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을 건 도박 그리고 불멸의 책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담보로 엄청난 계약을 요청받았을 때 우리는 이것을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크게 어렵지 않은 의뢰인의 요구에 부합하며 자신의 재주를 펼치는 일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에게 받은 엄청난 계약금과 전적인 신뢰는 분명 작가에게 힘과 자랑이 된다. 특히 부도덕한 출판업자에게 묶여 자신의 뜻과 벗어난 썩어빠진 통속소설이나 찍어내던 가난한 작가에게는 그것을 넘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부여받은 틀 속에서 창작의 자유가 억압돼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도사리고 있는 모종의 음모가 있다면 이것은 기회가 아니라 도박이 된다. 작가는 과연 이 도박을 멈춰야 하는가? 아니면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가?

다비드 마르틴은 코넬리라는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작업을 의뢰받는 뒤 새로운 창작에 열을 올린다. ‘모든 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어 놓을 힘을 지닌 책'을 의뢰받은 그는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일에 매진한다. 그러던 중 그가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티나와 이별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동시에 그가 친구이자 스승으로 섬겼던 비달과도 인연을 끊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편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낡은 저택 ‘탑의 집’에서 몇 가지 의문스러운 물건들이 발견되고, 그 물건들의 출처와 그가 얻은 어떤 책과 접점이 생기면서 다비드는 탑의 집의 전 주인과 그에 얽힌 사건들에 관해서 추적에 나선다. 추적을 통해 진실의 껍질이 조금씩 벗겨질 때마다 전 주인의 미스터리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속속 발견되지만 이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모호한 경계 속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는 채로 그려지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다비드에게 벌어지는 일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또한 진실은 더욱 흐려지고 좀처럼 이야기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든다. 수많은 세잎 클로버 사이에 숨어 있는 네잎 클로버처럼 온통 거짓과 환상으로 뒤범벅된 그의 기억 속에서도 진실을 향한 작은 단서가 잡히고 다비드는 그것을 토대로 마지막 추적에 나선다. 의외의 반전과 숨 가쁜 모험이 가미된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며 진실에 다가서는 다비드. 그는 끝내 진실의 열매를 얻었지만 그러기까지 잃어야 했던 게 너무 많았다. 한 순수한 영혼에게 찾아온 의외의 행운은 그의 사랑과 친구를 앗아가는 독약이 되었고, 기약 없는 도피를 하게 만들었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아야 하는 그는 자조하듯 살지만 어느 날 또 갑작스런 방문을 맞게 된다. 정말이지 <천사의 게임>은 마지막까지도 운명의 주사위를 멈추지 않는다.

뜻밖의 만남으로 다비드와 살게 된 여자아이 크리스티나. 어쩌면 다비드에겐 이 아이가 행운이요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의 입맛을 맞춰줄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한 아이를 보며 그가 쓸 책이 궁금하고 또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아마도 여지껏 자신의 마음에 이끌려 소설다운 소설을 쓴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인기의 유혹에 넘어가 영혼이 없는 소설을 썼던 때는 잊고 자신의 영혼을 담은 불멸의 책을 완성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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