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망상에 관한 이야기 

 

온다 리쿠의 신작 <목요조곡>은 총망 받던 여류작가 도키코의 죽음 이후 4년이 흘러 그녀와 교류하던 다섯 여성이 함께하는 사흘간의 연회를 그린 소설이다. 그녀들의 이번 만남은 '도키코에 관한 글을 짓자'라는 다분한 의도가 섞인 모임이었고, 그래서 도키코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화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다섯 명 각자의 회고 속에 도키코가 숨을 거두었던 그날의 풍경이 놀라움이나 탄식과 함께 희미하게 그려지고 4년이나 묵은 진실 혹은 망상이 그녀들의 대화 속에서 부유한다. 4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도키코의 죽음은 과연 그녀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구이스 저택이란 좁은 공간에서 저마다의 기억에 의지하며 다시금 도키코의 죽음에 관한 사건을 반추하는 장면은 온다 리쿠의 전작 <네버랜드>와 많이 닮아있다. 기숙사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자기가 가진 비밀을 이야기하는 소년들처럼 그녀들 역시 자기만 알고 있는 그날의 기억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목요조곡>은 <네버랜드>보다 진일보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네버랜드>에서의 화두는 '비밀'이었고 저자는 어느 순간 그 비밀의 모습을 내보인다. 하지만 <목요조목>에서의 화두는 '망상'이다. 저자는 사건의 완벽한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에리코가 중간에 탐정을 자처하며 사건을 재구성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결론이 완벽한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저자는 독자들 개개인이 저마다의 도화지 위에 그날의 사건을 그려보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소설에는 망상이란 단어가 참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 모두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망상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들의 하소연은 글 쓰는 이들의 고뇌와 고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사건을 관찰하고 재구성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했음을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이는 그녀들이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식탁 위의 수다'가 단순히 이야깃거리를 늘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의 전모를 추적하는 살벌한 진실게임이 되도록 한다. 마치 라쇼몽의 세 남자들처럼 그녀들이 회고하는 그 이야기들은 한없이 주관적지만 그녀들의 생각이 진실이고 사실인 양 믿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들의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 역시 독자들을 더 깊은 망상의 늪으로 빠지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독자들은 그녀들의 망상이나 소견을 배제한 채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처럼 모두가 공범이라고 믿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느 한 사람의 부실한 알리바이(물론 소설에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를 근거로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소설의 흐름과 결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독자들의 망상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에리코가 가장 진실에 가깝게 퍼즐을 맞추고 있지만 분명 어딘가 왜곡되거나 빠진 부분이 존재한다. 그 부분을 채워야할 의무가 바로 독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좀 더 의심의 눈초리를 견지한 채 그녀들의 이상행동이나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망상을 해보면 재미를 뛰어넘는 야릇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범인은 꼭 현장에 나타난다.'라는 해묵은 교훈을 생각해서라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결코 망상을 멈춰서는 안 된다. 4년 전 사건의 전모는 오로지 독자들의 망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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