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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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는 선정을 베풀고,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평가받을 만한 많은 업적을 남긴 왕들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사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왕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통성에 한계를 지닌 왕들이다.

천한 무수리 몸에서 태어나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에 시달렸던 영조나, 폐륜아로 낙인찍힌채 할어버지 손에 아버지를 여윈 정조 역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왕으로써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역사적으론 성군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영,정조 시대에 끊임없이 일어났던 역모사건을 팩션 형식으로 재조명해서 예언서의 담긴 진실과 선정을 베풀고 살기좋았던 그 시대에 역모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에는 "김원팔 일가의 <남사고비결> 역모사건",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사건",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 등 총 3건의 역모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3가지 사건에 특징은 역모사건의 중심에 예언서가 있다는 것이다.

남사고비결이나 정감록은 이씨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새나라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종교적으로 도교적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역모사건은 성공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수 있지만, 실패하면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마는 엄청난 일이었다.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았던 역모사건..

그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왕들에게 반기를 들었을까?

우선 이 들 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집단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3건 모두가 역모사건의 중심에 학식있는 중인집단이 있었다.

학문이 출중하고, 성품이 좋고, 그 재능이 뛰어나도 신분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양반들의 국가 조선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신분이 아닌 실력으로 맞설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들은 역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신분적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했을 것이다.

명문가 출신 양반가들 중에서도 역모사건에 가담자가 많았다.

이것은 영,정조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와 정조는 양반들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왕들이었다. 천출의 자식으로 전 왕의 독살혐의까지 갖고 있던 영조도 그렇고,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었을때 이미 죽었어야 할 정조가 왕위에 올라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정적으로 제거하자 그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영조와 정조에게 양반들은 정치적 동지로 함께 가야 할 집단이며, 동시에 경계하고 처단해야 할 집단이기도 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그들은 권력을 다시 붙들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하나로 묶는데,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한 예언서들이 있었다.

그냥 듣기에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에게 예언서에 담긴 이야기는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중인들에게는 신분적인 한계를 벗어나, 모두가 평등한 신분사회의 꿈을 이룰 수 있으며,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새로운 왕이 생겨나는데, 일조를 하게 되면 다시 권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역모사건(쿠테타)으로 시작된 왕조가 있었다.

이씨 조선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인조반정이 성공을 해서, 신하가 왕을 가라치운 경험이 있다. 그들은 이런날을 꿈꿨을 테지만, 그들의 역모는 시도도 하기전에 변절자에 의해 고변되면서 끝이 나고 만다.

팩션 형식으로 씌어진 이 내용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허구가 가미됐지만, 완전한 허구라 말할 수 없는 역모 주동자들과 그의 동지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 역모사건의 진실은 그들이 지닌 신분에 따라 참 다르게 해석된다.

역모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지만, 각자 이해집단이 다르고, 새 시대를 부르짖던 이들 역시 신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낄때는 씁쓸하기도 했다.

 

알지못했던 또 다른 조선의 역사..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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