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병실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조용히 마음을 파고드는 투명한 이야기

오가와 요코의 <완벽한 병실>은 그녀의 초기작들을 모아 놓은 단편집으로 이제 막 등단한 작가의 풋풋함과 의욕이 느껴지는 작품집이다. 초기작임에도 극도로 절제된 묘사에 등단부터 여간내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작품 속에서 그녀의 시선이 머무르는 주요 대상이 병약하고 부실한 인간이라는 점이 왠지 모를 의아함을 갖게 했다. 아무래도 초기작인 만큼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는 전력이 작품에 묻어나는 거겠지만 상해가는 음식처럼 서서히 사자(死者)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오싹하리만큼 사실적이고 냉철하게 묘사해 내는 것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인간의 몸을 향한 집요할 정도의 섬세한 관찰력은 어쩌면 그녀의 작풍을 이루는 모태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츰 시들어가는 인간의 몸, 기력이 떨어져 제 구실을 못하는 인간의 몸은 [완벽한 병실]과 [호랑나비가 부서질 때]에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음식물 섭취라는 인간의 본능조차 거부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몸은 우리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완벽한 병실]에서 남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그녀 역시 점차 무력해져 가는 동생의 몸을 보면서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멸균과 소독으로 삭막하리만큼 깨끗한 병실이 그녀에게 안정을 줄 정도로 그녀는 변하고 상하는 모든 유기물조차도 극도로 꺼려한다. 쇠약한 몸으로 요양원에 간 할머니의 부재와 생명이 자라고 있는 자신의 몸 사이에서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호랑나비가 부서질 때]의 그녀 역시 '몸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인간의 몸을 향한 관찰이 타인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 [식지 않는 홍차]와 [다이빙 풀]이다. 물론 이 두 작품에도 변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기는 마찬가지다. [식지 않는 홍차]의 그녀는 차갑게 식어버린 홍차처럼 동거하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한 상태에서 옛 친구와 만난다. 잊었던 친구와의 만남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지만 반대로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불만만 쌓여간다. 동거라는 편한 관계에 있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다정함이나 배려는 어느새 사라졌던 것이다. [다이빙 풀]의 그녀는 고아원 원장 부부의 외동딸로 원생들과 함께 자랐다. 남다른 성장배경으로 무의식적이면서도 맹목적인 사랑과 의식적이며 태연한 악의를 가진 그녀는 뒤틀린 감성의 소유자지만 오히려 동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변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누구나가 갖고 있는 공통된 감정이다. 병으로 몸이 약해지는 것이나 노화나 임신으로 몸에 변화가 오는 것, 처음에 품었던 다정함이나 사랑 같은 감정이 느슨해지는 것,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던 소중한 추억이 깨지는 것 모두 경험하고 싶지 않은 배제의 대상이다. 하지만 누구도 원치 않는 이러한 상황이 소설 속 그녀들에게 찾아왔고, 작가 오가와 요코는 적응과 방황의 기로에서 서성이는 그녀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완벽한 병실에서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싶어 하며 식지 않은 홍차에 감동하고 맹목적인 사랑과 악의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불안을 넘어 극도의 위태로운 상태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 순간 [다이빙 풀]의 쥰처럼 손 내미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고통 결국 사람만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실의 고통과 변화로 인한 무력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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