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이야기
김형술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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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참동안 바라본 그림 속 풍경

<그림, 한참을 들여다보다>는 미술관 가는 일을 좋아하는 한 시인의 즐거운 그림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속의 세계와 마주해서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정성어린 손길에 흠뻑 취하는 걸 즐기는 저자는 책의 서두부터 독자들에게 미술관에 꼭 가볼 것을 보채듯 권한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자책할 것도 없이 그저 그림을 들여다보며 그림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한 점의 그림에 의해 내 존재와 시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등을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미술관으로 향할 수 없으니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그림만이라도 정성껏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리고 저자의 그림읽기와는 별로도 내 식대로의 그림읽기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첫 테마는 ’거울 속의 괴물들’이다. 여기에 나오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선 외롭거나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 해]에선 네모난 창으로 한가득 쏟아지는 외로움이, 그리고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선 비장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한편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에 이르자 이번 테마의 제목에 해당하는 괴물의 정체가 언뜻 보이는가싶더니 오딜롱 르동의 [꽃 속에 잠든 사람]에 다다르면서 괴물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거울에 비친 괴물은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었나보다.

’즐거운 경계’라는 주제의 두 번째 테마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유희였다. 초현실주의와 입체파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 시공간을 초월해 허물어진 경계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낳았다. 기묘할 정도로 뒤틀려지고, 합성된 그림 속 형체들은 참으로 난해했지만 저자의 말대로 시간이, 사물이 가졌던 원래 모습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헝클어진 경계와는 달리 확실하게 구분되어진 경계는 뚜렷한 화가의 생각과 고집을 엿볼 수 있다. 오순환의 [언덕]은 힘차게 뛰어가는 두 남녀와 덩어리 된 집 사이의 경계의 부각으로 현실 속 비정함이 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테마는 ’가방 속 날개’다. 숨겨진 비밀 같은, 그림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찾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유독 눈에 띄었던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이었다. 그는 명작과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래서 당연히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에 나오는 그의 작품 [샬럿의 아가씨]는 비운을 간직한 한 여인의 슬픔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배에 태워진 채 추방당하는 그녀. 칠흑같이 검은 물빛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시슬레의 겨울 풍경들을 마지막으로 즐거운 그림산책은 끝에 닿는다. 저자의 생각을 쫓으면서도 내 식대로의 그림읽기를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저 단편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전부였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책에 나오는 그림을 정말 한참 들여다봤다는 것. 그래서 한 편의 그림에 대한 생각의 싹을 틔웠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는 게 없다면 들여다본 만큼 보인다 라는 말도 맞을 것 같다. 그림과 좀 더 지긋이 마주할수록 그림은 더 깊은 속내를 보여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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