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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심리학
마이클 맥컬러프 지음, 김정희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호모 이그노센스를 꿈꾸며
인류의 역사 속에서 복수는 부당한 대우를 위로받고, 자신이 받은 고통을 돌려주며 더 나아가 잠재적인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 곧잘 이용되었다. 이른바 '받은 데로 돌려주는 식'인 이 복수는 일단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파괴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복수를 행하는 당사자는 자신의 모든 인지활동을 멈춘 채 복수에 전념하게 되고, 오로지 복수를 성취하기 위해 집중한다. 복수로 인해 초래될 일이나 자신이 지금 벌이는 일의 위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또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피해자 혹은 그 측근이 다시 가해자가 되는 이 비극적인 운명의 고리는 복수로 인한 죄는 물을지언정 복수, 그 자체는 인간적인 발로 때문이라는 통념이 불러온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 형제자매를 해한 자를 찾아가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해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복수심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 한 편에 두고 있는 보편적인 심성이고, 복수할 상황에 처하면 종종 발현되었다.
하지만 복수심을 자극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사람이 복수를 행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복수가 아닌 용서라는 선택지를 택한다. 이것은 단순히 성직자와 같은 종교계에 있는 사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그렇다고 모든 종교인이 복수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놀라울 정도로 용서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책 <복수의 심리학>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형제자매를 죽음으로 몬 사람들까지도 용서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가해자들이 그들의 죄로 고통 받지는 않을까 진심으로 염려하고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 '용서의 천사'들은 복수로 인해 또 다시 상처받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에겐 죽은 형제자매도 그 형제자매를 죽음으로 몬 사람도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복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복수하는 자와 용서하는 자, 이 두 부류의 인간은 우리 사회에 혼재해 있다. 둘 중 어떤 인간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묻는 다면 답은 빤할 것이다. 하지만 용서하는 사람이 되는 길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복수의 심리학>에서는 생물학적, 역사적 그리고 종교적인 접근에 의해 그 이유가 상세히 설명돼 있다. 나와 친한 사람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향, 용서로 인해 감수해야 할 것들, 복수의 편의성 등등 현실에는 용서를 방해하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의 길로 가야하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가 갈등과 반목보다는 협력과 공조를 통해 발전했기 때문이다. 복수는 분명 더 큰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국과 이라크의 문제는 복수가 얼마나 큰 소모전인가 하는 점을 여실히 일깨워준다. 반면에 대공황 시기나 책에 나오는 것처럼 미국의 독립전쟁 시기에 벌였던 이해와 합력은 그 당사자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복수하는 자들이 많은 사회보다 용서하는 자들이 많은 사회가 더 풍요로워지는 건 확실하다. 복수의 끝은 모두 잃는 것이지만 용서의 끝은 모두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용서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