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1 뫼비우스 서재
칼렙 카 지음, 이은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에겐 어린 조카가 한 명 있다. 너무 어리기에 한없이 주는 애정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이따금씩 칭얼거림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식사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경우 나도 모르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 때가 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누려야 할 여유와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그 녀석에게 약간 약이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낌없는 온정과 사랑으로 그 아일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다, 적정한 때가 될 때까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할 권리가 있는 바로 그 아이를 위해서이다.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에는 자신이 가진 이름보다 범인이나 살인범 더러는 미친놈으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운 한 남자가 나온다. 불행하게도 그는 그가 아이인 시절에 앞서 내가 언급한 사랑과 보살핌의 절대적인 결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탄생조차도 축복받지 못했으며 가족이나 그 어떤 이웃으로부터 아이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불행한 탄생에 약간의 장애가 더해져 온갖 비난과 멸시, 끔찍한 혐오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이 평소에 즐기던 놀이를 하던 중 친했던 누군가로부터 또 다른 형식의 폭력까지 당하면서 이른 나이에 세상의 모든 악행을 죄다 경험하는 상황에 이른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던 그 아이가 바르게 성장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아주 자명하다.

소설은 1896년 고도의 성장과 거기에 발맞춰 고도로 타락해가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정말이지 당시의 뉴욕의 모습을 처절하리만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것도 극과 극의 대비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그림처럼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화려한 건물 속에 안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거리의 부랑아로 혹은 퇴폐업소의 손님으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 속에서 당시 뉴욕의 극명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대도시 안에서 거친 삶을 사는 이들의 대부분은 일거리를 찾아 흘러들어온 이민자들이었다. 당시 노동이민자들의 삶이 다 그렇듯 낮은 임금과 중노동, 불결한 환경이 그들과 함께 했고, 때때로 찾아오는 생존의 위협마저 그들 스스로가 강담해야 했다. 부패한 경찰과 그들의 푼돈을 노리는 다양한 무리들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 있는 거대도시 뉴욕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아이들의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대다수 경찰들은 무법자 천지가 돼버린 뉴욕에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 여기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는 수 없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다른 이들이 나서게 된다. 현직 정신과의사와 기자, 신참 형사들로 구성된 우리의 '수사팀'은 경찰을 대신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잔인하고 몰상식한 사건인 만큼 정신과의사인 크라이즐러의 뜻에 따라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과거행적을 캐내기로 하고 숱한 저항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하지만 범인의 실체와 살해동기를 알아내는 일에 다가갈수록 모종의 위협은 점점 커져가고 결국 수사팀을 돕던 이들의 희생을 초래하는 일이 발생한다. 진실을 향한 그들의 모험을 방해하는 이들은 누구며 과연 수사팀은 범인의 살해동기를 알아낼 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골몰하고 단서를 모으는 수사팀의 행적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살해된 아이들의 모습에서 살해현장에 남은 작은 흔적에 이르기까지 수사팀은 얻은 정보를 샅샅이 분석한 뒤 범인의 정신상태와 살해동기에 관해 추리해본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건 크라이즐러가 가지고 있던 굳건한 편견을 깨면서부터다. 여경 새러의 줄기찬 외침과 반발에 크라이즐러가 뜻을 굽히고 다른 멤버들이 동조하는 가운데 사건을 급속도로 해결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에 대해서 그 이유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있다는 사실을 주시한 채 범인을 '역추적'했던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긋나게 채워진 단추는 어긋난 그 시점부터 바로잡아야 하듯이 범인의 과거를 알고자 했던 그들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한 인간의 고통스런 과거로의 여행은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갖은 구박과 박해로 점철되는 그의 어린 시절은 헤치고 벗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였다. 그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폭력의 싹을 잘라내지 못한 채로 성장해 모방범의 전례를 따르게 된다. 하지만 끔찍한 살인마임에도 다소나마 동정심이 생기는 건 그의 불온한 가정환경 때문일 것이다. 가정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집단이지만 성원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앞서 나는 이 소설이 19세기 뉴욕 모습의 극과 극을 그리고 있다고 했고, 한 예로 부를 얻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모습을 비교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예가 추가된다면 경찰청장 시어도어의 가정과 어린 시절 '그'의 가정을 들 수 있겠다. 그와는 달리 시어도어의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그들의 미래도 한결 밝다는 것은 가족이 주는 긍정적인 형태의 커다란 힘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태어나 일그러진 인생을 살았던 그를 보면서 나는 새삼 가족의 중요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조카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가족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것, 게다가 그 대상이 어린 아이라면 애정을 듬뿍 담아서! 이 짧은 생각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