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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역습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제국의 역습>은 전작 <왕의 밀사>에 이어 왜란을 전후한 조선과 일본의 긴박한 역사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왜란의 소요가 다시금 급물살을 탈 것인가 아니면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인가가 시국의 주요한 이슈가 될 무렵 일본에서는 무리한 전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조선에서는 한시바삐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단 한 명 오직 히데요시만이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전쟁에 박차를 가하길 바라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무리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다른 세력들은 그를 저지할 수 없었다. 당시 최고의 실력자인 히데요시에게 그 누구도 그의 뜻에 반하는 목소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히데요시의 반대파라 할지라도 그의 계획에 소극적으로 동참하거나 아니면 묵묵히 따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전쟁야욕이 갈수록 심해지고 전쟁참전에 따른 세력의 위축이 염려되는 긴박한 상황에 이르자 반대파들은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에는 광해군과 린이라는 자가 중심에 서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너구리 이에야스의 간계로 엉뚱하게 전개되고, 오로지 이에야스와 조선만이 실리를 챙긴 결과로 종결된다. 포로에서 밀사로 목숨을 내놓으며 양국을 오간 한 젊은이의 충정과 대의를 위해 기꺼이 이에야스와 결탁했던 다른 세력들의 협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대담무쌍한 계획과 의기 넘치는 행동으로 조국에 대한 충성과 정혼자와의 해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했던 한 젊은이의 꿈은 야속하게도 시류에 밝았던 너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덫에 걸려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린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핏줄은 그를 기억하며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었다. 모진 세월의 풍랑을 이겨가며 유녀의 길에 들어선 것도 자신을 업신여긴 자들에 대한 복수와 함께 조선과 일본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조부의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에 속고, 정에 꺾이는 유약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미모에 현혹돼 자기 멋대로 주무른 뭇 남자들처럼 그녀 역시도 거짓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당한다. 할아버지의 한조차 고이 지녔던 그녀이건만 결국 그것까지도 그녀를 이용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만다.
<제국의 역습>은 <왕의 밀사>에 니왔던 박명준이 다시 등장하며 의혹투성이 사건을 파헤친다.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응당 보호했어야 할 인물들의 죽음이 이어져 가슴이 쓰렸지만 그럴수록 사건의 원흉이 되는 인물이 누구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결국 사건은 부패를 무마하려는 자의 파렴치한 범행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에게 이용당한 한 여인의 굴곡 많은 삶이 무척 안타까웠다. 박명준과 만난 후 음습하는 절망과 죄책감에 아버지를 부르며 절규하는 그녀, 그리고 뒤이은 죽음. 모진 삶에 대한 대가가 이리도 박한지 슬프고 또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