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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역사다 - 전선기자 정문태가 기록한 아시아 현대사
정문태 지음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2월
평점 :
격동의 현장을 담은 살아있는 역사와 만나다
<남미인권기행>이란 책을 읽으면서 혁명이 남긴 쓰라린 유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과 맞바꾸었던 혁명과 자유. 하지만 혁명의 열매는 결코 달콤하지 않았고, 어렵게 얻은 자유는 빈곤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또한 권력을 손에 넣은 혁명 세력은 과거의 그들처럼 부패하거나 국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독재군벌들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등 다분히 정치적이고 실리적인 모습만 보였다.
혁명은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혁명의 성공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부가 들어섰지만 가난한 그들을 모두 안고가면서 나라의 성장을 도모하기엔 뒤따르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추구하는 방향만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권력층의 부패와 정치싸움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
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듯 다른 곳이 바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다. 남미국가들의 혁명 투쟁처럼 그들 역시 독립이나 독재 전복에 대한 강력한 염원으로 싸우고 있지만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을 맛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동티모르가 독립을 했다고는 하나 그 과정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무력진압과 독립을 반대하는 합병파의 방해공작 등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독립을 이뤘고, 그들의 국가, 그들의 국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독립은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이었다. 동티모르 내부에서 정치싸움이 불거진 것이다. 동티모르는 다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외국군의 주둔까지 맞게 되었다. 어렵게 얻은 독립이 지배층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정치싸움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경제를 위해 한국의 투자를 바란다던 그들이 과연 정치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째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곳이다. 아째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도네시아에서 분리, 독립을 원하는 또 하나의 나라였다. 하지만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이미 중국이나 러시아가 보여준 바와 같이 인도네시아도 자국에서 또 하나의 나라가 파생되어 떨어져나가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언론인조차 쉽게 취재할 수 없다던 아째의 상황이 그래서 매우 위태로워 보였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흔히 미얀마로 알고 있는 버마와 부패한 총리로 신음하고 있는 타이의 현실은 남미의 혁명 투쟁과정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탐욕스런 독재 권력의 횡포와 그 속에서 신음하는 국민들. 특히 오랫동안 군부세력에 짓밟히고 있는 버 마는 그 현실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이러한 상황이 종식될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부단한 노력과 외침만이 저 위에서 배불리고 있는 자들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진 생생한 상황을 담은 <현장은 역사다>는 위험천만한 현장을 두루 헤매며 그들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저자의 노력과 땀이 묻어난 좋은 책이다. 특히 핵심인물과의 허심탄회한 인터뷰는 절정의 현실감을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다. 각 세력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소식의 대부분은 비관적인 일이라 무척 씁쓸하고 기운이 빠졌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찾아다니며 역사를 기록한 그의 노력이 부디 빛을 발해 더 이상 유혈의 현장이, 유혈의 역사가 없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