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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미술의 고백 -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
반이정 지음 / 월간미술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새빨간 미술의 고백 -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은 첫머리 글처럼 재밌지만, 한편 특이한 미술책이다.
현대미술을 접한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말을 해 봤을 것이다.
“대체 저게 뭐야?”
꽤 오래 된 이야긴데, 억대의 돈을 들여 만든 조형물이 어느날 갑자기 흉물스런 모습으로 잘린 사건이 있었다. 대체 누가 감히 억대의 예술품을 대강 잘라버렸을까? 범인을 잡은 후, 범행 이유를 들었을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참 난감했다. 범인들은 고철등을 모아 파는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그게 억대의 작품이란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횡재한 고철들을 들고 가서 몇만원을 받고 팔았으니, 놀랄 수 밖에..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채, 다음날 태연하게 나머지 고철(?)을 가지러 대학교에 왔다가 잡혔다.
억대의 예술품이 누군가에겐 오늘 하루 일당이 나오는 고철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예술품을 몰라 본 아저씨들을 원망해야 할까? 아님 고철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작품을 만드신 분에게 왜 이해 못할 작품을 만드셨냐고 해야할까?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소수를 위한 그들만의 예술이었다.
현대미술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느낌을 받는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도통 알 수 없는 작품에 이해 못 할 제목을 보면서 “이게 뭐야? 난 도통 모르겠다” 하면서 뒤돌아 선 경험이 몇 번 있다. 그 후 현대미술하면 미술에 관심이 많아도 별로 보려하지 않았다. 작품을 보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끼라고 하지만, 난해함과 어려움 외에 더 이상 느끼지 못하니, 느낌 없는 내 자신을 탓하며 발길을 돌리기는게 속편했다.
그리고 괜히 가서 머리 아프게 저게 뭔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 맘에 들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난해함과 어려움을 벗어버렸다는 것이다. “저게 대체 뭐야?” 라고 외치던 작품들을 쉽고 편하게 설명 해 주니, “아하 그렇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동안 어렵고 난해했던 때로는 어이없었던 표현재료와 무한한 상상력의 표현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이 맘에 들었던 두 번째 이유는 눈높이를 낮춘 미술평이다.
들어가며에 “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호들갑스레 칭찬하며 독자를 기죽이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던 작가는 나를 웃게 만들었다. “맞다고요.”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가끔 미술책을 보게 되는데, 그 중 대부분의 책들이 어려운 말들로 가득차서 내가 이해하는 건 “ 결론은 이 그림이 훌륭하다는 거군. 끝” 이었다. 굳이 이 작품이 왜 좋은지 어려운 문구로 길게 장문을 써내려가지 않아도 그 작품이 좋다는 건 안다. 아니, 또 그 작품이 좋다는 걸 모르면 어떤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한 작품이라면 그래서 “나는 별로”라고 생각해도 나쁠 건 없다. 그러나 입에 침이 마르게, 최고란 찬사가 이어진 책을 읽은 후 그 작품을 실제로 접했을 때 “나는 별로...”란 말 쉽게 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작품은 평단에서 최고란 찬사를 받고 있고, 대다수 사람들이 최고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최고를 알아보지 못한 나는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 수아래의 관객이 되는 것이다 . 그렇기에 남들이 박수칠 때 나 역시 박수를 친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역시! 대단해”란 맘에 없는 소리까지 해대고 뒤돌아서 혼자 중얼거린다. “왜 저 작품이 대단하다고 하지?”.
<패러디, 온고지신으로 거듭나는 예술의 생명력>, <아름다운 예술에 도전하는 사회 비판적인 예술>, <거품을 허무는 경량화된 예술의 등장>, <미술관을 등지고 부피와 중격으로 승부 건 “옥외예술”>, <장르 간 교차와 미디어 친화적 미술의 탄생> 중간 중간 터지는 웃음과, 야한 작품에 혹시 누가 볼새라 손으로 가리며, 자세하게(?) 읽어 내려 간 발칙한 미술책.
“너 현대미술! 짜식 너 맘에 들었어!”
콧대를 낮춘 그림책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동안 벽이 높아서 현대미술을 외면했던 여러분, 발칙한 미술책으로 놀러오세요.
재미있는 현대미술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