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루프의 사랑 무한카논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아픈 기억을 간직한 한 남자의 기적같은 여행

처음 ’이투루프’란 단어를 들었을 때 왠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지명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기묘한 울림이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존재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이투루프는 현재 영토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이해당사국 간에는 무척이나 중요한 땅이라고 한다. 춥고 황량하고 쓸쓸한 이 땅을 가지지 못해 안달인 나라들.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각축전과는 상관없이 이 섬은 태고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땅이다. 혹독한 날씨로 무장한 이 땅에 자리한 울창한 원시림. 이 숲은 온갖 정녕들의 집이자 사랑하는 이와의 시공간을 초월한 교감을 나눌 수도 있는 곳이다. 이 특별한 숲에서 가오루는 잃어버렸던 삶의 방향을 되찾는다. 상실과 외로움으로 점철되는 그의 인생에 비로소 봄날의 기운이 움트는 것이다.

가오루는 힘겨운 여행길에 올랐다. 망명과도 같은 여행. 목적지는 일본인이라면 꿈도 못 꿀 이투루프 섬이다. 이 섬은 영토 분쟁 중에 있는 복잡한 곳이다. 현 소유국 러시아와 이에 반기를 든 일본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땅을 노리는 일본인들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이투루프에 오는 일본인들이 받게 될 대우는 빤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섬이다. 하지만 가오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곳을 택하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모든 굴욕을 감내하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지금의 가오루는 그런 굴욕조차 무덤덤해할 지도 모른다. 그는 현재 모든 걸 잃었으며 존재의 의미마저도 희미해진 상황이다. 어쩌면 이투루프가 그에게 죽음을 선사할지라도 그는 체념한 듯 달갑게 받아드릴 수도 있다.

가오루에게서 풍기는 죽음의 기운은 신비로운 영혼을 가진 니나에 의해 감지되고, 니나는 자신의 과오 아닌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그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니나의 초대로 만나게 된 니나의 가족. 니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하나같이 영매(靈媒)였다. 특히 코스챠라는 그녀의 동생은 감당할 수 없는 능력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특별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니나의 가족들에게 가오루는 연민을 느낀다. 그는 능력의 상실로 외톨이가 되지 않았던가! 가오루는 어린 고스챠를 돌보면서, 그리고 니나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잃었던 기운을 되찾는다.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숲에서 신비한 체험을 한 뒤 생에 대한 열의를 느낀다. 사랑하는 이와의 꿈같은 재회, 상실된 감각의 복귀.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상 더 이상 가오루는 유폐된 삶을 살지 않아도 됐다.

<이투루프의 섬>을 읽는 동안 이 소설에 항상 죽음의 기운이 서려있다고 느꼈다. 섬의 삭막한 환경 자체도 그렇거니와 니나라는 인물에 얽힌 연이은 죽음들 그리고 삶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가오루의 모습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모든 것은 그저 연막장치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곳곳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은 오히려 강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이투루프의 섬>은 쉬이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두 권의 전편이 있어서 일수도 있지만 죽음과 생명이라는 상반되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죽음의 고통을 견디고 지켜낸 생명과 그 고귀한 생명이 품고 있는 사랑은 가장 강력한 삶의 버팀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가오루에게는 사랑하는 이와의 즐거운 해후만이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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