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낳은 뽕나무 -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강판권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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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부터 3~5천여 년 전부터 뽕나무를 심고 누에고치를 길러 비단을 짠 나라였다. 이토록 오래된 양잠의 역사만큼 다양한 문헌과 풍습, 신화에서 뽕나무와 누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은나라의 신하 이윤이란 자는 뽕나무 탄생설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뽕나무에서 태어났으며 자라서 무척 어진 신하가 되었다. 마치 그는 뽕나무 잎을 먹고 사람들에게 옷을 제공해주는 누에처럼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고 한다.

한편 중국신화에서 태양의 신이자 농업의 신인 염제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중 적제녀라는 딸이 뽕나무 위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딸을 못마땅해 하던 염제는 나무 밑에 불을 질러 그녀를 내려오게 했지만 애석하게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녀는 몸의 형체를 벗어버린 채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만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 남은 그 뽕나무는 후일 사람들에게 제녀상이라고 불리며 그녀를 기리는 의식에 쓰이게 된다.

이밖에도 '누에의 신화'는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그만큼 당시의 뽕나무와 누에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뽕나무는 숱한 고문헌에도 등장하며 농민 뿐 아니라 지식인들도 그 가치를 능히 알고 있는 중요한 작물임을 증명한다. 뽕나무는 중국 최초의 사전 [이아]를 비록해서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 [시경] 그리고 [초사]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리며 그 존재 가치를 내어 보인다.

<중국을 낳은 뽕나무> 1부가 옛 문헌이나 전해 내려오는 신화를 통해 고대 중국의 양잠의 흔적과 뽕나무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면 2부는 누에의 실이 만들어낸 비단에 대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2부를 시작하며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밝힌 바 있는 중국의 영어식 이름에 관한 잘못된 역사적 통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중국은 이미 진나라 이전부터 비단 생산과 관련 있는 진cin이나 지나cina로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을 의미하는 '차이나'는 진나라를 음역한 게 아니라 비단 생산에서, 즉 뽕나무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진실은 묻혀 있고, 잘못된 기억은 너무도 강력히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데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교역의 역사가 과거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록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광범위한 문명의 만남은 아직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동서의 만남은 비단길에서 시작된다. 대상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방으로 가서 중국의 비단을 로마제국의 시리아까지 운반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금속, 유리 등 다양한 상품을 싣고 왔다. 지금껏 로마인과 중국인은 서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로지 비단을 통해서만 서로를 인식했다. 중국의 비단은 로마시대 귀족의 선호품이었으며 이것으로 만든 옷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로마에 깃든 중국의 비단문화는 그렇게 귀족들 틈에서 자리잡아갔다.

중국의 비단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 수출되며 호황을 이룬다. 하지만 중국의 비단시장이 발전하고 전문화, 상업화 되면서 가내 생산영역에서 방직 노동을 하던 여성들을 이탈시켰고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떨어뜨렸다. 실잣기와 길쌈은 더 이상 경제적,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의 일이 아니었다. 여성은 일은 점차 보조 역할로 굳어지고, 이는 여성의 법적 권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의 비단 산업 계속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비단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은 마음껏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근대로 올수록 비단의 수요는 끊이질 않지만 농민의 수입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자본의 유입과 공장설립은 농민을 가난한 임노동자로 만들었으며 부유한 자에게만 더 많은 부를 허락했다. 뿐만 아니라 비단 생산이 늘면 늘수록 수입해야 하는 곡물의 가짓수와 양은 더욱 늘어만 갔다.

현대의 양잠산업은 우수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종자전쟁으로 번졌다. 중국은 과거의 영광도 잊은 채 우수한 형질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헌데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종자 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경제가 회복된 지금도 좀처럼 종사산업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뽕나무에는 농약을 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청정한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녹색산업, 녹색성장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종자산업 활성화'라는 거창한 계획은 아니더라도 뽕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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