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고통과 치욕 속에 되풀이되는 상실의 아픔

키란 데사이의 <상실의 상속>은 고통스런 역사의 기록이며 빼앗긴 자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 소설은 영국이란 굴레에서 힘겹게 벗어난 인도가 민족과 종교라는 또 다른 광풍에 휘말리는 가운데 그 속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애절한 숙명을 그리고 있다. 그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가 되었던 미국으로의 취업 역시도 새로운 형태의 착취와 기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실은 고통스럽고 희망마저도 결국은 좌절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은 치유할 길 없는 3세계 국민들의 애환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열여섯 살의 사이는 기숙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게 된다. 사이의 식구는 단출했다. 사이와 외할아버지와 전속 요리사 그리고 애완견 무트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외할아버지인 판사의 총을 원하는 강도가 찾아오고 어이없이 총을 강탈당한 사이의 외할아버지는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여기서 소설은 사이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다 말고 미국으로 간 요리사의 아들 비주가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나 젊은 시절 영국유학길에 올랐던 판사의 이야기를 오락가락하며 들려준다. 현실과 또 다른 현실 그리고 과거로 점철되는 이 세 이야기는 세상의 풍랑 속에서 지독한 상실의 고통을 맛봐야 했던 그들의 인생유전과 시대의 비극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장치가 된다.

젊은 시절 판사는 공부를 통한 성공을 위해 유학을 선택한다. 하지만 유학은 그에게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주었지만 심각한 열등감과 계급적 차별의식을 심어주었다. 균열된 이성의 뿌리는 결국 그를 아내와 헤어지게 만들었으며 지독한 독선주의자로 만들었다. 결국 그는 무언가를 얻으려 선택한 길에서 더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비주는 취업을 통한 성공을 목적으로 어렵사리 미국에 가게 된다. 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단하고 더러운 일뿐이었다. 고국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육체적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만 좀처럼 나아질 방도가 없는 자신의 신분과 계속되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는 그나마 얻었던 것을 잃는 선택을 하고 만다.

한편 사이는 어린 나이와 기숙학교라는 우물 안 생활 덕에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소용돌이를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이는 그녀가 짝사랑하는 가정교사 지안과 다투는 원인이 되며 지안과 그녀 사이에 넓고 깊은 강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을 자극하는 시대적 기류는 지안을 거리로 내몰고 이 사실은 사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상실감을 안겨준다.

판사와 비주, 사이를 비롯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이 상실의 고통, 더 나아가서는 상실의 대물림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항상 약자였고, 그래서 시대가 원하는 무언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으며 고통은 항상 참고 견뎌야 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고통 받고 희생당해야 하는 이들이 누군지. 또 이념과 인종, 종교의 갈등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말리고 피 흘려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소설은 냉혹하리만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고통스런 '상실의 상속'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그래서 평화와 변영과 행복의 상속이 그 자릴 대신해서 이어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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