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의자왕.계백 Who 한국사 삼국 시대
박현비 지음, 이대종 그림, 방민호 외 감수 / 다산어린이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낙화암에서 3000 궁녀와 술먹고 헤롱대다 붙잡혔다~고 잘못알려진 의자왕.

중학교시절 수학여행으로 낙화암을 찾았으나

'이런 곳에서 궁녀들이 몸을 던져? 물도 없는데?' 의아해 하던 상황을 뒤로 미루고

세월이 흘러 내 아이와 역사를 논하게 되었을때

 

역사는 승자의 입자에서 씌여지기때문에

'과연 의자왕이 낙화암에서 3000 궁녀와 술을 마셨다는게 가당키나 할까요?'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바로 그 분. 의자왕에대해 자세히 알고싶어

WHO 한국사 삼국시대편

의자왕. 계백을 읽게 되었네요.

 

 

 

 

 

 

우리 한반도는 고구려,백제,신라 이 세나라가 힘을 겨루며 한강을 차지하기위해 

전쟁도 마다합니다.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한강을 차지하며 주도권을 잡으며

서로 적이 되었다가 때로는 힘을 합쳐 화친을 도모하지만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상황아래서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의 아들 의자왕의 어린시절,

신라 선화공주의 피가 섞였다고 귀족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사택 왕비와 그녀를 따르는 귀족들에게 시빗거리를 주지 않기위해 늘 예를 갖춘 부여의자시절부터 31대 의자왕으로 즉위하기까지 백제의 제 2 전성기를 이룩하기위해 노력합니다.

계백장군과 충신을 잘 써서 백제를 발전시키는 듯하나~

'과유불유급'이라 했던가요?

지나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빠지고

신라에서 보낸 첩가인 무녀 금화에게 반한 의자왕은 그녀의 말에 따라 충신을 멀리하고

패망하는 지름길을 걷게되는데......

 

 

 

 

 

 

 

반면 계백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적부터 멋진 장군이 되기로 결심하고

꿈을 위해 노력한 결과 무예에 소질을 보이며 전략과 전술 등 일취월장 합니다.

신라군의 공격에 대비, 특히 가잠성의 지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늘 어진 성주로 자리매김하기위해 노력하지요.

 

도약을 준비하는 백제의 의자왕을 도와

고구려의 남진 정책, 급격히 성장하는 신라를 견제하면서 중국과 왜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을 교육받습니다.

 

 그러다 나당 연합군의 급습으로 조국 백제가 위기에 놓이자

자신의 최후가 될 전투를 치르기 위해 가족들의 목숨을 빼앗고 비장하게 황산벌전투에

앞장서지요.

큰 차가 나는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계백은 백제군을 이끌고 잘 싸웠고 승리도 하지만

화랑 관창의 활약으로 신라는  사기가 급격히 오르고 승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행동증자 의자왕을 많은 사람이 방탕과 폭정으로 나라를 망친 왕이라 기억하지만

점차 백제의 중흥을 위해 노력한 성군이라 평하는 역사학자들이 생겨나고 있지요.

고려 시대 쓰인 역사서 <삼국사기>에서는 의자왕에 대해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와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 (중국의 성인 증자처럼 학문과 도덕이 뛰어남을 이르는 말)라 불린 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용맹스럽고 담대하며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다.

의자왕은 재위 초기, 주변국에서도 인정할 만큼 실력을 갖춘 왕이여서

즉위 후, 고구려와 협력하고 왜와의 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등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했으나

성충같은 충신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간신들의 꼬임에 넘어가

혜안을 잃게 되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기위해 왕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가려 써야하는지

의자왕뿐아니라 여러 왕의 경우를 빌어 절실히 알게 되는 역사를 돌이켜보건되

우리나라의 현 정치또한 쓴 말또한 귀기울일줄 아는 혜안을 가진 대통령님이

늘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백제의 마지막 영웅, 계백

일제 강점기에 역사학자였던 신채호 역시 <조선상고사>에서 계백을 높이 평가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목숨을 걸로 전투에 나간 계백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또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계백은 황산벌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

가잠성에서 신라 장군 김유신이 거느린 3만 병력에 맞서 승리하였고, 신라 7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심유신보다 더 뛰어난 장군이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마지막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은 직접 북을 치며 병사드르이 사기를 올려 주는 등

끝까지 장렬히 싸우가 전사한 명장이라 기록되어 있고

 

반면 조선 초 유학자 권근이 지은 <동국사략>은

계백이 왕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나아가기 앞서 그의 아내와 자식을 먼저

죽였으니, 이는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다.

비록 나라의 어려움을 만나 죽을 각오는 있었으나 힘껏 싸워 적을 물리칠 지혜는 없었던 셈이다.

군대의 최고 장군이 처자식을 죽인 것은 군대의 사기를 약화시키고, 스스로 패배를 불러온 것이나 마친가지다~

고 유일하게 비판하고 있으니

이것은 개인이 평가해야할 몫인 듯하다.

 

 

 

 

 

 

 

 

 

 

시대돋보기등에서 살펴 본 백제의 마지막 열흘을 통해

의자왕과 계백장군의 행적이 단적으로 기록되고 있고

백제 부흥 운동을 꾀하려던 모습도 살펴볼 수있으니

역사를 연구하는 기회를 잘 제공하고 있다.

 

 

 

 

 

Who 한국사는 지금껏 보아온 삼국유사,삼국사기보다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만화로는 각 시대별 상황을 재미있게 들여다 볼 수있고

파트별 시대돋보기를 통해 중학교 이상 교과에 제시된 내용들을 접할 수있어

저의 경우 중학생 딸도 함께 읽을 수있도록 독려하고 있답니다.

 

학습만화중에서도 Who한국사 시리즈를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지요.

중등 교과와 비교해서 절대 빠지지 않는 매력을 아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있는 혜안~

이것또한 독자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책 뒷부분 어린이 역사 탐색에서는

의자왕과 계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더 점검해 보고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의자왕과 계백에 관한 퀴즈도 풀고

당시 상황을 눈술로 정리해 도 깊이 있게 생각후

인물들의 관계를 재미있게 엮은 인물 상관도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정리한 연표까지 익힐 수있어

삼국 시대 박사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을 얼마나 활용도 있게 보았냐~ 바로 이것이 관점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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