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 서평단 알림
전사들 -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전사들의 '이기는 기술'
프랭크 맥린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칭기즈칸, 카이사르, 알렉산드르가 갖는 공통점이라면 인류의 역사에 선명한 자취를 남긴 위대한 영웅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강렬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전략으로 수많은 민족을 굴복시켰으며 방대한 영토를 손안에 넣었다. 한편 이들 못지않게 인류의 역사 속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전사들'이 있었다. 바로 카리스마 넘치는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비열한 음모꾼 코르테스 그리고 장기전의 달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력한 독재자 아틸라 그리고 탁월한 싸움꾼 리처드와 관계 지향적 전쟁영웅 나폴레옹이 그들이다. 그들은 누구나 지지하는 영웅은 아니었어도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부각시킬 만한 능력을 가진 전사들이었다.

 프랭크 맥린의 <전사들>에서 소개되는 이 여섯 인물들을 처음 봤을 때 난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이유로 이 '여섯 분'을 한 자리에 모셨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대받지 못할 인물임이 확실해 보이는 사악한 정복자 코르테스가 다른 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함을 넘어 솔직히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왜 이 여섯 명을 전사란 이름으로 묶어 관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거머리 같은 궁금증이 되었다. 생각건데 적어도 이 인물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목적달성의 분명함이나 냉철한 판단력, 불굴의 추진력 등이 그들을 '전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의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용맹함으로 똘똘 뭉친 반란자요 억압받는 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노예라는 신분에 묶여 고통 받고 있는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봉기했고 오합지졸에 불과한 자신의 세력을 훌륭히 조정하여 훈련된 로마의 군사들을 무찔렀다. 스파르타쿠스는 물질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작은 성과에 도취되어 안하무인이 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의리와 강직함이 빛나던 스파르타쿠스도 의리를 저버린 동맹국의 배신과 끊임없이 괴롭히는 로마군 앞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 최악의 병사들을 조련하며 싸움에 임했고, 불굴의 투지를 보여줬던 그에게 '훌륭한 전사'라는 영광은 아주 당연한 수식어로 보인다.

 스파르타쿠스와는 전혀 다른 인간성을 지닌 악랄한 약탈꾼 에르난 코르테스는 그 악마같은 열정에서 비롯된 온갖 술수와 감언이설을 정복의 도구로 사용함과 동시에 자신을 위대한 승리자로 합리화하는 포장지로 썼다. 그는 황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도둑놈이었으며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집요함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한편으로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세력을 이용하는 영민함을 가졌고, 낯선 땅에서 우왕좌왕 하는 부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지녔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지극히 개인적인 탐욕과 허영을 채워 줄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을 채워줄 만큼의 행운이 늘 그와 함께 했다. 그렇게 그는 한 제국을 멸망시켰으며 엄청난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스텍 원정은 '승리자'의 기록으로 역사에 남았고 그 역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질로 승리를 이끈 전사가 될 수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남자'였다. 그는 거대 세력이 위용을 떨치는 와중에 자신을 낮추고 숨죽였으며 절대로 허튼짓을 하지 않았다. 안동김씨의 전횡에 오랫동안 숨죽였던 흥선대원군을 그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절대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지 않았다. 모든 걸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항상 장기전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동안 전국을 호령한 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만큼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며 그들의 장점을 수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전투를 장기전으로 이끌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적을 두루 살피는 그의 전술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적의 틈새에 배신자를 심어두었고 이는 승리로 이어졌다. 인내심과 관찰력의 달인이자 현명한 지략가인 그 역시 전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훈족의 왕 아틸라는 유목민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세력을 이끌고도 로마와 같은 '발전된' 토착민족들을 거침없이 무찔렀다. 아틸라는 자신의 부대를 단순히 말 타고 날뛰는 '야만족'에서 벗어나 공성기구를 이용할 줄 아는 '신부대'로 만들었다. 업그레이드된 야만족의 놀라운 전투력에 동로마 제국은 공포에 휩싸였고, 이른바 '아틸라 증후군'까지 생겨났다. 아틸라의 전과는 계속 이어져 수중에 떨어지는 도시의 수가 늘어났으며 돈도 두둑하니 얻어 내 자신의 세력에 필요한 당근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돌풍의 주역인 아틸라였지만 당시의 국제 정세의 정석은 적절한 동맹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쓰라린 실수로 아틸라는 자신의 동맹국을 적으로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매수당한 자신의 참모들이 일을 꾸밈으로써 결국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구인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그의 전사로서의 자질을 잘 말해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장점은 물론 상대가 가진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사자왕이라 일컬어지는 리처드는 지칠 줄 모르는 전쟁기계였다. 그는 몸소 전장을 누비고 다녔으며 그 어떤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두지휘의 대명사 손견의 유럽버전인 것처럼 그의 손에는 항상 칼이 있었고 최전선에서 자신의 군대를 다스렸다. 이 겁 없이 휘젓고 다니는 전쟁기계에게도 라이벌이 있었으니 사라센을 이끄는 살라딘이란 자였다. 둘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맞수였으며 이런 저런 싸움 끝에 승패를 나눠가졌다. 둘의 싸움은 지지부진했고, 한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제압하진 못했다. 한편 리처드는 자국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길었던 원정을 대충 갈무리한 채 귀향해야 했다. 그리고 고국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에서 역시나 솔선해서 싸움에 임하다 끝내는 전사하고 만다. 그의 운명은 정말이지 손견과 닮아 있다. 최고의 지휘자는 항상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은 그를 죽음으로 몰았을지언정 전사가 되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충분한 자질이었다.

 두 말할 필요 없는 남자 나폴레옹. 그는 강한 군인이었고 여러 전투를 통해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을 뒤로 하고 <전사들>에서 초점을 맞춘 건 다름 아닌 그의 '인간관리력'이었다. 인내심 없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재들을 항상 곁에 두었다. 그리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잘 이용했다. 인재탐이 많았던 조조가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반면 나폴레옹은 인재들을 끄는 자기장 같은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이었다. 좋은 인재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게 해줄 좋은 상관을 만나야 하는 게 필수인 것처럼 초창기의 나폴레옹은 그 임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나폴레옹은 수긍할 수 없는 독단으로 부대를 지휘했고, 요상한 이국 문화에 심취했으며 정신분열증적인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 철두철미한 전략가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이며 망가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약해져가는 그 이성의 불꽃은 그를 깎아 내리기엔 부족해 보인다. 무수한 전장 속에서 승리를 위해 몸부림 쳤던 그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전사가 되기에 충분한 남자였다. 비록 말년은 암울했지만 말이다.

 <전사들>에서 다루는 여섯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무기로 무장해서 승리의 달콤한 열매를 맛본 자들이다. 그런데 승리자인 그들을 '전사들'이란 이름으로 묶는 것 외에는 어떤 공통적인 자질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태생도 성장과정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공통점이란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가장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밖에... 그들에게 우열을 가리는 일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상황과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스파르타쿠스를 가장 강인한 전사로 꼽을 수도 있고, 누구는 리처드에 손을 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승리자의 당연한 권리라고도 할 수 있는 '편안한 죽음'과 관련해 생각해 볼 때 그들 대다수는 '참된 승리자'라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명'에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역사의 귀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당당히 남아 후세에 전해질 것이며 불행히도 그들을 아는 사람의 대다수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들을 진정한 승리자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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