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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2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때는 쇼와 23년, 돈을 버는 것보다도 꾸준히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관이 되기로 한 세이지는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 단 번에 경찰관이 된다. 경찰관에 지원한 일반 시민을 경찰답게 만들기 위하여 두 달 동안 합숙을 시키며 훈련을 시키는데 그 훈련장에서 세이지는 앞으로 쭉 자신의 삶과 아들의 삶, 손자의 삶에 영향을 끼칠 세 친구. 하야세, 가토리, 가보타를 만나게 된다. 서로 떨어진 근무지에 배치 받은 이후로도 그들과 때때로 만남을 가졌고 우정을 쌓아간다. 세이지가 경찰이 된 한창 혼란스러운 시대, 경찰관은 무자비로 폭력을 휘둘렀고 경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그리 좋지 않다. 슬슬 민주 경찰로 변모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는 있지만,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일 뿐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라는 것이 세이지 상관의 명령이다. 하지만 세이지는 무자비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자신의 정의에 맞춰 착실히 강도를 잡거나 일을 해결해 결국 공을 인정받는다. 위험한 일을 하지 않길 바라는 아내 다즈의 바람대로 마을 주재소에서 근무하게 된 세이지는 마을 주재소의 경관 다운 모습으로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위엄있게 행동하여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해 나가며 아들에게 커다랗고 닮고 싶은 뒷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와중 동네에서는 말썽이던 부랑아 집단 중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던 남창 한 명과, 역시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던 철도 직원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두 사건의 진상에 가까워 질 때쯤 마을에 있던 문화재가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침 그때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쫓아 문화재가 있는 현장을 떠나게 된다. 5분이면 될거라고 생각했던 그 잠시 동안의 이탈은 세이지의 생을 마감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고 만다. 근무지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순직으로 봐주지 않는 아버지의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 자연스럽게 경관에 지원해 엘리트 대우를 받았지만 아버지처럼 마을에 큰 도움이 되는 동네 경찰 아저씨가 되어 싶어 주재소에 지원, 근무하지만 강도의 총을 맞아 사망에 이르고 세이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했던 다미오의 노력은 아들 가즈야의 몫으로 넘어가게 된다. 세이지의 위엄을 되살리고,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길 원했던 다미오와 가즈야의 노력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해가는 긴장감과 범인에 대한 궁금증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지속되어 흥미진진하게 경관의 일생 속에 나를 끌어 들인다.
그렇게 삼대째 경관직이 이어져 내려오는 사이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권총이 처음 배급됐을 시절 권총을 보고 이렇게 무거운 것을 계속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다고 여기는 세이지의 모습과 아무렇지 않게 권총을 차고 다니는 가즈야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격차가 재미있었고, 정직하고 순박하게 그 누구도 속이지 않는 청렴결백한 삶을 살았던 세이지와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며 살기 위해 위법행위에 손을 담글 것인지 망설이는 다미오,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기 위하여 작은 위법 행위에 스스럼 없이 손을 뻗치는 가즈야를 보면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하는 정의라는 것. 법이라는 것은 과연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했다. 어떤 범죄 그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는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는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그것을 용인해야 하는가, 범죄로 인식하고 처벌해야 하는가. 경관의 피는 그들의 삶 뿐 아니라 일본 경제의 변화, 인식의 변화, 상대적인 기준에 대한 것까지 제대로 꼬집는, 그야말로 전체를 아우르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생 자체를 미스터리라고 보면 된다는 역자의 풀이 또한 그럴 듯 하다. 삼대째 이어지는 경관의 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뒷모습으로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내 피를 이은 것을 자랑스러워 할까. 더 나은 뒷모습을 위해 노력하자는 생각이 든다. 세이지가, 다미오가, 가즈야가 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