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
존 톰슨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1855년 작 [화가의 스튜디오]에서 앤디 워홀의 1986년 작 [위장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순수하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순서대로 현대 미술을 정리한 책이다. 한 세기가 조금 넘는 시간이 한 권의 책에 집약된 만큼 많은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담겨 있으며 더불어 주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타 화가의 보조 작품까지도 꼼꼼하게 곁들여져 있다.
테오도르 루소의 [한낮의 다프레몽 골짜기]라는 작품을 예로 들면, 화가의 넓은 시야를 보여주는 이 목가적인 풍경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는 또 다른 화가 존 컨스터블이나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의 풍경화를 보조 작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 간의 비교를 통해 [한낮의 다프레몽 골짜기]가 갖는 특별함을 찾아내고,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도 유추해낸다.
순전히 작품이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책을 구성하다보니 한 화가의 서로 다른 그림이 띄엄띄엄 소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클로드 모네의 경우는 [인상, 일출]이라는 작품으로 34p에 나왔다가 46p와 72p에, 그리고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이란 그림으로 154p에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똑같은 화가가 들쑥날쑥 하는 건 작품 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네의 처음과 나중 그림의 경우는 무려 43년의 시간차가 있다.
시간에 따른 작품 구성에 익숙해지면 대충 이 시대에 어떤 류의 작품들이 등장했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특정한 화풍을 일구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연속해서 만나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미술사적인 상황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 인상파 화가들이 성한 시기나 아르누보 계열 혹은 초현실주의 화풍이 일었던 시대가 얼핏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책 속에는 명화를 이해하기 위한 ’그림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화가의 전력이나 미처 알지 못했던 미술사에 관한 사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는 법무원 출신이고, ’사과’로 유명한 세잔은 은행원 출신 그리고 앙리 루소는 세관원이었다는 사실은 명화를 남긴 위대한 화가들 모두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능력을 꽃피웠던 건 아니라는 걸 방증해준다.
한편 마네에 관한 저자의 짧은 설명은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상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일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마네는 단 한번도 이론적인 단계에서부터 완전한 인상파였던 적은 없었다. (중략) 제대로 미술교육을 받은 살롱 화가였던 마네는 프랑스 미술의 위대한 전통을 존중했으며, 여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면서 계속 그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싶어 했다. 마네가 한 번도 인상파와 함께 전시회를 연 적이 없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사실이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고 있던 마네가 ’인상파이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마네가 단순히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에만 그쳤는지 혹은 그들과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했는지 여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대부분 인상주의 화가들로 이루어진 바티뇰파를 이끌었던 마네가 정작 인상주의와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인정하기 힘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에 나오는 작품들이 20세기 초중반의 것들로 채워지자 아주 낯선 그림들과 처음 보는 작가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마법의 섬]을 그린 알베르토 사비니오, [굴뚝이 있는 도시 풍경]의 마리오 시로니, [메트로폴리스]의 게오르게 그로스 등이 낯설지만 눈에 띄는 작품들을 보여줬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의 약 한 세기 정도 되는 시간을 미술 작품으로 장식한 이 책은 현대 미술을 수놓은 명작들과 위대한 화가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멋진 미술 안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미술을 보는 눈이 조금은 트인 것 같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