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하고 정겨운 일상으로의 초대

유코의 지름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가슴 따뜻하고 정겨운 일상으로의 초대

"아스라이 그리운 소설의 매력을, 완연히 새로운 일본인을 통해 구현한 작품", 제1회 오에 겐자부로상 수상작인 나가시마 유의 <유코의 지름길>에 대한 심사평가다. 이야기의 주요무대가 변두리 도시라는 점, 거기에 골동품 판매점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공간이 더해져 소설에 차분함과 예스러운 느낌을 더해준다. 소설의 내용은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다반사적인 이야기가 물 흐르듯 진행되지만 인물들의 정감어린 마음과 따뜻한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사건들이 때때로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들고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심사평에서 말하는 ’그리운 소설의 매력’이나 ’새로운 일본인’이 무엇을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코의 지름길>에는 분명 다른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하고 알쏭달쏭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의 만남의 장이 되는 골동품 판매점 ’후라코코’는 열린 공간이다. 손님은 물론 주인집 딸들이나 가까운 이웃인 미즈에 씨는 이곳을 안방 드나들듯 편하게 오가며 안부를 묻고 일손을 돕는다. 도무지 요즘 이웃 같지 않은 이들의 생활모습은 이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케 하며 잃어버렸던 소중한 무언가를 일깨우는 자극제가 된다.

한편 이 후라코코라는 공간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 준다.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한 그곳은 PMP, MP3가 판치고 백화점과 대형마트로만 사람들이 몰리는 요즘시대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한적할 정도로 고요하고 찾는 이도 별로 없는 후라코코는 저 홀로 따로 떨어진 작은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잘 가꿔진 정원처럼 이곳을 사랑은 하는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꾸려진 행복한 공간이다. 소설의 후반부, 후라코코의 폐점을 암시하는 점장의 말을 부정하며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주인공 청년의 밝은 한 마디는 후라코코가 오래도록 특별한 공간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모두의 뜻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골동품 판매점이라는 다소 낯선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기치 못한 소소한 사건들을 담은 <유코의 지름길>은 사랑스런 유코와 부끄럼 많은 선생님의 행복한 결말처럼 밝게 끝을 맺는다. 서로의 성은 몰라도 친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던 사람들. 작은 배려와 관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그들의 살맛나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유코가 발견한 지름길은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여유 없는 삶, 타성에 젖은 삶으로 인해 빼앗겼던 마음의 쉼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코가 자전거를 타며 내달리는 한적한 그 길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나도 거닐고픈 그 길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