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
유승훈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역사 속 소금 이야기

 

폭염으로 대한민국이 푹 익어가던 몇 주 전 뉴스 한 귀퉁이를 차지한 '천일염은 풍년'이란 소식은 나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작물은 메말라가지만 소금은 풍년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하는 그저 평범한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그리고 근대의 우리나라 염업민은 소금이 풍년이었어도 아마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순 없었을 것이다. 이리나 승냥이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어 그들이 애써 지은 소금을 착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민초들의 주요한 수입원이었던 소금은 쌀 못지않게 뼈아픈 수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었기에 모두가 필요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금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자들이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이다.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는 우리 역사 속 소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는 소금의 한국사를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후반부는 소금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그리고 현장감이 돋보이는 다섯 편의 답사기가 따로 구성돼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에서 살짝 언급한 소금의 수탈사는 전반부에 포함되는 이야기다. 염세과 관련된 농민들의 고난과 저항의 역사가 바로 이 부분에 담겨있다. 과거에는 소금이 국가재정의 또 하나의 축이었고 그래서 소금은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던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를 생산하는 농민과 국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지역관리의 이해관계는 항상 엇갈렸고, 늘 피해는 농민이 입었다. 소금의 전매제의 시행여부 역시 국가재정 확충과 염민의 보호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으며 결국엔 염민이 피해보는 쪽으로 귀결됐다.

 

책에선 소금 전매제를 중심논점으로 하여 소금의 한국사를 피력한다. 시대는 맨 먼저 고려 때로 거슬러간다. 원나라의 지배에 있던 시기인 충렬왕 때를 역사상 처음으로 소금 전매제가 시행됐을 거라고 책은 전한다. 또한 충선왕 때의 각염법 역시 전매제의 하나라고 밝힌다. 다만 전매제가 고려 초에 이미 실행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겨둔다. 뒤이어 조선 초기의 소금의 정치학이 무엇이었는지를 잠시 보여주고 세종 대에서 불거진 소금논쟁을 다룬다. 논쟁의 핵심은 사염을 금하자는 입장과 그럴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 중간책으로 나왔던 의염색이란 기구의 설치는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결국 뚜렷한 묘책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든 염민의 피해는 없앨 수 없었던 것이다.

 

왜란이라는 혼란한 시기에도 소금의 역사는 등장한다.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유랑민들은 넘쳐났으며 그로인한 기근 역시 심할 때였다. 당시의 소금은 기근과 무관하지 않았다. 상 위의 거의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니 소금이 곧 곡식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류성룡 같은 이들이 염전의 개간을 위해 그토록 열심이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소금의 역사에는 또 하나의 변화를 맞이한다. 바로 균역법의 시행 때문이다. 균역법은 군포를 절반으로 감면하고, 감면분은 국가가 직접 염세 등으로 보충하는 제도다. 문제는 국가가 균역청으로 염세를 직접 거둬들인 다는 점인데 그동안 궁방과 관청에서 곶감 빼먹듯 하던 것을 이제는 국가가 가져가게 되었던 것이다.

 

균역법의 시행은 그 개혁의 위력만큼이나 반발이나 꼼수가 많았는데 그것은 모두 지금껏 이득을 보던 아전들의 횡포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는 그들은 온갖 수를 동원해 국가의 정책 시행을 방해했다. 이리나 승냥이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같은 등급의 염전이라도 지역에 따라 징수하는 세금액이 달랐던 것이다. 기준 없는 세금 징수는 자칫 개혁의 효과를 망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은 지역에 따라 등급을 둬 염세표를 만들었다. 책에선 다산이 주장한 이 방법이 도입되었는지 여부가 나오지 않지만 조선의 전세田稅 역사를 생각하면 도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세종 때의 전분 6등법이나 연분 9등법이 끝까지 시행되지 못했음을 생각해보면 다산의 개혁안도 중용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개항기 때로 접어들면서 소금은 또 다시 수탈의 역사를 맞이한다. 이제는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마저 우리의 소금을, 그로 인한 재정력을 노렸던 것이다. 염민의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농민들은 총칼로 쉽게 제압당했다. 빼앗진 염전엔 수확의 기쁨은 없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엔 소금이 극도로 부족해졌다. 피난민들이 직접 염전을 세워야 할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전쟁 중이지만 염전확대와 소금생산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곧 그 기쁨은 사라지고 만다. 염전의 확대와 소금 생산의 증가는 소금의 안정적인 공급을 넘어 과잉 생산의 양상으로 진행돼버렸던 것이다. 안에서만 차곡차곡 쌓이며 가격 경쟁력은 잃은 채 소금의 역사는 지금에 이르렀다.

 

'짠맛에 대한 명상'으로 소금의 역사 후반전이 시작된다. 이 내용은 역사적 이해를 요하는 부분이 적어서 그런지 훨씬 재밌고 수원하게 읽혔다.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소금장수 이야기는 워낙 기괴했지만 뭔가 상징성이 부여된 이야기 같았다. 액막이로써의 '소금 뿌리기'가 우리의 민간신앙에만 전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도 이런 관습이 발견된다고 한다. 소금이 인류 보편적인 식품인 만큼 그 상징성도 비슷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후반부에서는 소금에 관한 단상과 더불어 소금의 탄생과정을 생생히 다룬다. 자염의 생산방식, 염정을 이용한 방법 등등이 나오는데 아쉬웠던 건 이 부분만은 좀 생생한 사진 자료를 첨가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주강현의 <관해기-서쪽바다>편을 보면 '자염' 만들기의 생생한 장면이 담겨있다(120p). 그저 간단한 그림으로 남긴 이 책과는 눈에 들어오는 정도가 다르다. 교양 역사서가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지루함과 딱딱함을 탈피하는 유일한 작업인 사진자료에 좀 더 공을 들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염부들의 생활사를 다룬 부분을 끝으로 소금의 역사는 마무리 된다. 역사 속 소금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Salary라는 간단한 단어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소금이 곧 돈이요, 그것을 거두는 게 세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금의 유구한 역사와는 달리 오늘 날 소금의 위상은 무척 낮아졌다. 조미료, 나트륨쯤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역사에서도 소중한 존재였던 소금, 이 책을 통해 한번쯤 그 진가를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류로 보이는 점이 있어 제보드립니다!!] - >초판 2쇄

39p 위에서 5번째 줄

포숙은 왕위에 오른 환공(소백)에게 포숙을 등용시킬 것을 강력히 천거하였고,

---> 포숙이 아니라 관중아닐까요?  포숙이 포숙을....셀프 깔때기인가?? ㅎㅎ;;;

아무튼 관계자 여러분의 확인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