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을 사랑해요.

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 풍속화에서 사군자까지 우리 옛 그림 100 ㅣ 한눈에 반한 미술관
장세현 지음 / 거인 / 2007년 8월

k풍속화에서 사군자까지 우리 옛 그림을 담고 있는 “한눈에 반한 우리미술관”은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은 그림을 이야기 한 책답게 표지부터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그림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서양그림을 보는 법과 다른 우리그림의 보는 방법, 그리고 우리 그림이 가지고 있는 특징 등을 4가지로 나눠 친절하게 설명해 준 후 드디어 “한 눈에 반한” 우리 그림들을 만나게 해준다.

그림의 종류에 따라 총 7개의 전시실로 나뉜 그림 중 나를 맞은 첫 번째 그림은 풍속화로 긍재 김득신의 <짚신삼기>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평범한 농가의 평화로운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그림은 화려한 멋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때 김홍도 그림인줄 알고 착각했다. 그만큼 김득신의 그림은 김홍도 그림과 닮아있었다. 왜 그리 닮았을까 궁금했는데, 책 속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김홍도 그림으로 착각할 만한 김득공의 그림들은 김홍도 보다 해악적인 면이 많았다.

그의 해악성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 <대장간>이다. 김홍도의 <대장간>과 김득신의 <대장간>을 함께 보면서 무엇이 다른지 찾아보는 재미가 아주 좋다. 쏙 빼닮은 듯, 그러나 색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는 두 그림. 이 책을 통해 만난 첫 번째 즐거움이었다.

두 번째 전시실로 넘어가면 우리에게 친숙한 산수화가 나온다. 산수화 하면 먹의 농도로만 표현된 그림을 먼저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 장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안중식의 <도원문진도>란 작품이다. 1913년에 그려진 <도원문진도>는 안중식의 대표작으로 안견의 뒤를 이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내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기존에 알고 있는 산수화의 고정관념을 깬 청록산수란 점 때문이다. 그림 전체가 초록색으로 물들어있고, 꽃을 표현한 부분에는 분홍빛의 방울방울들이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청록산수는 주로 궁중이나 귀족들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많았다는데, 그림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장에는 정말 “와”하고 탄성이 나오는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그림에 담긴 뜻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작품도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정선의 <박연폭포>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렸다.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얻는 듯.. 그냥 좋았다. 이럴때는 근사한 말을 하고픈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영모화가 나를 반겨주었다. 조선시대에는 동물화가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원래 영모화는 새를 그린 그림만을 가리켰는데, 후대로 오면서 새와 짐승을 소재로 그린 동물화를 통틀어 “영모화”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영모화가 몇 점 눈에 띈다. 첫 번째로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가 그린 “낙마도”다. 이 작품은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그림을 보면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주인님인지 누군지 모르나, 말 위에 있던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고, 옆에 있던 아이가 정신없이 뛰어가는 모습이 섬세하고 재미있게 그려진 이 그림은 말 위에 탄 사람이 한 잔 걸쳐서 졸면서 가다가 말에서 떨어진게 아닐까?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작가 미상의 <맹호도>도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조선시대 18세기에 그려진 작품이라는데, 호랑이 털이 진짜 털을 뽑아다 붙여논 것 처럼 사실적이다. 이렇게 잘 그려진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모른다니, 너무 아쉬웠다. 이 그림에 낙관이 찍혀있었다면 분명 이 분도 지금쯤은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전해질텐데 말이다.

네 번째 전시실에서는 우리그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민화와 불화”가 나온다.

민화는 전문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투박한 면이 있지만, 오히려 친근한 면이 있어 좋다.

이 책에는 십장생도와 장생도를 그린 민화가 많이 나온다. 걔중에는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너무 훌륭한 그림이 있어, “아! 이 분은 운이 없었나보구나.. 그래서 그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나 보군.. ” 혼자 생각했다.

우리 미술을 말할 때 불화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불화는 종교화를 넘어 미술적으로 우리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가 대단하다. 고려시대 1300년경에 그려진 혜허의 <양류관음도>는 보면 볼수록 아깝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내가 불화 중 최고다. 그 오랜세월동안 어쩌면 이리 아름다운 빛깔을 지낸채 보관되어을까? 이 그림을 그린 혜허란 분은 어떤 분일까? 작품 한 점을 앞에두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이 작품은 현재 일본에 있다.

다섯 번째 전시실에서는 문인화를 만날 수 있다. 문인화는 말그대로 직업화가가 아닌 순수한 문인들이 그린 그림이다. 문인화에서는 선비정신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그림을 잘 그렸나 못 그렸나보다 선비의 인품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을 작품을 통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부러질지언정, 타협하진 않으리라..

여섯 번째 전시실에서는 인물화가 나온다. 인물화는 산수화, 영모화, 화훼화와 더불어 동양화의 4대 부분이라 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김명국의 <달마도>, 윤두서의 <자화상>, 작가 미상의 <송시열의 초상>, 그리고 신윤복의 <미인도>등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전시실에 도착하면 사군자화를 만날 수 있다.

매, 난, 국, 죽 학창시절 시험문제로 자주 만났던 사군자. 딱딱한 느낌이 느껴지는 사군자화는 막상 만나보면 매화의 화려함에 취하고, 난초의 기품에 반하게 된다. 이 장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정조의 그림이다. 정조가 못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정조의 그림은 그의 성품처럼 온화하고, 넉넉해보였다.  같은 장에는 난초그림의 대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작품도 함께 실려있다. 난초와 국화 그림은 다르지만, 그림을 통해서 그 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자연스럽게 책제목으로 시선이 간다.

“ 한 눈에 반한 우리미술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들이 있었다니,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있었다니.. 그동안 왜 몰랐을까? 그동안 너는 어디에 있었니? 나도 모르게 그림에게 묻게 된다.  그동안 어디에 숨어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니? 하고..

그러면 그림은 말한다. “ 난 늘 여기 있었어. 그동안 내가 눈에 띄지 않은건 너의 무관심때문이야” 그래 맞다.  숨어있어 보지 못한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보지 못한 우리 미술들..

이젠 우리미술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