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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미셀러니 -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
그레이엄 하딩 지음, 차재호 옮김 / 보누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와인에 숨겨진 은은한 이야기
분위기에 먼저 취한 다음 비로소 그 맛에 취한다는 와인은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거의 유일무이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의 무엇이 문화의 장벽과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일까. 생각건대 대지 아래로 깊게 뻗어나간 포도의 뿌리처럼 전 세계인들의 미각과 취향에 어느새 깊이 스며들어버린 와인 특유의 그 ‘은은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알쏭달쏭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와인은 이국의 음료임에도 우리와 가까이 있고, 분위기 있는 자리에 항상 빠지지 않는 고급술이 되었다.
<와인 미셀러니>는 이런 와인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재밌는 책이다. 작고 아담한 책의 모양과 닮은 짧고 간단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와인에 대한 어떤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하기보단 간단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소소한 발견을 즐거움을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제목에 ‘미셀러니’라 단어가 들어간 것은 그런 내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식의 심도가 얕은 대신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방대하게 퍼져있어 책을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잃지 않게 만든다. 이런 내용에서 저런 내용으로 널뛰듯 이어지는 와인이야기는 기존에 나온 와인서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과 재미를 안겨준다.
<와인 미셀러니>는 굳이 소주제로 구분해 놓진 않았지만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는 함께 등장시켜 파편적으로 나열된 이야기들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이를 테면 각국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나 여러 도시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처럼 계통이 비슷한 이야기는 함께 나열돼 있어 이야기들을 서로 비교하며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와인 미셀러니>에는 보통의 와인 책이라면 간과했을 와인 병, 마개, 라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간단한 이야기의 연속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책이지만 이 책을 계기로 알게 된 와인과 관련한 ‘상식’들이 무척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지금 한 드라마의 제목으로 쓰이는 ‘테루아(Terroir)’는 땅을 의미하는 프랑스 말이지만 포도가 자라는 땅을 비롯한 자연환경과 기후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라는 것, 새크리라는 사람이 ‘고안한’ 유칼립투스 나무아래 저장통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은 포도 껍질을 썩어 다양한 향을 가진다는 것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이었다.
와인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로 와인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와인 미셀러니>는 재밌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과 함께 와인에 대한 더 큰 호기심을 안겨주는 좋은 책이었다. 아직 와인보다는 소주나 맥주를 선호하는 나이지만 언젠간 와인의 그 깊고 은은한 맛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떫은 와인 맛에 질려버려 와인을 거들떠도 안보는, 와인에 대한 나의 나쁜 기억을 버리는 게 먼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