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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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 문구점에 깔리는 매월 홀수 주의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이 바로 전에 샀던 호는 벌써 다 읽었고, 계중에는 이미 두세 번 씩 읽은 만화도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1500원을 주고 만화책을 얻는 순간은 마치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책의 앞부분에 있던 인기 스타의 컬러 브로마이드와 드래곤볼과 같은 별책부록 그리고 장난감 비슷한 조악한 선물도 당시에는 큰 행운처럼 느껴졌었다. 격주로 나오는 만화를 사서 보기 전에는 알음알음으로 <보물섬>과 같은 책을 빌려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펭킹 라이킹'은 당시의 내가 정말 좋아했던 만화였다.

<내 인생의 만화책>은 내가 주로 만화에 탐닉하던 90년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 만화사에 길이 남을 추억의 만화들을 소개한다. 첫 장에는 우리만화에 있어서는 거의 고전이라 불릴 법한 [코주부], [고바우], [주먹대장]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40~50년대에 탄생한 이들 만화는 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따뜻하면서도 의협심이 강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산호의 [라이파이]란 만화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파격적이고 신선한 소재의 공상과학 만화였다. 두건을 한 라이파이는 [드래곤볼]에서 손오반이 분한 그레이트 사이어맨의 모델 격이 되는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뒤늦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2장은 만화 스타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린 60~70년대 만화를 다뤘다. 만화 [일지매]는 좀 낯설었지만 [꺼벙이] 같은 경우는 비교적 친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은 비록 내가 이 시대의 만화를 즐길 세대는 아니었지만 어떤 루트를 통해서인지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 만화였다. 당시에 [고인돌]을 참 성의 없게 그린 만화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재미에 빠져 계속해서 읽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만화 캐릭터 중에서 CF에 진출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이기도 한 [고인돌]은 어쨌든 나에게도 추억이 있는 만화였다.

둘리와 오혜성, 구영탄 등이 탄생한 80년대 만화는 70년대 만화보다는 그래도 익숙한 만화가 많이 보인다. 특히 둘리와 오혜성, 구영탄과 같은 캐릭터는 이름만 들어도 그 모습이 그려질 정도다. 한편 내 세대가 즐겼던 90년대 만화는 오히려 낯선 만화가 많아 좀 놀라웠다. [어쩐지..저녁]의 경우는 빤한 청춘 멜로물이라는 생각에서 당시에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고, 90년대 만화를 대표해서 등장하는 다른 만화들 또한 잘 읽었던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다. 어쩌서 좀 더 친숙한 만화들이 선정되지 못했는지 궁금하지만 저자 나름의 판단과 기준이 있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말았다.

2000년대 만화를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만화책>은 우리나라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괜찮은 작품 설명집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이제 종이 만화를 넘어 웹툰 시대가 도래 했지만 그래도 종이 만화의 추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추억이 참으로 즐거웠고, 더욱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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