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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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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속에서 피어난 이성의 꽃


1755년 11월 1일 전대미문의 대지진이 부유한 대도시 리스본을 강타한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은 폐허더미가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대재앙 그 자체였다. 악몽과 같은 대지진의 여파가 지나간 뒤 남아있는 사람들은 건물 잔해와 시체 더미를 보며 생전 처음 보는 이 재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누구는 대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떠들었으며 누구는 퇴락한 도시에 신이 내린 벌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들과는 다르게 이 희대의 사건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대재앙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고, 그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 더 이상 신은 없었다. 리스본에 닥친 자연재해는 종교에 묶인 인간의 이성을 탈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땅이 꺼지고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는 그 순간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기도가 아니라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향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모두 생존을 위해 하나같이 아우성쳤다. 지진은 순식간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인류가 아무리 애써도 이루지 못한 평등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셈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그 순간은 지위도 부와 명예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대지진의 울림이 멎고, 살아남은 지배층 인사들은 무너져버린 이 도시의 재건에 대해 궁리한다.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허물어져버린 도시, 그러나 도시의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재건을 바라는 이들에게 더 큰 장벽은 대지진을 재앙으로 인식하며 죄를 회개하라 부추기는 광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넋을 놓은 시민들에게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라고 소리쳤다. 다시 일어나 사라진 도시를 재건하려는 이들에게 일을 멈추고 기도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이들 세력은 굳건한 재건의지를 가진 카르발류에 의해 진압되고, 도시는 '이성적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다.

지진의 피해를 입은 도시를 재건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해서 어디서부터 무얼 시작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선 카르발류는 무너진 도시 위에 새 도시를 건설하는 큰 틀의 계획을 세운다. 이런 그의 계획을 보고 리스본의 처참함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비웃지만 그는 리스본의 재건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다행히 카르발류를 전적으로 신임하는 주제 1세의 무조건적인 지지 덕에 그의 계획은 별다른 마찰 없이 실행된다. 하지만 당시의 리스본, 더 나아가 포르투칼은 식민지 브라질의 황금에 가려진 채 사회전반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자국 내 산업은 전반적으로 취약했고, 무역에서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카르발류는 리스본 재건계획을 교두보 삼아 포르투칼의 전면적인 개혁에 칼을 들이댄다. 그는 나라가 운영되는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직접 개입해 개혁을 시도하고 뚝심 있게 추진해 나간다.

카르발류라는 한 천재 공무원의 전 방위적인 노력 덕분에 포르투칼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전에 없던 사상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또한 회생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리스본도 재건의 기틀이 세워졌다. 암울했던 도시의 미래가 다재다능하며 헌신적인 한 인물에 의해 조금씩 빛을 찾게 된 것이다. 리스본 재건에 관해서는 그의 정책을 공공연하게 반대했던 사람들마저 카르발류처럼 단호하고 냉정한 인물이 지휘하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영웅적인 위업임을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카르발류는 그가 계획했던 도시가 완벽히 재건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도시의 재건에 열을 올릴 무렵, 그는 이미 노년이었으며 스스로도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 날까지도 남아 길이 빛나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놀랄만한 용기와 끈기 있는 추진력은 지금의 리스본을 만든 가장 큰 힘이었다. 대지진은 휘황찬란했던 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고귀한 이성을 가진 한 인간의 노력으로 도시는 재건되었고, 후손들은 새 도시에서 축복과도 같은 일상을 갖게 됐다. 때때로 자연은 인간을 위협하며 모든 걸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 험악한 시험을 빠져나갈 방법이란 없다. 그저 이성의 눈을 부릅뜬 채 그 이후의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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