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에겐, 로맨틱 - 나를 찾아 떠나는 300일간의 인디아 표류기
하정아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인도에서 경험한 그녀의 로맨틱한 일상

책 제목을 처음 보고 참 의아해 했다. <그래도 나에겐, 로맨틱>? 이거 인도 여행기 아니었어? 인도가 로맨틱하다니, 너무 감상에 빠진 것 아닌가? 사람들의 겉모습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를테면 삶의 철학이라든가 생에 대한 여유면 또 몰라도 어떻게 인도가 로맨틱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불편한 잠자리와 오물투성이 거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잠깐 로맨틱 했던 마음도 싹 가실 것 같은데 지은이는 왜 인도를 로맨틱하다고 했을까?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점을 발견하려 애썼다. 인도 여행기를 처음 읽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 책의 지은이가 썼던 다른 인도 여행기도 전에 읽었던 적이 있어 책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많진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다고 느껴졌던 그 ’로맨틱’이란 단어가 갑자기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인도에게 선사한 로맨틱이라는 수식어, 책을 위한 의도적인 홍보 문구가 아니길 바라며 작은 경험담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한껏 기대로 부풀어 있는 여행자에게 참을 수 없는 짜증을 선사하는 곳이 바로 인도다. 넘쳐나는 호객꾼과 모르는 길도 당당하게 알려주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 그리고 호시탐탐 내 돈지갑을 노리는 좀도둑들은 여행자들을 낙담에 빠뜨린다. 하지만 지은이는 ’45일간의 짜증 희석 트레이닝’으로 이를 잘 극복한 것 같다. ’달라지는 건 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적응 기간을 통해 비로소 뜨내기 여행자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도 여행이 좋은 이유 하나, 바로 저렴하고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역시 과일과 관련된 몇 가지 경험담을 들려주는 데 그 중 ’말라이 이야기’가 왠지 기억에 남는다. 코코넛 안에 들어있는 하얗고 달콤한 과육 부분인 말라이는 덜 익은 코코넛에는 볼 수 없다고 한다. 덜 익어 단단한 과육으로 성숙되지 못한 것이다. 사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성숙하지 못한 자에게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인간미처럼 말이다.

인도 여행이 좋은 이유 둘, 뭔가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이다. 안락과 청결을 마다하고 이곳을 택한 사람이라면 필시 이유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지은이가 만난 올리오라는 스페인 남자도 그런 인물이다. 연인과의 이별로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인도에 왔다는 그는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한없이 미칠 줄도 알아야 하고, 한없이 진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훌리오. 대충 적당히 그럭저럭 사는 나에게 따끔한 일침이 되는 한마디였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동물은 당연 소다. 사람들과 섞여 유유자적 거리를 누비는 소는 인도의 볼거리 중의 하나다. 거리낌 없이 ’막’ 거리를 활보하는 한 소를 보고 측은함을 느꼈는지 지은이는 특유의 감정이입으로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 소에게 말을 건다. 돌아오는 대답은 ’죽기를 각오하고 막 뛰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조차 머뭇거리지 않고 활기찬 인생을 살아야 하는 곳, 여기 인도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지은이가 느낀 로맨틱함이란 아무래도 인도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요소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가난하지만 허투루 볼 수 없는 사람들, 때 묻지 않은 동심, 뜻밖의 가르침을 주고 가는 여행자 등등 결코 흔하지 않은 이런 소중한 경험들은 인도에서의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게 한 이유가 된다. 더욱이 인도가 빚어내는 새로운 일상에서 자신의 과오와 상처를 씻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점도 지은이의 하루하루를 더 로맨틱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로맨틱한 나라 인도,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표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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