록한 종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허무한 결과이다. <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밥이 되고 있다>는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백년동안 고독했던 것일까. 고독의 끝은 결국 허무함 뿐이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에르케코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소설이다. 아니 가문의 순환을 통해서 죽음으로도 넘을수 없는 고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고독의 일반적 의미가 홀로 있음으로 인한 외로움이라면 그 반대는 관계맺기가 아닐까.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들은 결국 순환적인 고독한 삶을 살고 마꼰도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들은 성, 특히 근친상간을 통하여 더욱 고독하게 되는데 근친상간은 그들의 왜곡되고 한정된 인간적 관계맺기의 한계라고 할수 있다. 그들의 이름이 순환하듯 그들의 관계맺기는 근친상간이란 순환적 의미의 성으로 국한된다. 마꼰도말고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가 없다는 것이 공간적 관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결국 그들의 고독은 인간적, 시간적, 공간적 관계의 실패로 뒤따르는 필연적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고독은 거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삶과 죽음의 거리, 사랑과 증오의 거리, 희망과 절망의 거리....상반되는 의미의 거리뿐만 아니라 동일한 의미 사이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그 거리 사이에 운명처럼 놓여있는 줄을 얼마나 잘 타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비단 사랑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듯 싶다. 삶의 모든 가치들에 적용되는 말이다. 고독은 극복해야할 대상도 체념해야할 대상도 아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삶, 사랑, 죽음처럼 고독도 삶의 연장선상에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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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df2234 > '밤마다 연필을 깎다 잠드는 버릇'을 들여준 그대들에게
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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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에게 아주 늦게 찾아왔다.

명색이 우리 문학을 배웠지만 그쪽 공부를 통해 밥 벌어먹고 살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떤 운명의 예비하심인지는 몰라도 알량한 전공을 들입다 쏟아부어도 모자랄 직업을 갖게 되었다. 매일매일 시집과 소설집을 뒤져 인용문들을 찾아 헤맸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일 때문이었을 뿐, 작품을 읽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주변의 좋은 벗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시를 읽었고 문지시인선을 알고 있는 내 또래가 으레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는 기형도의 시집을 그중 누가 선물했었던 것 같다. 시가 마음 한구석에 오롯이 자리 잡기 시작했던 건 시집을 선물했던 그 사람 역시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었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시집을 찬찬이 넘기기 시작한 그때는 나도 어느덧 벗들의 어깨 너머로 시를 들여다보던 시절을 훌쩍 지나 이성복, 황지우, 기형도 등의 이름을 알기 시작했고 더 위로는 황동규, 정현종, 김광규를, 그리고 최근에는 박용하, 김중, 진은영의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시,라는 것이 가슴에 남는 시절이 따로 있을까마는 유독 화인처럼 남는 시절은 역시 시와 사랑을 어느 순간 동일시하게 되는 이십대가 아닌가 싶다. 시도 그렇게 알면서도 모를 것 같은 감정들과 함께 찾아왔고 천천히 이십대가 저무는 지금 문득 가슴 한 켠에 고이 모셔진 것 같다. 그러나 300호 시선집을 손에 받아든 순간 서점과 도서관, 벚꽃과 낙엽, 이른 아침이며 한밤중 같은 '시와의 시간'이 문득 다시 찾아든다.

시집들을 나날의 세상일에 찌들어 책장 한구석으로 모두 몰아넣고 살았었지만 300호 시선집과 함께 묶인 노트의 빈 공간을 본 순간 '시와의 시간'이 남겨준 쨍함-혹은 아래의 어느 리뷰에서 쓰신 것처럼 찡함-을 느끼면서 무언가 적어보고픈 충동을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란, 어쩌면 그런 작은 '쨍함' 또는 '사랑의 시절의 다른 이름'으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런 '쨍한 사랑'을 가르쳐준 시의 다른 이름은 문지시인선일 것이다. 그렇게 시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사랑의 다른 이름을 가르쳐준 사람은 가고 없어도 문지시인선 아래에서 '밤마다 연필을 깎다 잠드는 버릇'을 들였듯이 아마 이 한권의 시선집과 노트도 오랜 밤동안 연필을 깎게 만들 것 같다.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면 누구나 중얼거릴 수 있으리라. "우리도 한때는 아름다운 불씨였다."(기형도,「廢鑛村」)고. 그러나 문지시인선은 한때가 아닌, 작지만 찬란한 우리 문단의 불씨로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기대한다.

* 알라딘의 오랜(?) 손님이지만, 그동안은 정말로 '손님'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리뷰다. 쑥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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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존 업다이크의 신작

 

 

 

 

 

 

조선일보 미디어리뷰를 알라딘에서 찾아보다 발견.  [내 얼굴을 찾으라]

 

버몬트 주에 은둔한 79세의 노화가 호프 샤페즈가 뉴욕에서 온 젊고 야심에 찬 잡지사 기자인 캐스린 디'안젤로와 하루 동안의 긴 인터뷰를 한다는 형식을 지닌 존 업다이크의 20번째 소설은 그 틀 안에 과거 미국이 세계의 미술계를 주도하던 때를 포획하겠다는 거대한 시도를 담고 있다. 추상 표현주의와 팝아트, 그리고 다른 예술의 '형식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 Publishers Weekly

 

<내 얼굴을 찾으라>에서 호프의 첫 번째 남편 잭 맥코이의 모델은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인 잭슨 폴록리 밀러(?)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남편 가이 할로웨이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레스 올덴버그, 웨인 티보 등을 혼합해 놓은 인물이다. 작가는 느리면서도 화려한 문장으로 복잡하게 얽힌 인문들 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억지스러운 성격묘사에 치중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주요한 미술계의 문제, 역사적 사실 등을 포개놓았다. - Regina Marler

 

작가는 소설의 상당부분을 잭슨 폴록 연구서와 추상 표현주의 명화집에 기대고 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피카소는 별로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해낸다. 마티스는 괜찮다, 모든 것에 외적인 절제가 있고 노력을 통해 달성하며, 검소한 부르주아다. 피카소는 집시고, 강도고, 볼셰비키다.’(50쪽)

잭은 그림이 꾸며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지저분하거나 깨진 유리잔을 물감이 아직 마르지도 않는 캔버스에 던지거나, 더러운 신발로 캔버스 위를 걸어다니기도 했다.’(76쪽)

-조선일보 미디어 리뷰 중

잭슨 폴록

1912년 1월 28일 와이오밍 주()에서 출생하였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하였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그것은 떨어뜨린 도료()의 궤적()을 거듭하여 화면의 밀도를 높여 감과 동시에 작가의 다이내믹한 제작행위를 직접 화포에 기록하는 것이었으므로 액션페인팅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나리자 스마일]에도 나온  Lavender  Mist

 


액션 페인팅 중인 폴록.



크리스 올덴버그 (Claes가 어찌하여 크리스인지..?)

올덴버그 [Oldenburg, Claes Thure, 1929.1.28~]

 팝 아트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도미하여 예일대학과 시카고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9년 최초의 개인전을 뉴욕에서 갖고, 1950년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오브제(objet)가 관객과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전개하는 일련의 충격적인 작품을 시도하였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석고로 형체를 본떠서 극채색()의 에나멜을 칠한 햄버거나 핫도그 등으로, 그는 식품 오브제를 모의 식품점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청소기나 선풍기 등의 경질기계제품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1960년대 말경부터는 오브제를 거대한 모뉴먼트로서 도시 공간에 설치하는 데생과 구상을 발표하였다.

 


담배 꽁초

 

 

Spoon Bridge

 

 

웨인 티보 Wayne Thiebaud 

 


woman in tub

 

 

 



Around the Cake

 

 


등을 보이고 앉은 남자

 

 

로이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 [Lichtenstein, Roy, 1923.10.27~1997.9.29] 

 

뉴욕 출생. 팝 아트의 대표자이다. 1960년대 초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인쇄의 망점(:dot)까지 그려넣어 만화의 이미지를 확대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매스미디어 방법에 준하여 묘사한 전형적인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았다.

1970년대가 되자 주제가 확대되어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축과 정물화 등으로부터 피카소와 레제, 그리고 미래주의 등 모던 아트의 명작에까지 미쳤고, 그 표현방법은 인쇄미디어를 의제()한 망점이나 사선이 전개되어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청동이나 철판에 에나멜로 채색한 조각도 다루었다.


 

 

 

 

 

앤디 워홀
워홀 [Warhol, Andy, 1928.8.6~1987.2.22]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19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 9월,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팝아트전이 개최되었다. 주요저서에 《1970년대의 조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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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매화향분분 > 우리 아줌마가 펼쳐 보이는 생생한 중국 체험기!
중국행 - 겁 없는 아줌마가 중국에서 좌충우돌 부딪치며 담아온 생생한 중국 이야기
박성란 지음 / 태동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중국행 이란 책을 선물 받았는데 처음엔 그저그런 느낌이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어떤 속 없는 아줌마가 애들 데리고 중국에 가서 그냥 하루하루 살면서 중국 사람들 사는 모습을 기록했다가 운이 좋아 책을 냈나보다 했다. 그런 마음으로 설렁설렁 읽어나갔는데.. 오잉? 재밌네? 웃기네? 오호 이것 봐라? 판타지 소설과는 다른 실제적인 재미와 흥미와 유머와 긴장감과 두려움과 그 해소가 시원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때로는 안타깝게 실감나는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 소설과 비슷했다. 판타지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두렵고 긴장되고 그러면서도 하나 하나 알아나가는 재미와 흥미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 인데, 중국행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좀 황당하고 그 아줌마가 바보같아 보였다. 중국어 한 마디 할 줄도 모르면서 시골과도 같은 산시성으로 덜컥 들어가 아니나 다를까 애처럼 울기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에게도 역시 한국인 특유의 꼬라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꼬라지는 어디 한 번 부딪혀 보자라는 항해의식과도 같았다. 중국 사람들이 낯설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인 언행으로 정신을 때리고 그 문화 파도로 몸을 밀어쳐도 지지않고 그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딸과 아들의 학교문제에서 부터 자신의 중국어 공부와 중국 문화 학습 그리고 잉워와 루완워을 타고서 이곳 저곳 돌아다닌 중국 여행까지. 곳곳에서 일어나는 우리와 다른 행동양식과 가치관들이 우리 대신 놀라고 재미있어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당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아줌마를 통해 책장을 넘기는 내 손끝을 울리고 있었다. 항미원조전쟁!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왔다는 전쟁. 즉 한국 전쟁. 이런이런 중국에선 한국전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구만! 우리 국기를 찢으며 자기네들 깃발을 꽂고 있는 중국군의 그림을 비롯한 아줌마가 곳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또한 그 모든 이야기를 판타지 소설과 달리 정말 만지면 기분 좋게 야옹.. 하는 고양이의 고운 털처럼 또는 거슬러 만지면 가르랑거리는 고양이의 껄쩍지근한 수직 눈처럼 생생히 나의 눈 앞에 펼쳐졌다.

아.. 이제 일하러 가야할 시간이다. 더 쓰고 싶지만, 하여간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정말 볼만하고 특히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사정없이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와도 같다. 사정없이 실감나는 진짜 이야기! 박성란 아줌마 정말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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