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나를 홀린 기묘한 이야기

 시종일관 발랄하고 유쾌했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소설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여우 이야기>도 재치와 재미가 넘치는 그런 류의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야기가 좀 난해하기도 하고, 전설이나 괴담에 가까운 내용에 적잖이 당황했다. ’교토작가’라는 별명처럼 이 소설도 ’교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괴기스럽고 기묘한 내용 때문인지 느낌상으로는 소설의 공간이 어느 호젓한 마을이나 깊은 산골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여우 이야기>는 전에 읽었던 작가의 소설에 비교해 다소 이질적이었고, 판타지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소설이었다.

 <여우 이야기>는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방련당’이라는 특이한 공동품점이 등장한다는 점을 빼면 각각의 단편은 독립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큰 틀에서 생각하면 이 단편집은 하나의 소설임이 분명하다. 첫 번째 단편 [여우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할뿐더러 문제의 방련당과 그 여주인이 전면에 나오는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이다. 특히 이 단편의 마지막 장면은 소설의 네 번째 단편과 이어져 기묘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두 번째 단편 [과실 속의 용]에도 방련당과 여주인 나쓰메 씨가 등장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단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주인공이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거짓말’을 해서 편안함을 느낀 뒤로 줄곧 거짓말을 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이 선배라는 사람에게서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청자가 없다면 거짓말도 소용없다는 그의 말에서 독자가 없다면 소설도 소용없다는 작가의 고백이 느껴졌다.

 세 번째 단편 [마]에서는 소설의 기괴함이 정점에 달하게 된다. 이 단편엔 아이들이 키웠다는 이상한 짐승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 짐승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보초와 경계를 서지만 습격은 멈추질 않는다. 형체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짐승과 사람의 혈투로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도대체 그 짐승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단편 [수신]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생전에도 갖가지 기행을 일삼았던 할아버지, 게다가 의문이 풀리지 않은 몇 가지 사건도 있던 터라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할아버지의 과거사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모임이 돼버렸다. 그리고 여지없이 등장하는 ’방련당’. 과연 할아버지가 숨기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할아버지의 저택에 숨겨진 비밀은? 정말 소설은 마지막까지도 궁금증과 호기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기묘한 물건과 동물이 등장하는 괴기스러운 사건을 다룬 <여우 이야기>는 역자의 표현대로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기묘함과 신비로움이 매력이자 향기인 소설이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다 읽고서도 뭔가 남아 있는 듯한, 그래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한편 <여우 이야기>에는 ’비와 호의 수로’라는 공간이 종종 등장한다. 선배라는 사람이 노트를 주운 곳이자 아이들이 제방 너머로 그 짐승을 죽이려 했던 곳, 그리고 할아버지의 저택과 은밀히 연결된 곳이 바로 비와 호의 수로다. 수로는 물이 다니는 곳이고, 소설에서 물은 종종 ’정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소설에서 ’비와 호’도 어쩌면 그런 의미도 쓰이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그 정화의 대상은 인간의 이기나 탐욕이 되는 것일까? 정말 어느 것 하나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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