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미래 - 총.달러 그 이후... 제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지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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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관용이 불러온 웅대한 제국의 모습

광활한 영토, 다양한 민족으로 된 구성원, 박해 없는 종교의 자유, 능력에 대한 존중, 이 모든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제국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대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 즉, 피지배국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던 제국들만이 당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우수한 문화를 꽃피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강대국의 정복자들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도, 인종적 순혈주의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무자비한 무력만을 앞세워 적을 굴복시킨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적들에겐 끝까지 적으로 남아 저항할 것인지, 동맹국이 될 것인지 하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었고, 동맹국이 된다면 본래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와 종교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짚고넘어가야할 사실이 있다. 바로 관용에 대한 부분이다. 여기서 도입된 관용의 개념은 인본주의적 가치를 지닌 절대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의 문물이나 관습을 편견 없이 그대로 인정해주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종교와 인종에 관한 차별대우를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살펴보면 가장 강성했던 페르시아 제국과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 중국의 중흥을 이루었던 당나라, 유럽을 삼킨 몽골제국은 관용의 원칙에 입각해 제국을 팽창하는 과정에서 ’초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질 수 있었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스페인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이 그들 나름의 관용적인 태도로 초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제국의 미래>는 이렇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제국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관용이야말로 대제국, 즉 저자가 규정한 초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쏟아놓는 초강대국들의 관한 해박한 역사지식과 저자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짜임새 있는 논조를 고려하면 정말 관용은 초강대국을 존재케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초강대국이 성장하고 세를 유지하는 과정을 경제적인 면에서 접근해 보면 관용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는 제국은 그 영토 곳곳에 자리하며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는 수많은 인종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 피지배자 모두를 ’원활히’ 다스리기 위해 단 하나의 종교만을 내세우거나 그들을 한없이 미천한 처지의 정복당한 민족으로 규정하는 일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유일신을 내세우는 민족과 인종적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민족 모두는 <제국의 미래>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초강대국을 향한 한 걸음은 떼었을망정 초강대국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노력과 수고를 지불해야 했고, 결국 그것이 한계에 이르자 스스로의 발목을 조이게 된다. 이 모습은 책 속에서 ’불관용’의 사례로 언급되면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한 독일과 일본, 명나라를 예로 들어 설명되고 있다. 저자는 불관용이라는 옹졸한 생각 때문에 더 큰 제국을 만들지 못한 이들 나라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일관된 논지인 관용의 미덕을 강조하지만 원하는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관용의 부재는 초강대국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의 공통적인 속성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관용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독일과 일본이 초강대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불관용적인 측면에서 찾는 것보다도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에게 벅찬 호적수를 링 위로 불러들였다는 점과 야심에 눈이 멀어 제국을 정비하는 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불관용이 직접적인 이유라면 그들의 붕괴는 조금 더 앞당겨졌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의구심이 들지만 어쨌든 한 제국이 관용과 불관용의 선택 상황에 놓였다면 관용을 택해야하는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 원인이 비용의 절감이 됐던, 관용 자체의 필요성이 됐던 간에 말이다. 역사에 등장한 초강대국들이 취했던 뜻밖의 관용정책이 오늘의 미국은 물론 호시탐탐 초강대국을 노리는 여타의 나라들에게 어떤 교훈을 안겨줄지 적어도 불관용의 전철을 밟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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