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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ㅣ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음식에 관한 재밌고 맛있는 이야기
<미식견문록>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를 알게 된 건 동유럽을 다룬 어느 여행 산문을 통해서였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저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다던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가 짧게 등장한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남다른 감수성으로 묘사한 그 부분은 요네하라 마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요네하라 마리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든가 <마녀의 한 다스> 같은 그녀의 작품은 그저 내 기억 속에서 그녀에 연결되는 수식어에 머물고 말았다.
<미식견문록>은 잊고 있던 그녀의 이름을 다시 생각나게 만들었던 정말 반가운 책이었다. 책 표지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보드카’라는 술 이름을 보는 순간 동구권에 관한 책을 썼던 그녀가 맞구나 라는 확신과 함께 이 책을 통해 드디어 그녀를 만나는구나 하는 설렘이 일순간 마음에 가득했다. 조금 더 빨리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책들과 먼저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건 순간이었고, 그녀의 맛깔난 문장과 재밌는 이야기를 보는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요네하라 마리가 들려주는 음식이야기는 서곡과 악장으로 이어지는 음악의 형식에 맞춰 다소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서곡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동시통역사 일을 하면서 겪은 작은 실수담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논쟁으로 이어진 뒤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삶은 달걀’이야기로 멋지게 마무리된다. 달걀을 정말 좋아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돋은 극심한 아토피 증세로 먹는 걸 포기해야 했다가 우연찮은 기회로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먹는 것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제1악장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음식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의 끝에는 색다른 재미와 함께 고통스런 식욕이 남는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 책 어디에도 음식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지만 생생한 사진들로 채워진 그 어떤 요리책보다도 더 군침을 돌게 하고, ’먹고 싶다’를 연발하게 만든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국의 낯선 음식들이건만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밥상을 멀리하고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특히 그 ’할바’이야기는 나에게 ’참을 수 없는 먹거리의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미식견문록>이 단순히 음식이야기에만 머물렀다면 그렇게 재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맹맹한 음식에 더해진 양념처럼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다양한 경험과 유별났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진하게 배어있다. 요네하라 마리의 어린 시절 추억은 물론 그녀에게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주었던 동화나 전설 그리고 그녀의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음식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하나의 양념이 되어 이 책을 더욱 맛깔나게 만들었다.
아마도 음식에 대한 끝없는 탐구정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미식견문록>이라는 흥미로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진짜 할바의 놀라운 풍미에 빠져 기회가 되는 대로 할바 찾기에 나섰던 그녀가 지인들을 통해서 할바의 뿌리를 추적하는 대목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음식에 대한 열망이 이토록 대단할 줄이야! 반면에 어렵사리 찾아낸 음식을 맛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맛이라는 것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네하라 마리의 지적이고도 유쾌한 음식여행은 ’삼촌의 유언’이라는 장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요네하라 마리에게 다양한 음식의 세계를 보여줬다던 그녀의 삼촌. 그녀에게 남긴 유언의 한마디조차 메뉴를 추천하는 것으로 대신했던 미식가 삼촌의 이야기는 음식에 관한 그녀 집안의 내력을 확인케 해주는 슬프지만 미소를 짓게 하는 이야기였다. 요네하라 마리가 들려주는 다양한 음식이야기는 음식에 관한 그녀의 무한 애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문화나 역사가 아닌 위胃에 닿아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도 되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